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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9. 15

한계에 이른 날

by 명희진

지금껏 살아오며 내가 나에 대해 알게 된 건, 나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인간이란 사실이다. 또 완벽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뭘 하면 좀처럼 손에서 놓지를 못한다. 그렇다고 완벽하다는 건 아니다. 또 일을 벌이는 걸 좋아해서 취미도, 청소도 시작하면 크게 벌리고 그래서 마무리 짓는데 오래 걸린다.


독서도 한 권을 읽고 다른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문어발식이다. 이건 뜨개질(이건 나의 다른 취미다)도 역시 문어발 식이라 시작하면 여러 개를 한꺼번에 뜨고 있다. 이게 꼭 단점인 건 아니다. 독서는 화장실에서 읽는 책과 밖에 나가서 읽는 책, 운동하며 듣는 책이 다 따로 있어서 독서의 시작점도 다르고 끝나는 시기도 제각각이다. 그래도 언젠간 끝난다.


박상영의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읽을 때, 우연찮게 백수린의 [눈부신 안부]를 읽었다. 박상영 소설은 퀴어소설인걸 알고 시작했고 누군가의 권유로 읽기 시작했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첫 페이지에서 안 읽었을 소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추천했던 이와 소설에 대해 대화하고 싶어서 읽었는데, 결국엔 독이 됐다. (그이와는 연락을 안 하는 사이가 됐다)

백수린의 소설은 퀴어 소설인지 모르고 읽었다. 주인공이 독일에 있을 때 이모의 친구들(파독간호사)과 함께 지내게 되면서, 그중 한 명의 첫사랑을 찾아주는 이야기다. 뭐 간단히는 그렇다.


우연찮게 둘 다 퀴어 이야기였고 그래서 자연스레 비교가 됐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이 두 소설을 동시에 읽고 있었고 그건 내 오랜 독서 습관이다. 결론은 박상영은 역시, 안 읽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이야기였다. 읽는 내내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읽어야 하지,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문학과 문학이 아닌 소설에 대한 생각을 내내, 집요하게 하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오래전에 읽은 예트로브스키의 Swimmimg in the dark 가 떠올랐다. 이 책은 영어로 읽었고 박상영의 소설을 읽은 후에 다시 읽었는데, 처음보다 좋았다. 적어도 문학이라면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지, 같은 생각을 했다. 박상영의 팬이 이 글을 본다면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이야기는 정말 더 많이 할 수 있지만 여기까지만 하겠다. 어쨌든 난 이 책을 네덜란드 번역본과 영문 번역본, 한글 원본을 샀으니 이 정도 이야기는 할 자격이 있다. 덧붙여 나는 박상영이 이 이야기를 더 잘 쓸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 부분이 정말 아쉽다.


짧게 결론을 말하자면, 백수린의 [눈부신 안부]가 빛났던 건 박상영의 소설과 함께 읽어서였다. 물론, 백수린의 소설을 읽고 이처럼 '우아한 퀴어 소설'이 있다니, 같은 생각도 했다. 하지만 예트로브스키의 [Swimmimg in the dark]와 비교하면 핍진함에서 아쉬웠다. 나는 이게 한국 장편의 흠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또 나도 그런 부분에서 조심하고 잘 쓰고 싶다. 서사가 약한 이야기는 이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쓰다 보니 길어졌지만, 오늘은 여러 가지로 버거운 날이었다. 보통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은 온전히 내 시간이어야 하는데, 루이가 학교에 가지 못했다. 일주일이 돼 가니 한계다. 먹는 항생제를 받아왔는데, 알약을 삼킬 줄 몰라 못 먹었다. 약국은 여섯 시에 끝났고 나는 루이가 알약을 못 삼킨다는 걸 6시 10분에 알았다. 그전에 오랫동안 우린 화도 내고 짜증도 내면서 알약을 삼키려 노력했다.

"나는 노력했어. 내 잘못이 아니야."

루이는 뭉개진 알약을 컵에 뱉고 소리쳤다.


장편 1교를 다시 읽다 보니, 같은 동사를 한 페이지에 두 번 사용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자, 모든 문장이 싫어졌다. 설명적인 문장은 다 갈아엎다 보니 예민해졌다. 시간은 없는데, 루이가 알약을 못 삼키면 내일도 학교에 못 가고 그러면 또, 하루를..... 그렇게 생각하자 폭발해 버렸다. 조카가 오기 전에 청소도 해야 하고 또 매끼 밥을 하니 설거지는 쌓이고 루이 피부에 발진이 생겨 이불 빨래를 하루 건너하고 있기도 하고.


"약을 못 삼키면 디즈니랜드에 못 가. 병원에 가야 하거든."

"아니야."

"맞아. 병원에 가면 주사로 약을 넣어야 해."

이런 말을 독하게, 진짜 루이 엄마가 아닌 것처럼 뱉었다. 아이가 울었고 나는 그래도 화가 났다.

"약을 먹기 전까지 우린 정말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어."

루이가 울면서 외쳤다.

완벽했다고? 나는 내게 화가 났다. 점심에 약을 찾으러 약국까지 걸어갔다. 약을 찾고 내가 네덜란드어가 늘었다며 셀프 칭찬을 했고 루이와 함께 장을 보고 단골집에 가서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시켰다. 기다리는 동안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함께 집에 와 햄버거를 먹으며 시시덕댔다. 그 와중에도 나는 계속 오늘 분량의 소설을 끝내지 못한 걸 내내 생각했다. 오늘 분량을 못 끝내면 이번 주가 넘어가고 그러면 월말까지 마감을 할 수 없다. 교정본도 금요일까지 넘겨야 하지만 여기 시간으론 목요일 새벽에는 넘겨야 한다. 그래야, 모든 일이 순조롭다. 그러니까 누굴 위해서?


늦은 저녁을 하면서 루이에게 사과했다.

"근데, 왜 그렇게 화를 냈어?" 루이가 물었다.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운데, 내 행동을 설명할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질 나쁜 어른처럼, "네가 학교에 못 가면 안 되니까."라고 말했다. 진짜 욕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소설이 너무 쓰고 싶었다. 마무리를 하는 이야기가 아닌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다. 이 모두를 빨리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었다. 나는 아직 오늘의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아마도 새벽에나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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