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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기록을 남길까]

03. 첫번째 항암치료와 그 이후

by 아피탄트 Mar 26. 2025

병기 평가와 치료계획


경부와 흉부에서 림프절 종대(암세포 덩어리)가 발견되어 최종적으로 '호지킨림프종 2기'로 진단받았으며,

어떤 병기에서든 호지킨 림프종의 추천 일차 치료요법은 ABVD요법이다.


A - 아드리아마이신(성분명 독소루비신)

B - 블레오마이신

V - 빈블라스틴

D - 다카바진



이를 몇 주기 시행하는 지는 환자의 상태 및 병기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나의 경우 교수님께서는 6주기(Cycle)를 시행하겠다고 하셨다.


01~07일    1주차 : 01일차(Day01)에 항암주사           

08~14일    2주차          

15~21일    3주차 : 15일차(Day15)에 항암주사

22~28일    4주차


위에서처럼 총 4주 간격이 1주기가 되고, 1주기 동안 항암주사를 2회 맞게 되는 일정이다.

그렇게 6주기를 시행하므로 항암주사는 총 12회 맞게 된다.


중간 평가도 할 예정이다.

2주기 종료 후에 영상검사를 하겠다고 하셨고,

CT와 PET/CT 검사를 통해 반응을 평가할 예정이다.

그리고 2주기가 끝난 후에 ABVD중 B, 블레오마이신을 제외하고 나머지 4주기는 AVD로 치료하겠다고 하셨다.


* 블레오마이신은 누적 용량에 따라 치명적인 폐독성을 유발할 수 있는 약물입니다. 

그러므로 2주기 이후부터는 AVD로만 치료를 하는 것이 끝까지 ABVD를 사용하는 것과 치료율에 차이가 없다면 굳이 무리하게 블레오마이신을 계속하여 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또 모든 치료(6주기)가 종료된 후에도 영상검사를 하여 최종평가를 진행하겠다고 하셨다.


정리하자면 나의 치료 스케쥴은 아래와 같다.


(1) ABVD x 2주기 후 중간 평가

(2) AVD x 4주기 후 최종평가

(3) 치료 종료 후에는 n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사(~5년까지)



2023년 7월 21일(첫번째 항암)


모든 검사가 끝난 후 항암 주사를 맞은 입원 마지막 날이었다.


(1) 예방적 항구토제 투여


항암치료 과정에서 환자를 가장 괴롭히는 증상 중 하나로 항암제 유발 구역구토를 꼽을 수 있다.

항암제가 뇌의 CTZ(Chemorreceptor trigger zone)라는 곳을 강하게 자극하기 때문인데, 여기에는 많은 신경전달물질의 수용체가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수용체들을 차단하면 항암제가 뇌의 CTZ를 자극해서 위, 횡격막, 복근 등에 구토를 하라는 신호를 보내더라도, 차단된 수용체들에 의해 신호가 해당 기관까지 전달이 되지 않아서 구토를 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항암주사를 맞기 전에, 약물의 구토 유발 위험도에 따라 구토 예방을 위한 전처치를 하게 되는데,

아무런 처치를 하지 않고 항암제를 투여했을 때의 구토 유발 정도에 따라서 아래와 같이 나뉜다.


고위험군(>90%)

- 중등도위험군(30~90%)

- 저위험군(10~30%)

- 최소위험군(<10%)


내 치료제인 ABVD 중에서는 D인 다카바진이 고위험군의 구토유발 항암제이다.

따라서 구토예방을 위한 전처치 역시 고위험군에 준해서 하게 되며,

고위험군은 총 3가지 약물을 사용하는 3중 항구토 예방요법을 실시한다.

(NK-1 길항제, 5-HT3 길항제, 고농도 Corticosteroid)



NK-1 길항제 


아래 두가지 성분 중 하나를 복용 혹은 정맥주사로 주입하게 된다.


1) 아프레피탄트(Aprepitant)

- 경구제형, 상품명: 아탄트캡슐, 에멘드캡슐 등

- 첫날 125mg, 2~3일째 80mg을 복용

    (제 필명 아피탄트는 여기서 따왔답니다...)


2) 포스아프레피탄트(Fosaprepitant)

- 상품명: 에멘드 IV주

- 정맥주사, 첫 항암제 투여 30분 전 150mg을 투여


나는 주사제인 포스아프레피탄트를 투여받았다.


5-HT3 길항제


여기엔 여러 종류의 약물이 있고 그 중 하나를 사용해 처치를 하게 된다.

제형도 경구용, 정맥주사용, 경피흡수용(패치제)으로 여러가지가 있어서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것을 고르게 되며, 병원이나 교수님의 성향 역시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주사제인 팔로노세트론(palonosetron)을 투여받았다.


Corticosteroid


소위 말하는 치료용 스테로이드.

아직까지 정확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항암제 유발 구토 예방에 효과적임이 입증되어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보통 첫날부터 3~4일까지 투여받게 되고,

경구용과 주사용 다 있지만 경구용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다만 치료 기간동안 사용하는 스테로이드 용량이 적진 않다보니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에 노출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부종, 불면, 체중증가 등등) 


나는 따로 투여받지 않았다.

