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두번째 항암치료와 그 이후
2023년 8월 3일
두번째 항암치료의 전 날.
다음날 오전 8시부터 일정이 시작되기에 전 날 미리 올라가야 했다.
다행히 수원에 친척 댁이 있었고, 감사하게 하루 신세를 질 수 있었다.
지방에서 통원 치료를 하니 이런 점이 참 불편하다.
2023년 8월 4일(두번째 항암)
채혈
오전 8시 - 피 검사
오전 10시 - 진료 및 항암제 투여
늦지 않으려고 좀 서둘렀더니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7시 30분 쯤 도착해서 7시 40분 쯤 채혈을 했다.
피 뽑는 일이 잦다보니 이젠 별 감흥도 없다.
채혈 시간이 진료 시간보다 2시간 빠른 이유는, 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 그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어쩌면 되게 당연한 이유..)
그래서 채혈 후 2시간 가량을 커피 한 잔 마시며 기다렸다.
항암제 투여 전 진료
채혈이 20분 빨라서, 진료시간도 20분 빨라졌다.
9시 40분에 진료실에 들어갔다.
항암주사를 맞기 전 피 검사 결과는 괜찮은지, 그간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다.
검사 결과를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교수님께서는 아주 긍정적이라며 이 정도면 딜레이 없이 치료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피 검사 결과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수치는 호중구(백혈구) 수치인데, 특정 수치(보통 1,000/mm³ 부근) 이하가 되면 항암제 투여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백혈구 촉진 주사를 맞거나해서 호중구 수치를 끌어올려야 치료를 이어갈 수 있다.
그러다보면 항암제 투여간격이 더 길어지게 되고 이는 치료효과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기에, 내 백혈구가 잘 견뎌주어 딜레이 없이 항암제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추가로 항암제는 간 수치 등의 기타 혈액검사 수치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이 부분도 확인한 후에 치료에 들어간다.
매 치료 전 채혈을 해야하는 이유다.
다시 교수님의 질문으로 이어지는 대화.
"그간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모든 손가락 끝이 저릿한 느낌이 있어요."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어요. 젓가락질을 하기 힘들거나 단추를 잘 못 채운다거나 할 정도로 불편하지 않다면 따로 약을 처방하지는 않을 거예요."
저림 증상에 사용하는 약들이 부작용이 좀 있기 때문일 터.
보통 신경통에 사용하는 약물들이 duloxetine, amitriptyline, pregabalin 등의 항우울제/항경련제인데, 졸림, 입마름, 축 처짐 등의 부작용이 흔히 나타나는 편이다.
(실제로 정형외과, 신경외과, 통증클리닉 등에서 신경통 증상 조절을 위해 자주 처방되는 약물인데, 약국에서 일할 때 복용하시던 분들이 간혹 축 처지고 졸립다고, 원래 이런 약이냐고 문의하시곤 했다.)
그렇게 짧은 진료를 마치고 항암제 투여를 위해 건물 내 같은 층의 외래약물치료실로 갔다.
다시 항구토제부터
물론 주사의 시작은 예방용 항구토제.
지난 번과 동일하게 두가지의 항구토제를 투여받았다.
이번엔 오른팔목에 주사바늘을 꽂았는데 혈관이 좋지 않았나보다.
주사를 맞는 동안 좀 따끔하더니 부어올랐다.
후엔 좀 괜찮아지는 거 같더니, 결국엔 세번째 항암제부터는 더 버티지 못하고 왼쪽 팔로 맞게 되었다.
바뀐 항암제 순서와 혈관통
지난 번엔 A-V-B-D 순서로 맞았었는데, 이번엔 순서가 바뀌었다.
V와 B를 먼저 맞고 A와 D를 나중에 맞았다.
지난 항암 블레오마이신(B)의 Test dose 투여 시에 아나필락시스 반응이 없어서 그런지,
이번에는 Test dose 투여 없이 바로 치료 용량을 투여받았다.
순조롭게 진행되나 싶었는데, 약물 주입도 잘 안되고 혈관통이 점점 심해졌다.
지켜보던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
"팔을 바꾸는 게 좋겠어요."
결국엔 아드리아마이신(A)과 다카바진(D)은 왼쪽 팔에 맞게 되었다.
왼쪽 팔이 접히는 부분(팔 오금)의 혈관으로 주사바늘을 옮겼다.
왼쪽 팔로 바꾼 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마지막 항암제 다카바진은 다 맞는데 오래 걸리는 약물이기에 2시간 30분 가량은 더 기다렸던 것 같다.
다음 진료 예약
주사가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다음 예약을 잡았다.
