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세번째 항암치료와 그 이후
주사 맞기 하루 전날이 컨디션이 제일 좋은 게 확실한가보다.
오전엔 러닝도 하고 왔는데, 오랜만에 뛰니 참 좋았다.
다음날의 걱정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오후에는 저번처럼 미리 병원 근방의 친척집으로 출발했다.
몇 번 해보니 이게 꽤나 힘들어서 병원 근처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부터는 장거리를 왔다갔다할 필요가 없어져서 참 다행이다.
오전 7시 40분, 예정된 시간에 채혈실로 향했다.
항암제 주사에 비하면 채혈할 때 꽂는 바늘의 고통은 새 발의 피라고나 할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다.
채혈 후에 5분간 지혈을 하고선, 아침식사를 했다.
이번엔 대기인원이 생각보다 많았다.
9시 40분으로 예정된 진료였지만, 10시쯤 되어서야 교수님을 뵐 수 있었다.
우선 피검사 결과를 확인하시던 교수님,
"문제 없이 진행할 수 있겠네요,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변비가 좀 불편했어요. 마그네슘류의 변비약을 처방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알겠습니다. 처방 해드릴게요"
내가 약사인 걸 교수님도 알고 계셔서, 좀 더 전문적인 대화도 주고 받곤 한다.
교수님께서 짧은 진료를 마치면서, [2-2] 항암치료는 1주일 미루자고 하셨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원래 치료가 예정된 날짜(9월 1일)에 교수님의 학회 참석이 잡혀있었기 때문..
나도 흔쾌히 동의할 수 있었던 건, 미루지 않고 진행하더라도 어차피 [3-2] 예정일과 추석 연휴(9월 29일)가 겹쳐 결국엔 1주를 미뤄야했기 때문이다.
조삼모사의 상황에서 교수님의 뜻대로 진행하기로 했고, 지난 회차에 예약해 두었던 CT와 PET/CT도 1주일 연기했다.
모든 얘기가 끝난 후 외래약물치료실로 향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항구토제 주사로 시작.
두가지 항구토제를 연달아서 투여받았다.
약이 정맥으로 잘 들어가지 않자 간호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이고, 혈관은 타고나지 못하셨네요."
이어서 어김없이 혈관통이 시작됐다.
(이멘드라는 상품명으로 유명한 항구토제 포스아프레피탄트는 혈관통을 잘 유발하는 약물이다.)
결국 투여를 잠시 중단하고 다른 혈관을 잡아야했다.
지난 항암에서는 항구토제까지는 견뎠는데, 이번엔 저번보다 더 혈관이 약했나보다.
이번엔 B - V - A - D의 순서.
바꾼 혈관에 B인 블레오마이신까지는 일단 맞았지만, V(빈블라스틴)와 A(아드리아마이신)는 주사 중에 혈관이 터져 혹시 약물이 밖으로 새어 나가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결국엔 혈관을 또 바꾸기로 했고, V부터 다시 맞기 시작했다.
이어서 A를 맞고, 마지막으로 D(다카바진)를 맞았다.
빈블라스틴, 아드리아마이신: 혈관 밖으로 새면 위험하지만 혈관통을 잘 유발하지는 않음.
다카바진: 혈관 밖으로 새도 비교적 덜 위험하지만 혈관통은 잘 유발하는 편.
다카바진 주사 시에 혈관통을 심하게 느낀다면 약물 주입 속도를 늦춰야 한다.
혈관이 약한 나는 별 수 없이 속도를 늦춰서 맞아야 했다.
이번에는 마지막 주사를 다 맞는데 3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끝나고 시계를 보니 오후 4시가 넘어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번 항암주사도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혈관을 2번이나 옮기긴 했지만, 빨리 옮긴 덕분일까.
혈관통은 지난번처럼 주사 이후에도 지속되지는 않았다.
나한텐 치료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혈관이 약해서 혈관을 잡는 게 너무 어렵다.
어쩌면 케모포트를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주사 당일은 좀 불편했고, 다음날부터는 크게 불편한 게 없었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 활동을 하면 많이 어지러웠다.
졸업 후 1년에 한 번씩, 산간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약료봉사를 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번엔 항암 주사를 맞는 다다음 날(8월 20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혹시나 컨디션이 괜찮으면 나도 참가하겠다고 했었는데, 정말로 괜찮아서 참가하게 되었다.
전날 동료 약사님들과 같이 출발해서 주변의 숙소에서 1박을 하고, 일요일인 8월 20일에 봉사를 했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점심시간이 지나면서부터 체력이 소진되었다.
결국 오후에는 중간에 1시간 정도 혼자 휴식을 취해야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괜찮아보이고 싶었던 내가 또 내 몸상태를 과대평가했나보다.
그럼에도 어쨌든 잘 마무리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였다면 못했을 텐데, 동료들 덕에 겨우 해낼 수 있었다.
이번엔 구내염은 괜찮았지만, 식도 부근이 좀 불편했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구내염이 식도로 왔다고 하면 좀 더 와닿을 것 같다.
식도의 점막세포들이 손상되어 붓는 느낌이랄까.
다행히 심하진 않았고 하루 정도 지나니 괜찮아졌다.
변비는 이번에도 피할 수 없었다.
처방 받은 약이 효과가 탁월한 변비약은 아니다보니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결국엔 또 푸룬주스 딥워터를 먹었다.
이제는 한 4일차 정도가 되면 정상 컨디션을 되찾는 것 같다.
정상 컨디션을 찾고 나서부터는, 가급적이면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몸을 움직이려고 하고 있다.
하다못해 음료를 마시러 카페에 가는 일이라도 하면서 조금씩은 움직이고 있다.
다음 주사는 예정보다 1주일이 더 늦춰졌기에, 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괜찮은지 알았던 혈관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팔이 땡땡부어서 냉찜질과 진통제를 달고 살게되었다.
늘 냉동실에 얼음을 얼려두는 습관이 생겼다.
9월 1일로 예정된 항암치료가 1주일 늦어진 덕에, 가깝게 지내던 대학 동기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건, 내 소식을 간접적으로만 접했던 이들에게 처음으로 내 모습을 보여준다는 뜻이기도 했다.
머리도 눈썹도 없어서 모자를 쓰고 식장에 간 나는, 누가 봐도 아픈 사람의 모습이었다.
혈관통 때문에 팔도 너무 아파서, 500ml짜리 차가운 생수병을 계속 팔에 대고 있어야 했다.
어찌저찌 오랜만에 본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시작된 결혼식,
이내 식이 다 끝나고 이어지는 사진 촬영 시간.
사진사가 크게 외쳤다.
"이번엔 신랑, 신부 친구분들 차례입니다."
나는 선뜻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고, 끝내 함께하지 못했다.
두가지의 생각이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초라한 모습이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
'인생에서 가장 기쁘고 행복한 순간 중 하나인 결혼식에, 기쁨이나 행복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인 것 같은 내가 과연 결혼을 기념하는 사진에 어울릴까.'
축의금도 많이 할 수 없었다.
항암치료를 하느라 일을 못해서 소득은 없고, 생활비는 계속 나가니까 좀 빠듯했다.
그게 미안해서 그저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고싶었다.
그러다 결국 식사 중에 눈도장을 찍게 됐는데, 당사자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와준 것만으로도 참 고마워했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마저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할만큼, 내가 참 초라했다.
문을 열고 나선 순간부터 각오했지만, 버거운 건 어쩔 수 없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