이유를 여쭤보진 못했으나, 어찌됐든 스테로이드 사용을 안하고 구역구토를 잡을 수 있다면 안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을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참 감사하게도 나는 스테로이드 없이 두가지 약물만으로도 구역구토 조절이 효과적으로 되었다.

초심자의 행운이려나, 이번 주기에서 구역구토는 거의 없었다.



(2) 독소루비신 주사


가장 먼저 맞게 된 주사는 ABVD 중 A에 해당하는 독소루비신(상품명 아드리아마이신)이었다.

흔히 '공포의 빨간 항암제'로도 알려져 있다.

처음이라 긴장이 좀 되었는데, 10분 내로 주사가 끝났다.

생각보다 별 느낌은 없었는데, 소변이 붉은색으로 나온다.



* 독소루비신은 누적용량이 450~550mg/m²에 달하면 심장독성을 일으킬 우려가 있어 평생동안 투여받을 수 있는 용량이 제한된 약물입니다.

보통 호지킨림프종에선 1회 주사 시 25mg/m²를 투여하게 되므로, 6주기 총 12번의 치료과정을 겪을 시엔 25*12=300mg/m²의 용량이 축적되게 됩니다.

(다행히 여유가 좀 있습니다.)



(3) 빈블라스틴 주사


다음으로는 V에 해당하는 빈블라스틴 주사를 맞았다.

역시 되게 금방 주사가 끝났다.

빈블라스틴의 주사 중에 혈관에서 샐 경우 피부괴사를 일으킬 수 있다.

물론 의료진들이 세밀하게 신경써주시니 걱정은 되지 않았다.


* 추가로 빈블라스틴은 말초신경에 독성을 나타낼 수 있는 약입니다.

주로 손발 저림 증상으로 나타나는데, 손에서 시작하여 발로 퍼지는 경향을 띱니다.

투여 초기에도 발생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용량이 누적될수록 발생빈도나 강도가 더 높아진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내 경우 5일차 무렵부터 엄지손가락 끝이 저리기 시작하더니, 10일차 이후부턴 새끼손가락을 제외한 모든 손가락이 저리다.)




(4) 블레오마이신 주사


다음엔 B에 해당하는 블레오마이신 주사를 맞았다.

이 때부터 투여 시간이 좀 길어졌다.

이 항암제는 유사아나필락시스반응을 나타내는 경우가 간혹 있어서 치료용량 주입 전 소량의 시험량(test dose)을 먼저 투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나 역시 test dose를 먼저 투여받고, 그 이후 치료 용량을 투여받았다.

총 30분~1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이 무렵부터 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 블레오마이신 역시 독소루비신처럼 누적용량이 제한되어 있는 약물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폐독성을 우려로 평생 투여용량이 400 Unit/m² 정도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호지킨림프종의 경우 보통 1회 주사 시 블레오마이신을 10U/m²정도 투여하게 되므로

6주기 전부 블레오마이신을 사용하더라도 12*10=120U/m²를 투여받으므로 여유가 있긴 합니다.

(여유가 있다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5) 다카바진 주사


마지막으로 D에 해당하는 다카바진 주사를 맞았다.

2시간 정도 걸렸던, 가장 오래 투여한 약물이었다.

주사를 맞으면서 기다리는 동안 퇴원을 위한 절차를 마무리했고, 다 투여받고 나서는 거의 옷만 갈아입고 바로 퇴원을 했다. 



(6) 퇴원 후 귀가길


병원은 수원, 집은 경남 창원.

4시간이 넘는 시간을 달려야만 했다.

조수석에서 자다깨다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어지러움과 졸림 증상 외에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



2023년 7월 22일~7월 23일


퇴원약


퇴원약으로 두 가지 약물을 처방 받았다.


- allopurinol 100mg 1일 2회 3일치 - 앞서 언급했던 종양용해증후군 예방 목적

- levofloxacin 500mg 1일 1회 10일치 - 감염 예방 항생제


* 항암제는 분열을 빨리하는 세포를 타겟으로 하기에 불가피하게 정상 면역세포도 데미지를 받습니다.

항암 후에 백혈구 수치가 감소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각종 감염에 취약해지므로 감염 예방을 위해 항생제를 복용해야 합니다.

암의 종류나 환자의 상태에 따라 항생제 뿐만 아니라 항진균제항바이러스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저는 항생제만 복용했습니다.



몸상태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부작용이 많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만 돌아다녀도 어지러웠고, 졸음이 계속 쏟아져 하루에 12시간 이상씩은 자곤 했다.


첫날엔 밤에 자는데 갑자기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깼다.

몇 분 정도 그러다 괜찮아졌는데, '혹시나 다시 잤는데 영영 일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다시 잠들기가 무서웠다.

그러나 충분히 일어날만한 일이 일어난 거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잠을 청했다.

(항암치료 심장이 빨리 뛰는 건 특히 독소루비신을 사용하는 경우 충분히 나타있는 부작용입니다. 처음 느낀다면 물론 많이 두렵겠지만 발생할 있는 일임을 알고 계셔요..!)


