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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아픈 손가락

맏이

by 지니 Mar 02. 2025

세탁소를 운영하시던 부모님은 가게 딸린 두 칸 방에서 2남 1녀 우리를 키워 내셨다.


드라이클리닝 할 세탁물과 수선할 옷 무더기

긴 소파에서 부족한 쪽잠을 주무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출근도 퇴근도 없는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아들 형제들 사이에서 둘째 외동딸인 나는 공주님이 아니었다. 4학년 즈음부터 설거지를 시작한 기억이 난다.


계모가 아니기에 전담은 아니었지만, 형제들 사이에 엄마의 무게는 은연중에 내게 전가된 몫이기는 했다.


그 당시 세탁소의 명절은 대목이었다.

제일 좋은 옷 입고 정갈한 모습으로 한 봇다리 선물 들고 금의 환향 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으니..

할머니의 외아들 내외는 제사의 의무도 함께 하느라... 명절이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부엌과 가게를 오가며 음식과 옷 사이를 정신없이 오가는 엄마가

만두 빚으려고 반죽을 해 놓고 소를 만들어 놓으면 손님이 찾아왔고,

송편 빚으려고 반죽을 놓고 소를 만들어 놓으면 어김없이 손님이 찾아든다.

김장이라도 하려고 마음먹으면 재료들을 늘어놓은 채 손님에게 불려 나간다.


뒷감당은 고사리 손을 한 외동딸의 몫이었다.

그 억울하고 지루한 반복 덕에 끝내주는 일머리를 탑재 한 씩씩하고 야무 외동딸은 어디에 내어 놓아도 기죽지 않는 당당함까지 겸비한다.


외동딸의 일머리로 바라본 우리 집안 맏이는 착하기만 한 회피 덩어리, 고집 덩어리였다.

집안 대소사를 동생들이 챙기는데...

도통 남의 말 들어 먹을 융통성이 없는 맏이에게 점점 지쳐 간다.


표현도 못하고, 듣지도 않는 고집쟁이 맏이는 자기 것만 챙기는 얄미움까지 겸비한다.

어찌 생각하면 얄미운 구석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자기 앞가름조차 제대로 못하니 처자식 건사가  제대로 될 턱이 없는 우리 집안 맏이는

칠순노모 걱정의 90%를 전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버려 두라고 몇 번을 이야기하다 지친다.

모른 척하라고 몇 년을 이야기하다 지친다.

아직도 먹을 것이 생기면 갈무리해 두었다 모두 주어 버린다.


어느 날 엄마가 못 살던 시절 이야기를 했다.

그땐 정말 너무 힘들었어 쌀 한 홉과 보리쌀을 섞어서 하루 한 끼 밥을 먹었고.. 첫아들은 먹을 것이 없어 보리밥 먹이고 국수를 삶아 먹였더니 배탈이 나서 며칠 동안 설사를 하더라.. 아직도 그래서 속이 안 좋아.


심장 한 조각이 덜컥하고 떨어진다. 그제야 엄마이해.. 되었다. 

왜 그렇게 맏이가 애달팠는지..


우리 집 맏이는 아직도 엄마에겐 가장 못 먹고 가장 못 살던 시절

먹을 것이 없어 국수 먹고 배탈 나던 그 아기라는 걸 오늘에야 깨닫는다.


이제 그만 미워해야겠다. 미움이 녹아내리고 그 자리에 엄마의 애달픔이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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