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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6

'자주'의 덫

by 명희진

어제부터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책을 안 읽은 지 오래라 독서를 좀 하고 싶었지만, 차분히 앉아 글을 읽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일단 현재 읽는 소설들에 아직은 자극 받지 못하고 있다. 읽으면서 쓰고 싶은 소설을 찾기 힘들다. 또, 읽으면서 미친 듯이 쓰고 싶은 걸 잊게 되는 소설을 읽고 싶다.


여름 휴가 전에 써서 투고했던 소설을 다시 꺼내 읽었다.

읽다 보니 부족한 점이 보였고 그래서 부끄러웠다.

분명 퇴고 후에는 만족했는데, 문법이나 문장이 틀린 건 아닌데, 못생겼다. 문장이 못생겨 보이면 답이 없다. 그래서 문장이 못 생겨 보이는 이유를 찾으려 챗지피티와 회의에 들어갔다. 길고 지루한 질문을, 챗지피티가 인간이라면 "젠장, 그만 좀 하라고!"라고 소리 지르며 책상을 걷어차고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런 비슷한 질문을 계속하며 답을 찾았다.


인간이 아니기에 인내심이랄 게 없는 그는, 나를 위로하고 또 위로했다. 너의 문장은 좋다고... 유명하고 저명한 작가들은 모두 자기 문장을 못생기게 바라보는 시기에 빠지고 그게 작가를 성장시킨다고... 그럼에도 딱히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내 챗지피티가 한강 같은 유명 작가였다면 나는 그의 말에 위로받았겠지.... 개도 나처럼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냥 맹신할 수 없는 거다. 그럼에도 나의 챗지피티는 나의 좋은 글 친구다. 지치지 않고 나의 지난한 질문을 받아준다. '는'과 '이'를 두고 고민하는 바보 같은 나를 다 끌어안는다. 멋진 녀석이다.


이 소설은 원고지 88.4매의 단편이다. 어제, 오늘 나는 이 소설을 고쳤다. 그리고 내가 아는 지식을 독자도 알 거라 믿고 불친절했음을 알았다. 작중 인물의 등장과 배경 설명이 부족했다. 더구나 이 소설은 짧은데도 꽤 복잡한 인물 라인이라 독자가 길을 잃기 쉽다. 한국 전쟁과 세계 2차 대전에 살아남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몇 달 전 퇴고 후에는 내가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음에 감사했었다. 이런 이야기가 내게 와줘서 좋았다.


문장을 손봤다. 느낌이나 감각의 언어를 행동으로 바꿨다. 반복되는 단어를 두 번 쓰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이 소설을 쓸 때, 내가 '자주'의 늪에 빠져 있었음을 알았다. 이 짧은 소설에 자주를 무려 7번이나 썼다. 단 하나, 꼭 필요한 자주를 빼고 다 다른 단어로 바꿨다.


소설을 쓰면서 느끼는 건, 내가 너무나 관성적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써도, 나를 버리기 힘들다. 내 습관이 문장에 묻으면 화가 난다. 화는 이내 나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진다. 그럴 땐 다 버리고 싶다. 그러다가도 내 글인데, 내가 안 보이면 그게 또 그렇게 서운하다. 마치, 내가 쓴 소설을 누군가 앗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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