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보다 이별의 아픔이 크지 않았다. 그에 대한 미움도 시간이 지나니 잊혔다. 그와 함께 있는 동안에 슬펐던 그 마음들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연인 대신 친구가 그 자리를 대신해 주었고 어린이집의 이벤트가 많아서 나는 그것에 내 시간을 쏟았다.
어린이집에는 매달 벽에 전시할 작품을 붙여야 했고 아이들의 수업을 오리고 붙이고 정신이 없었다. 주말에도 가위질은 끝나지 않았다. 어린이집 교사는 쉴 시간이 없었다.
평일에는 일지를 쓴다고 밤까지 일지를 쓰다가 잠든 날이 많았다. 나는 이별 뒤에 일이 너무 많았다. K와 사귈 때는 슬펐던 시간들이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시간들이 되었다.
나는 토요일 아침에 사우나를 갔다. 그곳에서 오래 머물지도 않았지만 나는 대기 의자에 잠깐 앉아있다가 S를 만났다.
S는 평범한 외모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썼다. 그 사람도 나처럼 쿠폰 할인을 이용해서 온 사람이었다. 우리는 쿠폰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갑자기
“좋은 쿠폰 있으면 말해줘요.”
지금 같으면 그냥 지나갔을 텐데 그때의 나는 그에게 내 전화번호를 줬다.
S는 2주가 지나서 먼저 연락을 했다. 그는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그를 만난 날
“타세요.”
“차를요?”
“안 잡아가요. 타요.”
그는 유머가 좀 있었고 성격도 외향적이었다.
그는 오리엔탈스푼에 가자고 했다. 그곳은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음식점이었다.
처음에는 음식 취향이 비슷한 줄 알았다. 음식을 먹고 계산을 할 때 나는 음식값의 절반인 2만 원을 그의 손에 주었다.
“이걸 왜 줘요?”
“각자 내요.”
“제가 낼게요. 커피 사세요.”
그는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뭔가 웃기다는 듯이 나를 보고 웃었다. 나는 그에게
“왜 웃어요?”
“누가 돈 주는 건 처음이어서요.”
그는 내가 편해 보였다.
그는 그날부터 매일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어린이집 교사여서 퇴근을 하는 시간까지 핸드폰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있던 원은 출근을 할 때 핸드폰을 옷장에 넣어야 했다.
“원래 그렇게 연락이 안 돼요?”
“어린이집에서는 전화받기 힘들어요.”
그는 내가 출근을 하는 시간에 매일 전화를 했다.
“출근 진짜 빠르네요.”
“7시 30분 오픈이라서 7시까지 가야 해요. 보리차를 끓여야 해서요.”
내가 다니던 원은 아이들이 보리차를 먹어야 하는 방침 때문에 오전 7시에 보리차를 끓여야 했다. 나는 아침 당직인 날은 집에서 오전 6시에 나왔다.
원에 교사가 3명뿐이어서 당직도 거의 매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오후 당직을 하고 수업 준비를 하다가 어린이집에서 늦은 시간에 나왔다. 그날은 건물의 불이 전부 꺼져있었다. 전기 절약을 한다고 건물에 등을 대부분 끈 것이었다.
나는 평소에 내려가던 계단을 내려가다가 그만 계단을 잘못 밟아서 미끄러지며 굴러 떨어졌다.
나는 못 일어났다. 그 시간에는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나는 눈을 뜨고 몸이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집에 도착해서 바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찍 출근을 했다. 팔과 다리가 참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그리고 아픈 곳이 보라색으로 변해있었다.
“원장님 저 병원을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어제 퇴근하고 갔어야지 애들이 지금 전부 있는데 병원을 어떻게 가요. 퇴근 후에 가세요.”
그 당시에 어린이집 교사는 아이들이 있을 때 마음대로 병원을 갈 수 없었다. 나는 이미 그 아픔을 견딜 수 없었다.
“정말 죄송해요. 너무 아파서 못 참겠어요.”
원장님은 점심 시간 이후에 병원을 다녀오게 허락해 주셨다.
“다리랑 팔에 금이 심하게 갔어요.”
보라색으로 변한 팔과 다리는 금이 갔다는 의사의 말에 깁스를 했다.
“언제 나아요?”
“그 일은 못 하실 것 같은데. 다 나아도 조심해야 해요.”
‘행사는 어떻게 하지?’
어린이집은 행사가 한 달에도 몇 번씩 있었다. 행사 준비를 위해 야근도 필수였다.
깁스를 팔과 다리에 하고 목발을 짚은 나를 보고 원장님은 걱정이 많아 보이셨다.
“일을 못 하겠네요.”
나는 결국 한 달의 무급 휴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