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테 그리고 토성의 계절에....
우리 고양이 이름은 판테다. 이탈리안계 미국인 소설가인 존 판테에서 따온 이름이다. 원래는 '부코부코'로 하고 싶었는데, 라파엘이 극구 반대해서 못 했다. 언젠가 다른 동물을 집에 들인다면 꼭 '부코부코'로 이름을 짓고 싶다.
엄마가 고양이를 데려왔을 때, 내가 사심을 채울 목적으로 '부코부코'로 짓자고 우겨서 거의 될뻔했는데 실패했다. 엄마는 내가 복코복코라고 하는 줄 알았고 나중에 부코스키의 부코라고 하자 부코스키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싫다고 했다. 나중엔 여자아이라며 부코는 안 된다고 했다. 결국 그 아이는 삐삐라는 이름을 갖게 됐고 이름처럼 말괄량이라 엄마 말고는 아무도 만질 수 없다. 삐삐 코에는 커다란 점이 있다.
존 판테의 [ASK THE DUST]를 읽은 건, 찰스 부코스키 때문이다. 나는 부코스키의 광팬이다. 지금도 기분이 별로면 부코스키의 소설이나 책을 펼쳐 아무 데나 읽는다. 그러면 조금 괜찮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역시 부코스키가 언급한 존 판테의 팬이 됐다. 부코스키는 "Fante was my god."라고 말했고 절판 된 그의 소설을 재출간하는데 적극적이었다. 불행하게도 그는 살아생전 유명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를 좋아한다고 찾아 읽을 만한 많은 책이 없다.
라파엘이 부코부코는 왠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울 것 같은 이미지라고 했을 때, 나는 판테를 떠올렸다. 유명하지 않았던 소설가, 그래서 내가 많이 불러주고 싶었다.
"고양이 이름이 뭐야?"
"판테."
"아, 환타?"
모두가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괜찮다. 나는 우리 판테가 왜 판테인지 아니까. 내 독서 목록엔 그런 작가들이 몇 있다. 이탈로 스베보도 그 중 하나다. 그리고 불행의 끝판왕은 [바보들의 결탁]을 쓴 존 케네디 툴이다. 단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남긴 비운의 작가들. 심지어 살아서는 주목도 못 받았던. 그토록 좋은 소설을 쓰고도 아무도 그들을 몰라봤다. 물론 스베보는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어쨌든, 왜 운은 공평하지 않을까?
나는 자주 내가 문학을 너무 과하게 대하는 게 아닐지 생각한다. 그 태도를 조금 고쳐야겠다는 마음도 자주 먹는다. 그런데 그러기 힘들다. 너무 오래 원하다 보니 그게 종교가 돼 버린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그게 누구든, 너무 좋아하는 작가여도 처음엔 분석하는 게 버릇이 됐다. 그냥 잘하고 싶어서 그렇게 돼버린 것 같다.
결국, 장편 제목을 바꾸기로 했다. [토성의 계절에 그 아이들은]으로.
바꾸게 된다면 이 제목이 가장 좋을 것 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기존 제목에 자꾸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챕터 안 제목으로 넣기로 했다.
오늘도 루이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에게 이메일이 왔다. 루이가 그립다고. 나도 루이가 선생님과 학교 친구들을 그리워한다고 써서 보냈다. 내일은 꼭 보내겠다고.
토 요일 오후에 조카가 온다. 그 아이는 내 취향의 독서로 훈련됐다. 조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기형도와 최승자의 시집을 선물했다. 대학생이라면 적어도 기형도는 알아야 한다고 잘난척했다. 조카는 내가 선물한 책을 편의점 알바를 하며 읽었다. 읽으며 이해할 수 없는 데 좋다고 했다. 그게 문학이다. 그렇게 문학에 물들면 된다.
우리는 함께 전자책을 읽으며 메모를 남긴다. 그 아이가 먼저 읽으면, 조카가 남긴 메모를 읽으며 독서를 한다. 내가 먼저 읽으면 그 아이는 내가 남긴 메모를 읽으며 독서를 한다. 그리고 또 그 책에 대해 개인적인 품평을 과감 없이 한다. 그게 우리의 독서다. 마치 만화책을 돌려보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이런 조카가 있어서 좋다.
어떨 땐, 조카가 내게 책을 추천한다. 양귀자의 [모순]을 추천해서 놀랐다. 요새 MZ 사이에서 이 책이 인기란다. 나는 내가 이 책을 읽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중학교 때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시작으로 양귀자 책은 다 읽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때 좋아하던 교회 오빠가 이 책을 충격적으로 읽었다고 침을 튀기며 말해서 나도 합류했었다. 단지 그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다음 해에 그는 다른 교회 언니와 사귀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버스에서 그 둘과 마주쳤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기이하게도 손을 꼭 잡고 서 있었다. 그 후로 양귀자를 멀리 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내게도 좋은 선생이 많았다. 나는 그들이 내게 소개하는 책을 마구 읽었다. 사실 잘 이해도 못 했다. 그냥 읽고 읽고 또 읽었다. 활자로 된 모든 걸 읽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엔 새 책을 읽기보다 읽었던 책을 또 읽는 게 좋다. 그러면 음악을 듣듯 책을 고를 수 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장편이 세상에 곧 나온다고 하니 부끄럽다. 독자가 나의 약점을 찾으면 어쩌지... 오타나 문장 오류가 있으면 어쩌지, 그런 생각으로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지금, 나의 최선은 여기라고 생각하며 반야심경을 듣는다. 마음이 불편할 때 들으면 자꾸 생각하게 된다. 공은 색이고 색은 공이라고... 무슨 소린지 몰라서 머릿속 생각이 그리로 향한다. 그래서 생각을 분산하는데, 도움이 된다.
오늘 판테는 하루 종일 나를 저런 식으로 쳐다봤다. 노트북 뒤에 간식이 있었는데, 그걸 안 줘서 나를 때리기도 했다. 배은망덕한 고양이다. 매일 내가 자기를 어떤 마음으로 부르는데....
오늘은 아직 작업이 남아 있다. 내일까지 초고를 끝내고 싶은데,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쓰자! 쓰다 보면 어디든 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