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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를 3일 앞두고]

01. 호지킨림프종 진단까지

by 아피탄트 Mar 19. 2025

2023년 3월 22일


침을 삼키거나 음식물을 삼킬 때 목에 뭔가 걸려있는 듯한 느낌이 오래 지속되어 주변의 내과를 방문했다.

원장선생님께서는 별다른 진료 없이 해당 증상을 호소하는 가장 흔한 원인이 역류성식도염이고 나의 경우 나이도 젊어서(26세) 딱히 다른 증상을 의심할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역류성식도염 약을 1주일치 처방해주시겠다 하셨고, 반응을 지켜보고 다시 평가해보자고 하셨다.


나는 속으로는 '역류성식도염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지만, 객관적으로 내가 호소하는 증상만으로는 누가봐도 식도염을 의심할만한 상황이었다. 

(나 역시 내가 일하는 약국에 누군가 찾아와 나처럼 증상을 말했더라도 식도염 쪽 약을 드리지 않았을까...)


그리고 역류성식도염을 빨리 Rule Out을 해야 다음 평가를 하게 될테니 처방해주신 약을 성실히 복용했다.



*Rule out(R/O): 질병의 범위를 좁히기 위해 가능성이 없는 질환을 제외해나가는 진단 방법



2023년 4월 26일


처방받은 약을 복용 후에도 차도가 없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일도 좀 있었고, 증상도 경미하다 생각하여 진료를 미루다 거의 한 달을 더 늦게 병원에 방문을 했다.

돌이켜보니 한 달 늦게 병원에 간 이 판단에 가장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래도 한 달만에 다시 내원을 하다보니 치료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다만 이번에는 선생님께서 더 센 식도염 약을 1주일치 처방해주셨다.

나 역시 이번에는 제 때 병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약을 모두 복용했다.



2023년 5월 3일


역시 별 차도가 없었고, 이번에는 내시경 검사를 하기로 했다.

또 하는 김에 2년에 한 번씩 할 수 있는 건강검진도 같이 끼워서 하기로 했다.

여기에 나는 내가 불편감을 느끼는 부위가 혹 갑상선 쪽은 아닌지 의심되어 비급여로 갑상선 초음파 검사도 같이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내시경 검사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고, 갑상선 초음파 검사 결과 갑상선 주변부의 '림프절이 좀 부어있다.'는 소견. 

(갑상선관련 문제는 아니었지만, 결국엔 이 초음파 검사가 암 진단까지 이어진 단서가 되었다.)


원장선생님께서는 림프절이 부은 게 내 증상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판단하셨는지 이번에도 역시 식도염 약을 1주일 치 더 처방해주셨다.

여기서 내 의견을 더 명확하게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데, 내가 호소하는 주관적 증상을 언어로만 전달을 해야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적절한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결국 여기서 또 1주일이 딜레이가 됐고, 다음번 방문시에는 내가 호소하는 증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서 잘 전달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병원을 나섰다.

처방받은 약도 물론 성실히 복용했다.

그래야만 식도염이 아님을 보여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3년 5월 10일


이번에는 여쭤볼 내용을 정리해서 갔다.



1. 한 쪽에만(목의 오른쪽 아래부분) 이물감이 느껴지는 데 역류성식도염이 이런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지

2. 초음파 검사상 림프절이 부어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제 불편감이랑 관련 있을 수도 있는 건지



이 두 가지를 듣고 나니 원장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약물에도 반응이 없고 말씀하시는 거 들어보니 식도염은 아닌 것 같아요. 부어있는 림프절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 후 보통 림프절이 부어있을 때, 약물에 반응하는 반응성 림프절 비대가 있고 반응하지 않는 비반응성이 있다고 하시며, 만약 반응성이 아닐 경우 큰 병원에서 진단을 위한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하다며 우선 1주일 치 약을 처방해주셨다.


처방약은 항생제와 스테로이드.

림프절은 몸의 면역을 담당하는 기관이라서, 감염의 상황에서는 외부의 균과 싸우기위해 염증반응을 일으켜 이 부위가 활성화되므로 비대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기에 만약 내 증상이 감염에 의한 림프절 비대에 의해 나타나는 거라면, 처방받은 약에는 반응을 할 것이다.

