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원 와이프들 재수 없다고?

타지에서 다시 배우는 관계의 거리

by 기록가 슈
주재원 와이프들, 재수없다고.png


요즘 ‘주재원 와이프’가 핫하다면서


요즘 쓰레드에서
‘주재원 와이프’라는 키워드가 유독 자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좋은 얘기는 거의 없고,
나쁜 얘기만 유난히 잘 모여 있다.


미국 내 한인 커뮤니티도 비슷하다.
주재원 가족은 어느새 동네북이 되었다.


어차피 떠날 애들이니 정 줄 필요 없고,
믿고 거르라는 말이
마치 상식처럼 오간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여자들은
대체로 “이상하다”는 결론으로 정리된다.





가만히 있어도 욕을 먹는 이유


왜 그런 걸까.

우리가 먼저 숙이고 들어간 걸까.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가만히 있어서 욕을 먹는 걸까.


나도 한 번쯤은
반기를 들어볼까
이를 간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선이 어디서 오는지는 안다.


집과 차, 보험까지 포함된 상태로
갑자기 생활이 펼쳐지는 주재원 가족의 모습은
이민 1세대가 직접 개고생 하며 만들어온
삶의 기본값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숨 막히게 경쟁해 온 한국에서의 시간은 가려진 채,
겉으로 보이는 건
“뭐지?” 싶은 장면들뿐일 테니까.


하지만 그 지원은
호의라기보다는 목적에 가깝다.
회사는 사람을 보내는 만큼
즉시 일하기를 원한다.

땅을 밟는 순간부터
성과가 나와야 하니까.


그래서 요즘 주재원은
오히려 한국보다 일이 더 빡센 경우도 많다.


대기업을 경험해 본 아내로서
이런 남편의 상황을
나는 꽤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이사를 앞두고
내 커리어가 끊긴다는 사실만큼이나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주재원 아내’가 되었다고
지원 사항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자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손절이 잦아졌고, 나는 잠시 나를 의심했다


미국에 온 이후
나는 유난히 ‘손절’을 많이 하고 있다.


한 번은 우연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문제인가?


사람을 너무 쉽게 믿은 건 아닌지,
내가 예민한 건 아닌지.


하지만 한국에서는 겪지 않았던 일들이
이상할 정도로 반복됐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패턴이 너무 또렷했다.




나는 원래 바운더리가 강한 사람


사실 그렇다.
나는 원래 바운더리가 약한 사람이 아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그래서 미국 사람들과의 관계가 훨씬 편하다.


문제는 미국이 아니라
미국에 있는 한국식 관계였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인사하고, 말 섞고,
사회생활을 하듯 “네, 네”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예의가
어느 순간부터
허락으로 오해되기 시작했다.


거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동의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과 ‘챙김’이라는 이름의 침범


조금 챙겨준다며 다가오고,

거기에 ‘정’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해외에서는 한국 사람끼리
서로 도와야 한다는 말도 빠지지 않는다.


말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정신 차려보면
요청하지 않은 조언이 쌓여 있고,
원하지 않은 정보가
이미 내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선을 긋는 순간,
분위기는 바뀐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말이 나오고,
“자기는 다 잘해준 것뿐”이라며
갑자기 피해자는 그쪽이 된다.


혹은 더 가까이 다가온다.

“내 말 좀 들어봐.”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어느 순간, 안방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어느 날은
마치 내 안방 침대에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초대하지 않았는데 들어와 있고,
나가달라고 하면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얼굴.


그때 비로소 깨닫는다.

이건 무례의 문제가 아니라,
침범의 문제라는 걸.




“정보만 빼먹는다”는 말에 대하여


주재원 와이프에 대한 서사는 늘 비슷하다.

정보만 빼먹는다.
영악하다.
달라붙는다.


하지만 요즘은
정보가 없어서 사람을 찾는 시대가 아니다.
검색은 기본이고,
자료는 넘쳐난다.


더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은 정보를 ‘얻으러’ 오지 않는다.
이미 한국에서
정보를 다루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영악하다’는 말의 진짜 번역


우리는 사는 게 바쁘다.
집안일, 아이 일정, 공부, 투자,
그리고 언젠가의 재도약까지.


누군가에게 달라붙을 여유도,
그럴 이유도 없다.


아이들이 똑똑하면 영악하다고 하고,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이
한국말 잘하고 은어 쓰면
순수하지 않다고 한다.


학습 능력이 뛰어나면
어느새 나는 극성맘이 된다.


커리어가 잠시 멈춰
공부를 시작했더니
“나도 전문직 준비하려던 사람이야”라는 말이 따라온다.


가끔 회사 관둬서 눈물 난다고 농담했을 뿐인데
나는 또다시 그들에게 우울해서
챙겨줘야 할 관리대상이 된다.


이 모든 말의 번역은 단순하다.


네가 나보다 앞서 보이면 불편하다.


나도 초반 1~2년까지는
“한국 사람은 피하라”는 말들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아닌데?
나는 좋은 사람들 만났는데?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비슷한 장면들을 몇 번 더 겪고 나서야
알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말을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그건 배척이 아니라,
나를 지키라는 경고에 가까웠다는 것도.


한국 사람을 피하라는 말은 배척이 아니라 생존 조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선을 먼저 긋는다


우리는 정보를 요구한 적도 없고,
관계를 강요한 적도 없다.


다만
자기 삶을
자기 기준으로
살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친절과 허락을
같은 말로 쓰지 않기로 했다.


가만히 있어도 침범당하는 관계라면,
지켜야 할 건
정이 아니라
바운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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