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달 동안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했다. 한 손을 쓸 수는 있었지만 가위질도 하지 못했고 컴퓨터를 할 때도 불편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많이 아파 보였다. 아마 깁스 때문인 것 같았다. 병원에서는 한 달 뒤에 깁스는 풀더라도 힘쓰는 일은 안 하는 게 좋다고 했다.
한 달 뒤에 출근은 기쁜 마음으로 했다. 하지만 출근한 첫날부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선생님 반 아버님이 원장실서 안 나가고 있어.”
“무슨 일이죠?”
난 병가 후에 첫 출근 날이었다.
“선생님이 나보고 못된 아이라고 했어.”
이 말을 들은 아이의 아버지가 어린이집에서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 회사를 안 가신다고 한 것이었다.
나는 아이의 아버지와 이야기를 계속 나눴다. 한참 뒤에
“우리 선생님이 그런 것 아니야.”
갑자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아이의 그 말이 나올 때까지 해명을 하느라 힘들었다.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었다. 결국 그 일은 아이가 아빠와 놀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해프닝 같은 일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어린이집 일이 많이 힘들었다. 수업준비, 학부모 상담, 행사준비, 일지 쓰기, 청소 등의 일들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 당시에 나는 어린이집 화장실 청소를 매일 했다.
어린이집은 매달 행사가 있고 교사들은 이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 분기마다 환경판을 만들고 외부에 전시하는 아이들의 작품판 구성도 해야 했다.
밤에 남아서 하는 일들은 보통 환경판 구성인 경우가 많았다. 색도화지로 도안을 대고 예쁘게 꾸며야 한다. 나는 이 재주가 없었다.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작품 완성도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만든 것들을 이용해서 환경판을 만들었다.
한 번은 외부 작품판을 만드는데 2주나 걸린 것도 있었다. 퇴근 후에 남아서 내 키보다도 몇 배나 큰 작품을 혼자 걸기도 했다.
그때는 정말 일을 열심히 했다. 내가 가진 능력 이상으로 최선을 다해서 일을 했다.
내가 다니던 어린이집은 직장 어린이집이었는데 일반 자녀도 입학이 가능했다. 원장님의 아이들은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 수업이 끝나면 내가 있는 반으로 들어왔다.
원장님은 방과 후 반을 만들어서 자신의 아이들을 등록했다. 유아반이었던 나는 방과 후 반을 맡아서 했다.
“선생님이 우리 애들 신경을 안 써줘서 내가 방과 후 반에 넣었으니까 신경 좀 써요.”
나는 유아반을 맡는 동안 원장님 아이들도 같이 보았다. 방과 후반은 아이들의 숙제를 지도하거나 수업을 따로 준비해서 운영해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일이 힘들고 마음이 좋지 않을 때 만난 S는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그는 마마보이도 아니었고 나를 무시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린이집 교사인 내가 멋지다고 했다.
S는 나에게 관심이 많았다. 나는 평일에 늦게 퇴근을 해서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그는 나를 보러 집 근처로 왔다.
우리는 아주 빠르게 친해졌다. 그때는 우리가 성격이 아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재밌는 사람이었다.
“저 많이 놀아봐서 재밌는데 많이 알아요.”
S는 진짜 잘 놀았다. 그는 맛집이 어딘지도 잘 알고 무엇을 해야 재밌게 노는지를 알았다.
나는 비혼주의자와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고 싶었다.
“결혼은 할 거예요?”
S는 얼굴이 빨개졌다.
“나랑 결혼하게요? 나 돈도 없어요.”
“네?”
“그쪽이 먼저 결혼하자고 했어요.”
“제가요? 결혼을 안 하는 사람이 많아서 궁금해서요.”
S와 나는 그날 이후로 사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