항생제는 감염의 원인인 균을 사멸시킬테고, 스테로이드는 몸의 염증반응을 억제해줄테니깐.


원장선생님께서는 약을 처방해주시면서 다음 방문시 반응이 없다면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볼 수 있게 진료의뢰서를 써주시겠다고 하셨다.



2023년 5월 17일


역시 약물에 반응이 없었고, 말씀드리니 원장선생님께서 대학병원 이비인후과로 진료의뢰서를 써주셨다.

운이 좋게도 예약을 취소한 환자가 있어서 이틀 뒤인 5월 19일로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2023년 5월 19일


약속된 시간에 대학병원의 이비인후과로 갔다.

진료를 봐주신 교수님께서는 내 입으로 내시경 기기를 삽입하셨다.

내가 불편을 호소한 부위가 목이었으므로, 식도 부근에서 여러 각도로 찍은 사진을 보시더니 별 문제는 없어보인다고 경부CT를 찍어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대학병원에서의 첫 진료는 3분도 되지 않아 끝났다.

대학병원의 큰 불편함 중 하나를 꼽자면 그건 아마 대기시간일테지..

CT 예약이 가장 빨리 가능한 날이 3주 후였고, 결과를 듣기까진 거기에서 또 1주를, 그러니까 다시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임은 잘 이해하고 있지만, 대기하는 동안 병을 더 키우게 되는 거 아닐까하는 불안함이 들었다.

기다리는 동안 목 이물감은 점점 심해졌고, 림프절이 더 비대해져서 기도를 누르는 건지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중력때문에 누워있을 땐 더 심하게 느껴졌고, 누군가 내 목을 조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2023년 6월 9일


오전 이른 시간 예약이었다.

정맥에 주사바늘을 꼽고 검사실로 간 후, 조영제를 넣고  CT촬영을 했다.

전처치부터 CT촬영까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촬영 후 혹시나 조영제에 의한 알러지가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10분 정도 대기한 후 별 문제 없어 귀가했다.



2023년 6월 16일


지난 진료 후 한 달만에 교수님을 뵙게 되었다.

교수님께서는 CT 검사 결과를 보시더니 바로 표정이 변했는데, 그 때 변하던 교수님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림프종이 의심되는 상황이니 하루빨리 조직검사를 받아야겠는데요."


그런데 이 병원 내에서 조직검사를 하려면 다시 또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며,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 외부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아 올 수 있게끔 의뢰를 해주셨고, 판독기간이 보통 주말 빼고 7일정도 소요된다며 열흘 뒤인 6월 27일로 진료 예약을 잡아주셨다.

추가로 어느 정도 진행이 됐는지도 판단이 필요하다며 흉부 CT도 촬영을 해야한다고 하셨고, 운이 좋아 흉부 CT는 당일 오후 3시 무렵으로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진료실을 나가기 전 꼭 여쭤봐야할 게 있었다.


"제가 7월 3일이 입영예정일인데, 그럼 이건 연기를 해야할까요?"


"무조건 연기하셔야합니다. 필요한 서류가 있다면 다 써드리겠습니다."


같이 왔던 엄마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고, 나도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내가 암이라니.

그러나 당황할 새도 없이, 당면한 일이 너무 임박해 있었다.


오후 3시에 예약된 흉부 CT를 무사히 마친 후, 5시 무렵에는 조직검사를 하러 1시간 정도 떨어진 외부 병원을 갔다.

나같은 상황에 놓인 환자들이 신속히 필요한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두어개의 대학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전문적으로 의뢰받아서 대신 해주는 병원이었다.


당일 바로 추가 CT촬영과 조직 검사를 다 할 수 있었던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큰 불행을 이기기 위해 작은 행운들이 모이고 있는 거겠지.'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애써 위로했다.



2023년 6월 17일~26일 


불안한 나날


암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렇다고 당장 일을 그만둘 순 없었다.

마침 6월 30일이 금요일이라 6월의 마지막 날까지 일을 하고, 주말 이틀을 쉰 다음 7월 3일 월요일에 입대하려 계획을 해두었었다.

군백기라 그러던가, 경력 단절이 두려워서 그 전까지 최대한 오랜 기간을 일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림프종이라니.

