Chapter 3. 제자리에 돌아와서
♡ 집에 쌓인 먼지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새로 이사온 집처럼 깔끔하게 정리를 해 두었기에 우리 집이지만 낯설게 느껴졌다.
‘아∼ 우리집에 이런게 있었구나! 냄비는 어디에 두었을까? 냉장고에는 뭐가 들어있지?’ 모든 것들이 새롭기만 했다. 여행을 가기 전에 상할만한 음식들을 다 처리하고 오랫동안 먼지가 쌓일 수도 있으니 식기류는 구석구석 수납장에 넣어놓았더니만 이제는 그것들을 찾는 것도 무슨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다.
우리가 없는 동안 지난여름의 장맛비 속에서 습기를 버티고, 추운 겨울 결로의 위험을 버텨준 기특한 집이 고마웠다. 물론 이렇게 잘 버텨낼 수 있도록 환기도 시켜주고 가습기도 틀어주시며 자기 집처럼 관리해 주신 분이 계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옷장의 옷들과 이불들도 습기를 거부하고 뽀송뽀송한 상태로 잘 보관되어 있었고, 책이며 가구 등도 잘 보관되어 있었다.
하지만, 바닥과 식탁 위, 책장과 선반 위, 문틀과 옷장 위에 쌓인 먼지들은 이곳이 저들의 원래 있었던 자리인 양 닦아도 닦아도 잘 지워 지지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의 힘을 빌어 집안 구석구석을 닦고 또 닦은 후에야 비로소 원래의 색을 찾을 수 있었다.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던 오래묵은 장류와 김치들을 다 꺼내어 다시 있어야 할 곳에 정리해 두고, 주방의 수납장에 있는 식기들도 모두 꺼내어 하나하나 씻고 닦아서 다시 정리를 해야 했다. 이 모든 일들이 어쩌면 수고스러울 수도 있고, 어쩌면 귀찮고 짜증스러운 일일 수도 있었을 테지만, 지난 여행의 추억들을 나누며 즐거운마음으로 정리하다 보니 어느덧 모든 것들이 제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긴 여행 후에 만난 우리 집은 이렇게 새로운 얼굴로 우리와 함께하게 되었다.
사람이 사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항상 그 자리에 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오래된 관계일수록 어느새 먼지가 쌓이듯 자취를 감춰가고 숨겨져 버리는 경우가 있다. 한때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었는데, 새로운 환경속에 들어가서 정신없이 살다가 조용히 잊혀져 버린 분들이 있다. 먼지를 걷어내듯이 그분들을 찾아서 그때의 고마움에 감사를 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 주는 선물은 이렇듯 관계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계기도 만들어 주지만, 그동안 내 안에 숨겨져 있었던 보물들을 찾아주는 즐거움도 가져다 주었다. 어릴적 내가 가지고 있었던 재능과 꿈들을 다시 생각나게 해주고, 혹시나 내가 잘못된 길로 너무 멀리 가지 않았나 하며 내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마법도 선물해 주었다.
당연하다고 여기며 그 가치를 묻어버리고 지냈던 것들이 마치 먼지가 쌓이듯 숨겨져 버렸었지만 먼지를 걷어내면 그 진가를 찾아낼 수 있는 것처럼 내 안에 숨겨져 버렸던 장점들과 꿈들을 다시 보여주었다. 덕분에 여행이 끝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이 일상이 새롭기도 하고 도전해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기도 해서 하루하루가 마냥 즐겁기만 하다.
♡ 방전이라니
집 정리가 어느정도 끝나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장만하러 마트에 가기로 했다. 지하 주차장에 내려와 보니 6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켜온 우리의 애마 토순이가 우리를 반겼다. 토순이는 10년 넘게 우리와 함께해온 우리가족의 자동차 이름이다.
다 같이 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켜는데 자꾸 푸르륵 거리기만 하지 시동이 걸리지를 않는다. 아! 방전됐구나. 너무 오랜 시간동안 방치해 두었더니 그만 밧데리가 방전되어 버린 것이다. 한참을 기다려서 밧데리 충전 써비스를 받고 나서야 겨우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출발을 해서 마트에 가는 동안에도 핸들이 뻑뻑하고 걷돌기도 했고, 브레이크도 조금 밀리는 것 같기도 해서 조심조심 할 수 밖에 없었다. 겨우 장을 보고 집에 도착한 나는 가족들과 짐을 내려놓고 정비소로 향했다.
역시 오랫동안 방치했던 것이 원인이었던지 오일 들이 굳어버려서 그런 거란다. 그래서 엔진오일, 조향오일, 브레이크오일 등을 갈아 주었더니 이제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돌아온 마냥 자연스러워 졌다.
사람이나 자동차나 마찬가지 인것 같다. 사람도 한 자리에서 발전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점점 머리도 굳어가고 몸도 굳어서 정작 필요할 때에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는 이번 여행이 굳어버릴 뻔 했던 나를 다시 살려준 귀한 시간이었다. 익숙해져 있던 자리에서 너무도 안일하게 살아왔던 나에게 기름칠을 해주고 새로운 열정을 불어 넣어 준 이번 여행이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안일하게 살았던 나 때문에 피해를 봤을 여러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는 그동안의 모습에 대해 사과드리려고 한다. 그리고 안일했던 내가 아닌 다시 찾은 새로워진 모습을 가지고 그들과 세상 앞에 당당히 서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