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사회 복귀 후 한 달
오전 10시. 병원에 도착해서 곧바로 수술대로 갔다.
케모포트를 심을 땐 시간이 좀 걸려서 이번에도 오래 걸리나 싶었는데, 제거하는 건 금방 됐다.
10분도 채 안 돼서 끝난 것 같다.
포트를 빼니 다시금 실감이 났다.
'나 이제 정말 괜찮구나.'
4월 부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전에 일하던 약국에서 마침 사람이 필요해서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가게 되었다.
그만둬야 할 때 바로 그만둘 수 있고, 원하는 시점에 바로 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인가.
감사한 사람이 너무 많은데, 치료 기간동안 날 배려해주신 약국의 대표 약사님과 구성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큰 감사함을 느낀다.
그만큼 더 잘 해야지.
투병생활이 끝난 후 일상에 복귀한지 어느덧 한 달이 되었다.
건강히 사회에 복귀해서 첫 급여를 받게 되면,
그 중 일부는 꼭 나처럼 암을 이겨내고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고 싶었다.
나는 그저 운이 조금 더 좋아서 온전히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른 편엔 훨씬 어렵고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 곳엔 약값이 너무 비싸서 최적의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가장의 무게를 내려둘 수 없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일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두려워 병을 숨겨가며 치료를 받아야만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또 기대했던 치료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 사회로의 복귀가 계속 늦어지는 사람들도 있었고,
다 이겨냈다가도 재발하여 다시 긴 싸움을 이어나가던 사람들도 있었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몸부림치다 끝내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역시 있었다.
나와 비슷한 듯 다른 과정을 견뎌내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적어도 그들이 금전적인 이유 때문에 치료를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감히 했다.
특히 5~60년을 암 생존자로 살아가야 하는 젊은 암 환자를 일컬어 '물에 적신 솜을 등에 메고 강을 건너가는 사람'이라 하는 걸, 어느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국혈액암협회'에 100만원을 기부했다.
그들이 등에 메고 있는 솜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건강하게 사회에 복귀해서 다시 사회에 기여할 수 있길 소망하는 마음도 같이 담아서.
100만원이라는 금액이 투병기간동안 내가 받은 응원과 격려의 크기에는 한없이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액수인 걸 잘 알지만,
그럼에도 그런 작은 마음들이 조금씩 모이다보면 다른 누군가의 인생엔 큰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다.
여유가 되신다면 마음 한 켠 아주 작은 공간만이라도 주위의 암 환자들의 목소리와 그들에 대한 관심으로 채워주세요.
그래주신다면 더 할 나위 없이 감사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