림프종이 종류가 되게 많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다시 약물치료학 교과서를 펼쳤다.

그렇게 아침엔 변함없이 출근을 하면서, 퇴근 후엔 다시 공부를 했다.


나는 어떤 림프종이길 바라는 게 좋을까.

최악의 경우엔 '마지막 인사를 해야할 수도 있겠구나'싶을 정도로, 교과서 속 림프종에 대한 묘사는 차가웠다.


그러다 눈에 띈 호지킨림프종.

'완치율이 되게 높은 림프종, 젊은 층에게서 호발.'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전체 림프종 환자 중 4~5% 정도만이 호지킨림프종으로 진단받는다는데, 그럼 연간 2~300명 정도만이 진단받는 희귀암이구나. 내가 과연 선택(?)받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내가 부디 호지킨림프종이길 바랐다.

물론 그 땐 치료과정이 얼마나 힘들지는 몰랐다.



2023년 6월 27일


오전


걱정과 긴장 속에 이비인후과 교수님을 다시 뵙게 되었다.

조직검사 결과 림프종이 맞았고, 그 중에서도 호지킨림프종으로 보인다는 판독 결과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 수술이 필요할 수 있으며, 그 땐 본인이 해야할 역할이 있을 수 있으나, 수술 여부 및 치료 방법 결정 등은 본인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며 혈액종양내과 교수님에게 연결을 해주셨다.



점심 시간


또 운 좋게 오후에 바로 혈액종양내과 교수님 진료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그 사이엔 병원의 권유에 따라 입영 연기를 하고 와야했다.

입영일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아서 전산으로 신청이 불가능했고, 직접 병무청을 방문해야했다.

언제 그걸 다 알아보셨는지 엄마는 이미 병무청에 연락을 취해두었고, 나는 직접 방문해서 서류에 서명을 하며 입영 연기 절차를 마무리했다. 



오후


예정된 시간에 맞춰 혈액종양내과 교수님을 뵈었다.

교수님께서는 앞으로 내 치료를 담당하게 될 거라 하시며 우선 그 전에 조직검사 결과에 대한 교차검증이 필요하다고 하셨다.(어찌됐든 타병원 결과이기에)

그러면서 호지킨림프종에 대해 설명해주셨고, 걱정했던 것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걸 깨달은 부모님께서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1주일 뒤로 외래진료 예약을 잡았고 그나마 가볍게, 아니 아주 무겁진 않게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오전에 교수님의 모습을 보며, 본인의 전문 분야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을 하는 것 역시 전문가가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소양이 아닌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에는 정보의 비대칭이라는 거대한 벽이 존재하는데,

이 벽 때문에 비전문가는 전문가의 말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다보니 비전문가는 해당 전문가에게서 느껴지는 신뢰감이라는 주관적인 느낌을 통해 사실을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잘 모르는 내용을 둘러서 말하고 있는지를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토스가 이런 부분이려나...)


그래서 나는 전문가에게 아주 중요한 무형의 요소 중 하나가 이 신뢰감이라 생각하는데, 그러다보니 간혹 신뢰감을 잃을까 하는 걱정에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처럼 얘기하고픈 유혹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나보다 훨씬 경험이 많고 공부도 많이하신 교수님께서조차 본인의 전문 분야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약학이라는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그런 유혹들을 끊임없이 경계하면서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져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2023년 7월 4일


최종적으로 호지킨림프종 판정을 받았으며, 원내 조직검사 판독이 완료된 6월 30일 기준으로 산정특례를 받게 되었다.

7월 3일이 입영 예정일이었고 6월 30일에 공식적으로 암환자가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입대 3일 전에 암 판정을 받게 된 셈이다.

암과 관련한 산정특례를 적용받게 될 경우 본인부담금이 5%로 확 줄어들기 때문에 치료비용에 대한 부담 역시 크게 줄어 다행이었다.


교수님께서는 이제 치료 전 모든 진단이 완료되었다고 하시며 7월 16일에 입원을 해서 2~3일 정도 항암치료전 필요한 검사들을 받고, 마지막으로 항암 주사를 맞고 퇴원하는 일정으로 치료를 시작하자고 말씀하셨다.

역시 대학 병원이라 입원에도 기다림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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