음식 맛은 하나도 안 떨어지고 오히려 그 때 그 때 먹고싶은 게 계속 생겼다.

체중 유지가 중요하니까(라는 변명으로), 생각나는대로 다 먹었다.



주의해야할 음식


교수님께서는 주의해야할 음식으로 딱 두 가지만 말씀해주셨다.


첫번째로는 육회나 회 같은 '움직이는 동물'의 날 음식.

면역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니 날 음식은 당연히 지양해야한다.


두번째로는 출처를 모르는 달인물(음료)

그저 몸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 여러가지 한약재를 막 섞은 후에 달여서 마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한약재 중에는 간이나 신장에 부담을 주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실제로도 한약 잘못 드시다 간 망가져서 병원에 가시는 분이 꽤 있다...)

추가적으로 항암제 자체도 대사 과정에서 간과 신장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특히 뭐가 들어갔는지도 모르는 달인 물을 항암치료 중에 먹는 건 너무 리스크가 큰 행동이라 생각한다.



2023년 7월 24일~25일


이번 치료 주기에서 이틀 정도 부작용으로 고생했다.


변비


물론 항암제 자체도 변비를 야기할 수 있지만, 항암치료 과정 중 발생하는 변비는 항암제 주사 전에 투여한 항구토제때문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항구토제가 장 운동도 억제하기 때문이다. 


항암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약물요법생활요법 모두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나는 푸룬주스를 섭취했다.

성인의 경우 180~200ml가 하루 권장량이고, 아침 공복 혹은 자기 전에 먹는 게 효과면에선 제일 낫다.

생각보다 맛은 없었지만, 그래도 변비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 참고로 당뇨 환자의 경우에는 푸룬주스는 권장하지 않습니다.(당이 많아서)

주스 말고 그냥 푸룬(건자두)을 몇 개씩 먹는 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구내염


4일차 아침에 일어나보니 입안이 아파오면서 껍질이 조금씩 벗겨진 게 보였다.

침 삼킬 때도 아프고 음식을 섭취할 때도 아파왔다.


나는 생활요법과 약물요법 모두 활용해서 이겨냈다.


우선 양치질을 음식 섭취마다 바로 했는데,

구내염이 발생하면 감염에도 취약해지기 때문에 구강청결을 항시 유지해주는 것이 좋다.

얼음도 계속 입에 물고 있었다.

얼음은 염증으로 인한 작열감을 가라앉혀주는데 효과적이며, 비슷한 맥락으로 아이스크림 같이 시원한 음식을 먹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뜨거운 음식은 전부 식혀서 먹었고 맵고 자극적인 음식은 좋아질 때까지 일절 섭취하지 않았다.


또 '아프니벤큐액'이라는, 소염진통제 디클로페낙(Diclofenac) 성분의 가글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같은 역할을 하는 다른 회사 약으로 삼아제약의 '탄툼 가글' 등 여러 제품이 있습니다.)

동네 약국에서 구입하여 아침 점심 저녁으로, 30초에서 1분 정도 물고 있다가 뱉어냈다. 


이틀 정도 관리해주니 말끔히 나았다.



2023년 7월 26일~8월 2일


6일차부터는 격렬한 운동만 하지 않는 걸 제외하면, 평소처럼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이틀 정도는 일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만 외출 시에는 항상 KF94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면역력도 떨어진 상태인데다가, 다시 코로나가 유행하기 때문.


이번 주기까지 아직 머리는 빠지지 않았다.


왜 사람들은 기록을 남길까


내가 그래도 약사라서 참 다행이라 생각하는 점은, 나에게 어떤 일이 앞으로 일어날 수 있을지를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내가 이 암에 대한 모든 내용을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정보에 대한 접근은 수월한 편이라 이게 참 큰 도움이 된다. 


충분하지 않은 정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1만큼만 걱정해도 되는 상황에서 10만큼을 걱정하게 만들고, 

10만큼만 걱정해도 되는 상황에서 100만큼을 걱정하게 만든다. 


또한 고도로 전문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본인의 전공이 아닌 분야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히 알기가 대단히 어렵다.

가뜩이나 이 암에 대해서 얻을 수 있는 절대적인 정보의 양도 많지 않은데, 그마저도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가 힘들다는 뜻이겠지.


나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기록을 남기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근데 그게 전부였을까.

암 판정을 받는 동안, 또 이번 항암치료를 받고 회복하는 동안 여러 번 암에 대해 검색을 해봤다.

생각보다 많은 환우들이 각자의 색깔로 본인들만의 기록을 남겨두고 있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남기는 것일까 궁금했다.


혼자 고민해보다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닐까 마음대로 결론내렸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내가 남긴 무언가는 세상에 남아서 다른 누군가에게 소비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내가 남긴 그 무언가로써, 다른 누군가의 기억 한편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끝이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 끝에 무언가를 남겨두고 싶어했던 게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런 것 같다.


모쪼록, 걱정했던 것만큼 힘들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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