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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02. 암병동 6인실 가운데에서

by 아피탄트 Mar 22. 2025

2023년 7월 16일(일)


후 4시경 수속을 마치고 입원을 완료했다.

혈액종양내과 병동의 6인실, 그 중 가운데 자리에 배정받았다.

입원하자마자 피검사, 소변검사를 하고, 저녁 식사 후 밤에는 흉부 X-ray 촬영과 심전도검사를 했다.


특별히 심장과 관련한 검사를 하는 이유는 호지킨림프종의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약물과 관련이 있다.

호지킨림프종의 경우 일반적으로 항암치료 시에 ABVD요법을 적용하게 되고, 나의 경우도 역시 그렇다.


A - 아드리아마이신(성분명: 독소루비신)         

B - 블레오마이신       

V - 빈블라스틴        

D - 다카바진

(* 아드리아마이신만 상품명, 나머지는 전부 성분명)


 중에서 독소루비신이라는 약은 심장에 무리를 줄 수 있는, 심장독성이 있는 약물이고,

그렇기에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심장의 기능을 필수적으로 평가해야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원을 한 게 항암치료를 위한 입원일 줄이야.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이 몰려와서인가, 반드시 오늘을 기억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만에 써보는 일기일까, 다시 일기장을 꺼내들었다.



오후 4시경 입원을 했다.

태어나 처음 해보는 입원, 환자복이 어색하다.

병원 특유의, 아픈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어두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했다.


내 병실은 혈액종양내과 병동의 6인 1실짜리 병실이었고, 나는 거기서 가운데 자리 중 하나를 배정받았다.

가운데 자리다보니 양 옆자리 사람들의 음성이 칸막이를 너머 새어나왔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음에도 그 소리는 단숨에 내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만한 소리가 되었다.


내 왼 편 분은 고위험도 구역구토 유발 항암제를 쓰시는 분 같았다.

그 분은 한시간에도 여러번씩 괴로운 소리를 내며 구토를 하셨다.

나에게는 그 소리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을 갈망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으면서, 더 적은 빈도이긴 하겠으나, 어쩌면 며칠 뒤 나의 모습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오른 편엔 삶보다는 죽음에 더 가까워보이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엔 아무런 조건 없이 애써주시는 배우자이자 보호자가 있었다.

칸막이 너머의 보호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의 목소리가 전부였지만, 결국엔 그 음성이 내 마음을 무너지게 했다.


해가 지기 전까진 그 보호자는 되게 밝고 긍정적이신 분 같았다.

의식이 온전치 않은 사람을 간병한다는 것이 보통의 마음가짐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만큼 힘든 일일 터인데, 그 분은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잘 보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고 방에 불이 꺼지자, 그는 소리를 죽여가며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은 속상함의 울음 같기도 했고, 원망의 울음 같기도 했으며, 또 서러움의 울음 같기도 했다.


잠에 들지 못한 나는 그 울음을 훔쳐듣고 있었다.

그러다 이윽고 그 보호자가 할아버지께 하는 말도 듣게되었다.

"나 너무 힘들어. 이 빚 어떻게 갚을 거야? 나 이렇게 고생하는데, 어떻게 갚아줄 거야?"

그러나 참 애석하게도, 할아버지는 말을 알아들으실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말의 무게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된 나를 비롯한 병실의 다른 환자들은, 감히 위로의 한마디를 건낼 수조차 없이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오늘 느낀 이 감정을 기억해야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또 나아가서는 어떤 약사가 될 것인가. 



2023년 7월 17일(월)


오전 일찍 교수님의 회진시간이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현재 내 상태, 앞으로 필요한 검사 및 치료에 관한 일정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주셨다.

안타까운 점은 보건의료노조 파업으로 인해 예정보다 퇴원일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속상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대학을 다니던 6년간은 관전자로서, 또 약사로서의 2년여간은 플레이어로서 사회를 경험해보니 세상이 이렇게나마 돌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같았다.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업무들을 겨우겨우 감당해가며 버티고 있는 것일 줄은, 성인이 되기 전까진 알지 못했다.

