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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9. 16

강풍에 맑음

by 명희진

오늘도 루이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7시에 일어나 라파엘 도시락을 싸고 책상에 앉았다. 그때부터 10시까지 작업했다.

그 사이 루이는 일어나서 유튜브를 보다가 게임을 했다. 오늘은 미디어 보는 걸로 스트레스받지 말자고 다짐했기에, 거슬렸지만 참았다. 최소한의 공부도 시키지 않았다. 작업 중간중간 뭘 먹을 건지 물었고, 루이는 아직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다.


11시가 지나 아침 겸 점심을 차려주고 다시 작업했다. 그 사이 지인과 야무지게 통화도 하고. 다시 작업했다. 장편 소설 1교를 교정했다. 중복되는 단어와 표현, 설명적인 문장을 고쳤다. 달맞이 가게 아줌마도 다 목포댁으로 고쳤다. 쓸 때는 몰랐는데, 항상 퇴고 때 느끼는 게 습관이 무섭다는 거다. 습관적으로 어떤 단어를 반복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걸 알았다. 이번에도...


두 시쯤에 루이가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아무래도 어제 마트에 다녀온 게 좋았던 것 같다. 약국에 가야 해서 알았다고 했는데, 작업을 멈추려니 너무 잘 돼서 그럴 수 없었다. 결국 루이가 한 시간 반을 기다렸다. 약국이 닫기 전에 나가 햄버거 재료와 삼겹살을 샀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오늘은 햄버거 사 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루이와 라파엘은 햄버거를, 나는 얼큰한 김치찌개를 먹을 계획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아이스크림을 들고 인공 바닷가 가까이 앉았다. 루이는 딸기 맛을 나는 피스타치오를 골랐는데 루이와 바꿔 먹었다. 한 입만 달라더니 피스타치오가 더 맛있단다. 처음엔 비둘기가, 그리고 갈매기가 우리 주변을 기웃거렸다. 그러다 바다에서 오리가 갑자기 튀어 올라 깜짝 놀랐다.


"야, 먹을 거 없어!"


한국어로 말했는데, 알아들었는지 다시 바다로 들어갔다. 너무 면박을 줬나 싶어 아이스크림콘을 던져줬는데, 딱딱하고 큰 걸 물고 낑낑대다가 다시 바다로 들어가 한참 안보였다. 혹시 콘이 목에 걸려 죽은 건 아닐지 걱정하는데, '나 살아있지.' 라고 하듯 날깨를 펄럭이며 갑자기 갑판위로 튀어 올라왔다.


"야, 놀랐잖아." 하니까 마치 알아듣는 것처럼 다시 바다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한국말을 알아듣는 오리 같았다. 루이가 "이리 와."하니까 루이를 한참 따라다녔다.


우리 뒤에서 어떤 남자가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가 큰 소리로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주변을 계속 걸어 다녔다. 일어나 집으로 가려는데, 그가 나인지 통화 중인 상대에게 인지 모르게 뭐라고 소리쳤다. 나는 힐긋 보고 무시했다. 여기선 이게 좋다. 언제부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듣지 않게 됐다. 아무래도 네덜란드어를 배울 때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것 같다.


오늘 약국에 약을 찾으러 갔는데, 어제 알약을 루이가 못 삼켰다고 말할 때까지는 네덜란드어가 순조로웠다. 근데, "물약을 다시 받으러 온 거지?" 라고 약사가 물었는데, 내가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병원에서 너에게 처방전을 보냈다고 했어.", 라고 이상한 말을 했다. 그랬더니 바로 영어로 바꿔서 이야기했다. 두 번의 기회도 주지 않고.... 네덜란드어 연습 좀 하고 싶은데, 네덜란드 사람들은 영어 천재라 내가 네덜란드어 버벅대는 꼴을 못 본다.


루이가 스티치 영화를 함께 보자고 해서 봤다. 루이 덕에 어린이 영화를 많이 보게 된다. 지금부터, 한 시간 정도 다른 장편 쓰는 거 쓰다가 빨래를 개고 잘 것 같다.


내 작업 일지는 항상 하루 늦게 올라갈 것 같다. 주로 네덜란드 시각으로 12시 전에 쓰려고 한다.


KakaoTalk_20250916_192850493.jpg 요즈음 네덜란드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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