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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빼고 다 그대로네 /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Chapter 3. 제자리에 돌아와서

by 뚱이

♡ 우리 빼고 다 그대로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우리에게는 긴 여정이었지만 돌아온 일상은 변한 게 없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아파트 정문을 지켜주시는 관리아저씨도 그대로였고, 오랜만에 만난 동네 어르신들도 그대로 였다. 교회까지 바래다 주던 버스와 지하철도 그대로였고, 교회에서 만난 분들도 그대로 였다. 거리도 건물들도 음식점들도 다 그대로 였다.


모든 것이 그대로 있다는 게 더 적응이 안 되었다. 뭔가 새롭게 변화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나도 그대로 인 환경이 더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가 빠져나간 자리가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가 없는 세상은 뭔가 힘들어 하기만을 바랬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족이 없다고 해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라는 존재가 없어져도 세상이 힘들어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왜 그렇게도 우리가 없으면 안 될 것처럼 살아왔을까? 왜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었던 것처럼 살아왔을까?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오도록 만들었을까? 여행을 통해 벌어진 시간의 틈이 아니었다면 이런 생각을 감히 할 수나 있었을까 싶다.


그동안 우리는 누군가가 작동시키는 기계의 부속품으로 살아오지 않았을까? 소모품에 지나지 않아 고장 나거나 없어지면 새로 교체되는 그런 부속품처럼 살아오지는 않았을까? 우리의 인생이 아닌 남의 인생에 소모품처럼 여겨지는 삶을 살아 왔다는 것이 후회스럽고 아까웠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보기로 다짐 했다. 누군가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능동적인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우리 빼고 다 그대로인 학교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뭔가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이제는 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 그 무엇도 나를 변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것은 내 안에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우리 빼고 다 그대로인 이 세상에서 살아갈 앞으로의 날들이 더 기대된다.


이렇게 여행은 우리를 변화시켜 주었다.


♡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우리의 당초 여행은 3월에 출발할 계획이었지만 갑작스럽게 발견된 아내의 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행 출발이 늦어졌다. 그 때문에 큰 아이는 집에서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작은 아이는 학교를 다니고는 있지만 내년에 학교생활을 다시 해야만 해서 건성으로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가뜩이나 사춘기에 접어들어 반항을 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주어진 자유시간과 공부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시간 들에 적응을 못 하고 겉돌기 시작했다. 암 투병을 하던 엄마도, 그런 엄마를 간호하던 아빠도 아무도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 줄 수도 없은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불안한 기운도 감돌고 있었다.


아침에 일찍 학교에 가야 될 이유가 없어진 아이들은 늦잠을 자기 시작했고, 집에서 쉬고 있는 아빠가 있어서 집안일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핸드폰 놀이 밖에는 없는 것이 현실 이었기에 우리 아이들도 핸드폰만 들여다 보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중에 엄마의 암 수술이 잘 되고 경과가 좋아져서 여행을 출발할 수 있게 되었고, 여행에 대한 기대도 있기는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현실을 도피할 수 있어서 아이들은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여행 중에도 뭔가 해야 될 일이 생기면 기피하고 싶어하고 모든 것을 나에게 의지하는 모습이 참 답답하고 안쓰러웠었다.


여행이 한 달, 두 달 이어지면서 아이들은 점점 더 게을러지고 핸드폰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런 모습들 때문에 걱정도 되고 화도 났던 나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게되고 서로 조금은 불편했던 시간들이 이어져 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곳은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이라서 마땅히 벗어날 곳도 없었고, 같은 숙소에서 같이 자고 하루종일 붙어 다녀야 하는 가족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속내를 이야기하게 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아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아이들에게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선은 여행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보여주는 것들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보고 싶은 것들을 보는 여행이 되어갔고, 세계 각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물론 같이 여행을 다니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도 가족이기에 엄마 아빠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달, 네 달이 지나가고 말레이시아에 갔을 때는 한 곳에서 한 달 동안 살아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 생활은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관광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새로운 것들을 찾아보고 경험하는 기간도 아닌, 정말 아무도 관여하지 않고 시간 제약도 없고, 무한의 자유를 누리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 기간동안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지 자유롭게 두기로 한 나는 속은 타들어 가고 답답했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기를 바라며 기다려 주었다.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던 즈음에 이르러서야 아이들에게 조금씩 새로운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런 의미없이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지루하고 가슴 답답한 시간인지 스스로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다음 여행지로 계획되어 있었던 태국 방콕에서 부터는 역시 조금은 달라진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리를 하고 짐을 쌀 때도 아이들의 물건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정리하기 시작했고, 숙소를 떠나기전에 청소하는 것도 도와주기 시작했다. 요리를 할 때는 재료 준비며 설거지 하는 것 들을 도와주기 시작했고, 관광을 떠날 때는 관광지에 대한 사전 공부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힘들었던지 그건 바뀌지 않았지만 그래도 많은 것들이 바뀐 모습이어서 기특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이제는 한국에 돌아와서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 말고는 다 그대로인 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은 바뀌어 있었다. 엄마 아빠의 잔소리가 있지 않아도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스스로 하는 아이들이 되어있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이 생겼다. 큰 아이는 세계 각지의 자연과 건축물들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었는지 건축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대학 진로를 결정한 것이다. 성적에 맞춰서 학과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싶은 공부를 위해서 학과를 결정한 다는 것은 그 시작부터가 다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큰 아이에게 감사한다. 꿈을 가져주어서 감사하고 그 꿈을 위해서 해야 할 것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준비하는 모습에 감사한다.


작은 아이는 세계 각지의 요리를 맛보고 레시피를 공부하더니 이제는 요리사가 되는 꿈을 꾸게 되었다. 꿈을 꾸기 시작하니 진로가 하나하나 정해지기 시작했다. 요리 전문 고등학교를 들어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중학교 2학년이 그런 결정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에도 작은 아이는 당당하게 꿈 이야기를 한다. 이런 작은 아이가 또 고맙다. 엄마 아빠의 걱정거리를 덜어주어서 고맙고 바르게 자라줄 거라는 믿음을 주어서 고맙다.


여행은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꿈을 갖게 해주는 마법을 일으키는 소중한 경험인 것 같다. 입시지옥이라 불리는 경쟁사회 속에서 남들보다 뒤쳐질까봐 걱정 되는 과감한 결정이었지만 한참 사춘기의 아이들에게 이번 여행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산 교육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아이들도 책상에 앉아 책으로만 접하던 세상을 직접 경험해보니 너무나 좋았다고 한다. 책속에 등장하던 나라와 명소에 직접 가보고 책속의 인물들이 그렸던 그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책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그들만의 문화와 가치에 대해 접해보니 너무 좋았단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 것 같다고 하니 너무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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