그러다 한계에 봉착해서, 조금씩 금이 가고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닐까.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런 갈등이 앞으로 더 심해질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회진 후에는 폐기능검사를 했는데, 폐기능검사를 하는 이유 역시 항암치료 약물과 관련이 있다.

블레오마이신의 경우 폐에 무리를 줄 수 있는, 폐독성이 있는 약물이고,

그렇기에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폐 기능 역시도 필수적으로 평가해야한다.


오후에는 복부골반 CT를 찍고 왔다.

이 역시 종양이 얼마나 퍼져있는지를 확인하여 병기를 판정하기 위함이다.

총 세 번째 CT를 찍게 된 건데, 조영제를 넣을 때 나타나는 작열감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2023년 7월 18일(화)


최종적으로 병기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PET/CT 촬영도 필요했는데, 이 날부터 파업으로 인한 지연이 시작되었다.

예정대로라면 PET/CT 촬영을 17일에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18일로 미뤄지게 된 것이다.


6시간 금식 후, 이른 오후에 드디어 PET/CT 촬영을 했다. 

PET/CT 촬영 시엔 약물을 주입 후 충분히 몸 골고루 퍼질 때까지 1시간 정도 가만히 누워있는 과정이 있었다.

그 후 기계에 들어가 몇 분간 왔다갔다하더니 실제 검사는 금방 끝났다.


그러나 파업으로 인해 다른 검사는 또 못하고 하루를 마무리하게 됐다.


*PET/CT란?

 PET(positron emission tomography: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


아주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암세포에게 가짜 먹이를 주고 이를 얼마나 먹으려 가져갔는지를 검출하는 방법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암세포는 성장이 매우 빨라 먹이(?)를 많이 먹기 때문에  촬영시 다른 세포에 비해 특징적으로 나타나게 되며, 이를 CT와 결합하여 해부학적으로 몸의 어느 위치에 암세포들이 분포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2023년 7월 19일(수)


오전에 심장기능검사를 했다.

물론 독소루비신으로 인한 심독성때문이다.


예정대로라면 항암주사를 맞는 날이었지만, 

전날 PET/CT 검사 결과 추가로 확인해야할 부분이 있다며 항암주사를 맞기 전에 초음파검사를 해야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검사를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가능한 가장 빠른 시간이 금요일 오전이었고, 나의 퇴원은 또 금요일 이후로 미뤄지게 되었다.

결국 오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또 하루가 지나갔다.


이 날부터는 종양용해증후군 예방을 위해 아침 저녁으로 알로푸리놀(allopurinol) 100mg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항암주사 후 3일까지 이 알로푸리놀을 복용했다.


* 종양용해증후군(Tumor Lysis Syndrome)이란 암세포가 사멸하면서 세포 내 물질을 혈액으로 방출하면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주로 백혈병이나 림프종같은 혈액암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혈액암이 암 중에서도 빠르게 자라는 암이기 때문입니다.

종양용해증후군으로 인해 고칼륨혈증, 고인산혈증, 저칼슘혈증, 고요산혈증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는 여러 장기에 손상을 입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발작이나 부정맥, 심지어는 사망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중대한 치료 관련 합병증입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 알로푸리놀을 사용합니다.

알로푸리놀은 체내에서 요산의 생성을 억제하는 약물로, 주로 통풍치료제로 사용되는 약물입니다.

항암화학요법에서도 사용되기도 하는데, 바로 이 종양용해증후군으로 인한 고요산혈증을 예방하기 위함입니다.




2023년 7월 20일(목)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있기만 했던 날.

 

내가 입원을 했을 때 같은 입원실에 있던 사람들은 오늘로써 모두 바뀌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병실을 떠난 사람은 내 오른편에 있던 할아버지였다.

의료진과의 상의 끝에 호스피스 병동으로 떠나는 것 같았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또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아낌없이 보내셨길, 그리고 보내시길 속으로 바랐다.



2023년 7월 21일(금)


드디어 오전에 초음파검사를 마치고, 오후에 바로 항암주사를 맞고 오후 5시경에 퇴원하게 됐다.

의도치 않게 길어진 5박 6일간의 입원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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