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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9. 23, 24

몰아 쓰는 작업일지

by 명희진

이번 주는 일은 하나도 못 하면서, 또 바쁘기는 너무 바쁜 날이었다. 작업 일지를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작업을 한 게 없어 쓸 게 없기도 했다. 겨우 소설 연재를 날짜에 맞춰서 올렸을 뿐이다.


그 사이 친구로부터 김 선생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이는 브런치 첫 번째 글인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에 보면 자세히 나와있다. 사실 김 선생의 만행에 대해서는 계속 듣고 있었다. 여름에 나와 함께 하기로 한 사연자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김 선생이 대학에서 계약 연장이 되지 않았고 그게 나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나에게 고소를 하지 않기로 했으면서 왜 그랬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분은 김 선생이 너무 불쌍하다며 내게 이런 상황이라면 사연자에서 자기도 빠지겠다고 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김 선생을 고소할지 말지를 고민 중이었고 고소는 하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 다 잊고 그와는 상관없이 지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나는 그분에게 김 선생이 불쌍하고 안타까우면 그쪽으로 가는 게 맞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가 지나 사연자분들에게 메일이 왔다. 모든 분들이 사연을 철회한다는 동의서였다.


나는 그곳의 대표 외 2인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의 연락처를 몰랐다. 1년이 넘게 녹음된 사연을 채록하고 정리하고 글을 쓰면서 그들의 연락처 하나 몰랐다. 일이 다 끝나고 휴가차 방문한 비엔나에서 그룹의 대표와 다른 2명을 만났을 뿐이다. 그분들은 내 존재도 몰랐다는 식으로 말했다.

지나고 보니 모두 김 선생의 계획이었다. 사연 동의서를 받고도 꽤 오랫동안 나와 공유하지 않았고 내가 사연자들에게 직접 연락하겠다고 요청했을 때도 그녀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 이를 막았다.


어쨌든 나는 그동안 일을 정리해 보내며 동의서 철회는 사연자들이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초고를 읽고 고치는 작업이 이미 녹음 돼 있었다.


참 이상하지? 사연자들은 단 한 줄도 쓰지 않은 김 선생에게 ISBN 넘버와 책 표지에 이름을 표기하길 바랐다. 단지 그녀가 안 됐기 때문에.... 단지 그녀의 얼굴을 알고 그가 인터뷰를 했기 때문에... 내가 작가로서 지키려 애쓴 원칙은 무시당했다.


김 선생의 대학에 연락했다. 그녀의 그동안 행실 때문에 계약연장이 안 됐음을 알았다. 이를 관련 학과의 교수로부터 메일로 받았다. 김 선생은 이를 또 문젯거리로 만들려 하고 있다. 대학에 자신과 관련해 주고받은 이메일을 보내라고 하면서 학과 교수를 고소하겠다는 소문을 주위에 내고 다녔다. 그녀를 교수 사칭으로 학교가 고소할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정말 모르는 걸까? 여전히 내가 그녀를 업무방해로 고소할 수 있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 지금도 그녀의 이름을 치면 ---교수라고 뜬다. 그 이름으로 한국의 여러 대학을 다니며 강의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그녀가 4개월에 한 번씩 계약을 연장하는 계약직이라는 것과 그녀가 몸담고 있다는 학과와 오래전에 인연이 끝났음을 알게 됐다.


이 과정에서 글로 쓰고 싶지 않은 많은 사실을 알게 됐고 그녀 인생이 대부분 거짓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러고도 꽤 오랫동안 그녀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점점 지쳐갔다. 그녀의 캐릭터가 놀라웠다. 지금껏 살며 접하지 못한 캐릭터였고 그녀가 안쓰럽고 가여웠다. 좋은 캐릭터 하나 얻는 걸로 이 모든 작업을 덮어두려고 했다. 사실, 그토록 복잡하고 거짓인 그녀의 인생에 손가락질도 하고 싶지 않았다. 시시비비를 가리길 좋아하는 내가 그녀의 인생에 질려버렸다. 더 아는 게 무서웠다. 더 알면 정말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조카의 방문과 짧은 여행 등으로 바쁜 와중에 그녀가 여전히 여기저기에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 거짓말은 그냥 다 비슷했다. 내가 혼자 책을 가로채려 했다는 것과 나 때문에 대학에서 잘렸다는 것, 자신이 정교수가 될 수 있었지만 여러 모략으로 그렇게 되지 못했다는.....


그리고 이 일과 아주 가까운(그녀의 다른 피해자) 누군가가 내게 그녀의 논문을 취소해야 한다고 했다. 그게 정직하고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미 내 글은 서랍에 묻혔고 내가 작업한 1년이 넘는 시간은 공중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파면 팔수록 지저분한 그녀의 삶에 더는 끼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그렇게 착실하게 거짓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라면, 나는 되도록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다른 분들의 인터뷰를 새로 받고 있다. 내가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과 그냥 하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 갈등이 크다. 아직 받은 인터뷰 파일과 정리본도 살펴보지 않았다. 마음이 무겁다.


책 한 권을 내려고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하는지 나는 너무 잘 안다. 단순히 이야기가 좋아 일생을 허드렛일을 하며 때를 기다리는 이들도 나는 손가락을 여러 번 접을 만큼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김 선생을 이해할 수 없다.


이번 주는 내내,


아마도 다음 주까지 뭘 쓰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 9월 말까지 장편을 완성하기도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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