다음 번은 [2-1주기], 세번째 항암치료다.
또 2주기 후 시행하게 될 중간 평가 영상 검사에 대한 예약도 잡고 귀가했다.
CT 촬영은 9월 6일, PET-CT 촬영은 9월 7일
귀가 중 더 심해진 혈관통
병원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간단히 밥을 먹는데 처음 주사를 맞았던 오른쪽 팔이 다시 욱신거려왔다.
혈관통이 다시 왔구나 싶었다.
부어오르기도 하길래 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 근처 약국에 들러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로 유명한 그 진통제)을 구매했다.
바로 2알 먹었는데, 효과가 꽤 괜찮았다.
금방 통증이 멎더니 자기 전까지 통증이 없었고, 다음 날에도 다행히 통증은 없었다.
2023년 8월 5일~6일
참 다행스럽게도, 지난 첫번째 항암보다 컨디션이 빨리 괜찮아졌다.
주사 당일만 좀 불편했지(아무래도 장시간 차를 타다보니), 다음날 기상 후부터는 크게 불편한 게 없었다.
그런 내 상태에 나도 좀 놀라면서, 부디 남은 치료 기간도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사 맞은지 이틀이 지난 6일에는 멀리 떨어진 부산의 이케아까지 가족과 외출을 했다.
3층에서부터 1층까지 걸어 내려가게끔 되어있는데, 오래 걸으니 많이 어지러웠다.
1층에서는 사실상 정신력으로 버텼다.
돌이켜보니 안 가는 게 올바른 판단이었다.
사실 겨우 견딜만한 정도였는데, 어느새 '생각보다 할 만한데?'라며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있는 내가 있었다.
어떻게든 잘 이겨내고 있다는 걸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그래서 더 무리를 했나보다.
2023년 8월 7일~8일
이번에도 피해갈 수 없었던 구내염과 변비.
그래도 구내염은 지난번보다 훨씬 약하게(?) 왔다.
혀만 좀 불편한 정도였고, 가글로 잘 관리해주었다.
변비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엔 푸룬주스 딥워터를 먹어봤는데, 효과가 너무 좋았다.
8일 아침 공복에 먹었고 1시간 후부터 신호가 오더니, 4시간 정도는 화장실에 갖혀있었다.
(변비 해결 목적으로 푸룬주스 딥워터를 먹겠다면 부디 밖에 안 나가고 쉬는 날 드시길...)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뀐 날
6일까지는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았다.
두 번째 주사를 맞고도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으니 '혹시 나는 머리가 안빠지려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다음날인 7일부터 갑자기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받아들이진 못했다.
암환자가 아니더라도 매일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지긴 하니까, 딱 그 정도 빠진 거라고 스스로를 기만했다.
하루가 더 지난 8일.
체감이 확 될 정도로 빠지기 시작하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뀐 날이랄까.
더 정확하게는 '혹시 나는'이 '역시 나도'로 바뀐 날이 맞는 거 같다.
당연히 겪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진짜 암환자가 된 거구나'
2023년 8월 15일
두상이 예쁘시네요
하루가 멀다하고 더 많은 양의 머리카락이 빠지는데, 한 번 쓸어넘길 때마다 한 웅큼씩이 땅으로 떨어진다.
그래도 아직 꽤 많이 남아있긴 했지만, 씻을 때마다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세면대를 자꾸 막는다.
그게 불편해서 그냥 밀어버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몰골로 미용실을 가면 미용실 원장님은 어떤 생각을 하실까.
또 안에 있던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쳐다볼까.
그리고 나는 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엄마는 당신께서 자주 다니는 미용실에 내 예약을 잡아뒀다며 거기로 나를 보냈다.
내 입장에서도 가끔 방학 때 집에 내려오면 다니던 곳이라 부담이 덜할 것 같았다.
모자를 쓰고 예약 시간에 맞춰 방문한 미용실, 이내 모자를 벗고 자리에 앉았다.
원장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그저 정성스레 해야할 일을 하셨다.
아마 엄마에게 내 소식을 전해들으신 거겠지, 아니라면 깜짝 놀라셨을 테니까.
샴푸까지 끝마치고선,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거울로 바라보고 있던 내게
"두상이 예쁘시네요.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라며, 끝내 돈은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내가 어쩌다 이런 호의도 받을 수 있는 감사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걸까.
그 과분한 마음에 벅차올라서 며칠간은 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다.
작은 마음이, 사소한 말 한마디가 위태롭고 두려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몸소 느껴봤으니, 기꺼이 작은 마음을 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렇지만 여전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어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