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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9. 22

조카가 왔다.

by 명희진

주말에는 조카가 한국에서 와서 이런저런 물건을 사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작업일지랄게 없어 쓸 것도 없다. 금요일까지는 쓰고 있는 장편을 조금 썼다. 이전까지는 고치면서 조금씩 새로운 장면을 추가하는 거였다면 이번에는 새로 챕터를 써야 한다. 다음 주까지 시간이 없어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내서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토요일 오전에는 루이 한글학교에 갔다가 운동 갔다. 로컬 마켓에 가서 연어 1.6킬로를 사 왔다. 저녁에 조카가 오면 회를 떠주려고.


내가 보기에는 루이 한국어가 조금 는 것 같다. 물론, 여전히 부족하지만. 조카와 되도록 한국어로 말하려고 하는 것도 큰 발전이라면 발전이다. 나도 루이처럼 천천히 네덜란드어 말하기가 늘고 있다. 가끔 단어가 바로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사실 많다. 어떨 때는 뻔뻔하게 영어 단어를 써 놓고 그게 영어 단어인지도 잘 인식을 못하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러면 영어 천재인 네덜란드 사람들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준다. 그런 것 같다.


이번 주에 루이 생일 파티 대신으로 디즈니랜드에 가기로 했다. 티켓도 알아보고 호텔도 알아봐야 하는데, 집안 일도 많고 조카 기숙사 용품도 사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이케아에 가서 베개, 이불, 그릇, 냄비 같은 것을 샀다. 조카도 나도 유학은 처음이라, 이렇게 많은 게 필요한지 몰라서 놀라고 있다. 숟가락, 젓가락 같은 자잘한 것들도 얼마나 많은지 이삿짐과 견주어도 지지 않을 정도다.


KakaoTalk_20250922_171654720.jpg


첫날은 조카와 잤다. 다음 날엔 라파엘과 의논할 게 있어서 침실로 갔는데, 판테가 내 자리에 가로로 누워서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어서 다시 조카가 자는 방으로 갔다.


월요일에 단편 연재가 있었다. 이번 거는 무사히 올리긴 했는데, 오늘 밤에는 [아뉴파인스키]를 손봐야 한다. 지난번에 한 번 읽었는데, 그때는 어느 정도 손을 보는 게 맞는 건지 몰라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정도만 손을 봤었다. 사실 이 작품을 연재할지도 정하지 않아서, 그냥 '어떤 이야기를 썼더라'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쓸 당시의 나와 라파엘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일 년간의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본격적으로 네덜란드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던 우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이런 류의 소설을 거의 일 년 간 썼다는 것도 알게 됐다. 유럽을 배경으로 한 몇 개의 단편과 두 개의 중편이 있었다. 그중 이 소설은 특별했다.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고 이야기가 가는 데로 내가 따라갔다. 앞서 작가의 말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호텔 앞의 예수님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쓸 테면 한 번 써 봐!"


그는 처연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내게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얼마 전에도 차를 타고 그 성당앞을 지났다. [아뉴파인스키]의 모델이 된 그 성당을. 그때부터 최근에 쓴 소설까지, 나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내일은 작업을 좀 할 수 있길 바라지만, 조카의 생활 용품을 사러 시내에 또 나가야 한다. 거기엔 라파엘과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 어쩌면 내일은 그 카페 이야기를 조금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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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화, 수,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