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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9.17

판테 그리고 토성의 계절에....

by 명희진


우리 고양이 이름은 판테다. 이탈리안계 미국인 소설가인 존 판테에서 따온 이름이다. 원래는 '부코부코'로 하고 싶었는데, 라파엘이 극구 반대해서 못 했다. 언젠가 다른 동물을 집에 들인다면 꼭 '부코부코'로 이름을 짓고 싶다.


엄마가 고양이를 데려왔을 때, 내가 사심을 채울 목적으로 '부코부코'로 짓자고 우겨서 거의 될뻔했는데 실패했다. 엄마는 내가 복코복코라고 하는 줄 알았고 나중에 부코스키의 부코라고 하자 부코스키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싫다고 했다. 나중엔 여자아이라며 부코는 안 된다고 했다. 결국 그 아이는 삐삐라는 이름을 갖게 됐고 이름처럼 말괄량이라 엄마 말고는 아무도 만질 수 없다. 삐삐 코에는 커다란 점이 있다.


존 판테의 [ASK THE DUST]를 읽은 건, 찰스 부코스키 때문이다. 나는 부코스키의 광팬이다. 지금도 기분이 별로면 부코스키의 소설이나 책을 펼쳐 아무 데나 읽는다. 그러면 조금 괜찮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역시 부코스키가 언급한 존 판테의 팬이 됐다. 부코스키는 "Fante was my god."라고 말했고 절판 된 그의 소설을 재출간하는데 적극적이었다. 불행하게도 그는 살아생전 유명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를 좋아한다고 찾아 읽을 만한 많은 책이 없다.


라파엘이 부코부코는 왠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울 것 같은 이미지라고 했을 때, 나는 판테를 떠올렸다. 유명하지 않았던 소설가, 그래서 내가 많이 불러주고 싶었다.

"고양이 이름이 뭐야?"

"판테."

"아, 환타?"

모두가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괜찮다. 나는 우리 판테가 왜 판테인지 아니까. 내 독서 목록엔 그런 작가들이 몇 있다. 이탈로 스베보도 그 중 하나다. 그리고 불행의 끝판왕은 [바보들의 결탁]을 쓴 존 케네디 툴이다. 단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남긴 비운의 작가들. 심지어 살아서는 주목도 못 받았던. 그토록 좋은 소설을 쓰고도 아무도 그들을 몰라봤다. 물론 스베보는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어쨌든, 왜 운은 공평하지 않을까?


나는 자주 내가 문학을 너무 과하게 대하는 게 아닐지 생각한다. 그 태도를 조금 고쳐야겠다는 마음도 자주 먹는다. 그런데 그러기 힘들다. 너무 오래 원하다 보니 그게 종교가 돼 버린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그게 누구든, 너무 좋아하는 작가여도 처음엔 분석하는 게 버릇이 됐다. 그냥 잘하고 싶어서 그렇게 돼버린 것 같다.




결국, 장편 제목을 바꾸기로 했다. [토성의 계절에 그 아이들은]으로.

바꾸게 된다면 이 제목이 가장 좋을 것 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기존 제목에 자꾸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챕터 안 제목으로 넣기로 했다.


오늘도 루이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에게 이메일이 왔다. 루이가 그립다고. 나도 루이가 선생님과 학교 친구들을 그리워한다고 써서 보냈다. 내일은 꼭 보내겠다고.


토 요일 오후에 조카가 온다. 그 아이는 내 취향의 독서로 훈련됐다. 조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기형도와 최승자의 시집을 선물했다. 대학생이라면 적어도 기형도는 알아야 한다고 잘난척했다. 조카는 내가 선물한 책을 편의점 알바를 하며 읽었다. 읽으며 이해할 수 없는 데 좋다고 했다. 그게 문학이다. 그렇게 문학에 물들면 된다.


우리는 함께 전자책을 읽으며 메모를 남긴다. 그 아이가 먼저 읽으면, 조카가 남긴 메모를 읽으며 독서를 한다. 내가 먼저 읽으면 그 아이는 내가 남긴 메모를 읽으며 독서를 한다. 그리고 또 그 책에 대해 개인적인 품평을 과감 없이 한다. 그게 우리의 독서다. 마치 만화책을 돌려보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이런 조카가 있어서 좋다.


어떨 땐, 조카가 내게 책을 추천한다. 양귀자의 [모순]을 추천해서 놀랐다. 요새 MZ 사이에서 이 책이 인기란다. 나는 내가 이 책을 읽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중학교 때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시작으로 양귀자 책은 다 읽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때 좋아하던 교회 오빠가 이 책을 충격적으로 읽었다고 침을 튀기며 말해서 나도 합류했었다. 단지 그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다음 해에 그는 다른 교회 언니와 사귀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버스에서 그 둘과 마주쳤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기이하게도 손을 꼭 잡고 서 있었다. 그 후로 양귀자를 멀리 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내게도 좋은 선생이 많았다. 나는 그들이 내게 소개하는 책을 마구 읽었다. 사실 잘 이해도 못 했다. 그냥 읽고 읽고 또 읽었다. 활자로 된 모든 걸 읽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엔 새 책을 읽기보다 읽었던 책을 또 읽는 게 좋다. 그러면 음악을 듣듯 책을 고를 수 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장편이 세상에 곧 나온다고 하니 부끄럽다. 독자가 나의 약점을 찾으면 어쩌지... 오타나 문장 오류가 있으면 어쩌지, 그런 생각으로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지금, 나의 최선은 여기라고 생각하며 반야심경을 듣는다. 마음이 불편할 때 들으면 자꾸 생각하게 된다. 공은 색이고 색은 공이라고... 무슨 소린지 몰라서 머릿속 생각이 그리로 향한다. 그래서 생각을 분산하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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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판테는 하루 종일 나를 저런 식으로 쳐다봤다. 노트북 뒤에 간식이 있었는데, 그걸 안 줘서 나를 때리기도 했다. 배은망덕한 고양이다. 매일 내가 자기를 어떤 마음으로 부르는데....


오늘은 아직 작업이 남아 있다. 내일까지 초고를 끝내고 싶은데,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쓰자! 쓰다 보면 어디든 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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