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네번째 항암치료와 그 이후
1주일 미뤄진 [2-2].
어김없이 진료 2시간 전 채혈로 일정이 시작된다.
오전 8시 무렵 병원에 도착해서 채혈을 했다.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인데, 병원 어플리케이션에 로그인을 하면 내 혈액검사 수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호중구수치(ANC)는 2080으로 정상 수치까지 올라왔다.
지난 결과를 확인해보니 아슬아슬 했다.
- 8월 04일: 726.4
- 8월 18일: 952.0
만약 500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호중구감소증으로 인해 치료를 미루는 경우가 있는데, 어쨌든 그러진 않아서 참 다행이다.
교수님과의 대화.
"혈액검사 수치가 아주 좋네요. 호중구수치도 많이 회복 되었어요."
"아 네. 제가 근데 혈관통이 너무 심한데, 그 때 소염진통제(NSAIDs; 부루펜 탁센 등)를 복용해도 될까요?"
"그럼요. 그리고 케모포트는 심는 걸로 합시다."
가급적 침습적인 시술은 안하고 치료를 진행하려던 교수님은, 혈관통이 너무 심하다는 내 얘기를 들으시더니 그럼 케모포트를 심어야겠다고 하셨다.
예약은 10월 4일.
다다음번 항암부터는 혈관통 없이 주사를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당장 이번 항암은 팔에다가 맞아야하기에, 또 혈관통으로 고생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교수님께 부탁드렸다.
"에멘드 주사제(혈관통 유발 항구토제)를 먹는 약으로 좀 바꿔주시면 안될까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료 후 주사실로 이동해서 항구토제로 시작했다.
우선 에멘드 캡슐 125mg을 복용하고, 이어서 팔로노세트론(알록시) 주사를 투여받았다.
* 에멘드를 주사로 투여받을 경우 항암 주사 당일만 투여하면 되지만, 먹는 약인 캡슐로 복용을 할 경우에는 총 3일간 복용을 해야합니다.
(첫 날은 125mg, 2~3일 째는 80mg)
주사 하나 바꿨다고 지난번에 나를 그렇게 괴롭혔던 혈관통이 하나도 없었다.
이번에도 B - V - A - D의 순서로 맞았고, 다 맞고 나니 지난 [2-1]보다 1시간여 빠른 3시 정도 되었다.
다음 [3-1]에서는 B도 안 맞아도 되어 더 빨리 끝나지 않을까.
참 신기하게도 이 날 주사 이후로 혈관통이 사라졌다.
다만 이번 주기엔 구역감이 너무 심했다.
밤부터 점점 심해지더니 말을 하면 구역감이 더 심하게 느껴져 말을 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결국 귀가 후 밥만 먹고 계속 잠만 잤다.
주사 후 2일, 3일차까지는 기상 후 에멘드 캡슐(aprepitant) 80mg 복용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다행히 날이 지날수록 구역감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침에 괜찮다가 저녁으로 갈수록 점점 심해지는 양상이었다.
주사로 맞았던 지난 세 번보다 이번이 훨씬 힘들었다.
구역감만 빼면 다른 부작용은 괜찮았다.
혈관통도, 변비도, 구내염도 없었다.
종종 괜찮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같다.
"견딜만은 해요."
내 직업의 장점 중 하나를 꼽자면 구직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이다.
전에 일하던 약국에서 이틀간 사람이 필요해 내가 일을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일터에 복귀해 오후에 5시간 씩 이틀간 일을 했는데, 솔직히 아직은 좀 버거웠다.
그래도 가끔씩 5시간 정도 일하는 거라면 무리없이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일에도 감사함을 느끼는 습관이 생겼다.
여전히 일을 할 수 있다는 데에 또 감사함을 느끼는 하루였다.
우여곡절 끝에 [2-2]까지 무사히 지나가게 되었고, 이제 중간평가를 앞두고 있다.
9월 14일 오후에는 CT가, 9월 15일 오전에는 PET CT가 예약 돼있다.
한편으로는 암세포가 얼마나 죽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혹시라도 반응이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되긴 한다.
치료에 불응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걸 알지만, 막상 겪어보니 그런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적당한 긴장감 속에서 차분히 다음 진료를 기다려야지.
아, 요즘도 가끔 일기를 쓴다.
내 나이대의 사람들이 다 그러하듯, 나 역시 마음 한 편엔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경쟁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런데 사회가 점점 파편화됨에 따라 집단이 가진 힘 역시 점점 줄어들고, 대중은 그 개인이 어떤 집단에 속해있는지보단 그가 어떤 서사를 갖고 있는지를 더 주목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약사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는 점점 줄어들 것이고,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나만의 서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암은 내게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암에 걸린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항암치료를 견뎌내고 암을 이겨내고 있는 지금 이 과정은 충분히 자랑스럽고 의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하진 않았지만 이는 내 서사가 되었으니, 나는 계속 이야기를 써내려가야지.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많은 감정과 생각을 기억하고 기록해야지.
그렇게 암 마저도 내 스펙으로 만들어야지.
그 많은 경쟁자들 속에서, 굳이 나를 선택할 이유로 만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