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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그렇게 이혼 후 나의 첫 연애가 시작되었다.

by 스파티필름



나의 매일 아침은 그의 인사로 시작되었다. 그런 그의 부지런함이 어색하면서도

누군가가 주는 다정함과 관심이 내 외로움을 충족시켜 주었다.

안부가 오고 가던 며칠 후 주말 우리는 만났다.

영화 보는 게 취미였던 나는 혼자서 보고 싶은 영화를 보러 갈 거라고 했고 그는 괜찮으면 함께 보고 싶다고 했다.

자연스러운 데이트 신청으로 우리는 첫 데이트를 하게 됐다.


며칠 동안의 메신저로 친해진 듯했던 우리지만 휴대폰 밖에서 첫 만남은 굉장히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림동호회에서는 짧은 의견 나눔이 다였기에 지극히 사적인 만남이 어쩐지 쑥스럽고 불편하기도 했다.

영화 보기 전 카페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그가 제약회사에 다니고 있고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으며

연애를 쉰 지 꽤 긴 시간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에게 나의 얘기를 하며 차마 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와의 만남으로 나는 이혼이 내 삶을 평생 따라다니는 꼬리표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것은 떨쳐버릴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평생 내 가슴에 붙어있는 주홍글씨였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괜스레 죄책감이 들었고 무언가 속인다는 생각에 나는 늘 불편했다.

뻔뻔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솔직하지 조차 못한 내가 참 가엾으면서도 진저리가 났다.



숨 막히는 결혼 생활에서 처절하게 자유를 쟁취했지만 그와 동시에 이혼이라는 족쇄에 갇혀버린 것이다.



그와 영화를 보고 식사까지 함께하며 공통된 취미로 즐거웠고 대화가 잘 이어졌다.

그리고 집 앞까지 데려다준 그에게 나는 끝끝내 나의 이혼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는 한 번의 만남 이후 내게 더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나는 그의 마음을 즐겼고 동시에 이 관계가 너무 괴로웠다.


그리고 두 번째 데이트가 있던 날 그는 내게 고백을 했다.

많이 좋아하게 된 거 같다고 괜찮다면 옆에 있고 싶다며 집에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좋아한다고 얘기해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나 사실할 말이 있어요. “

나는 내가 해야만 하는 그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사실 이혼녀라고. 속이려고 한건 아니고 우리의 관계가 어디까지 발전할지 몰라서 이제야 얘기하게 됐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도 당신이 좋아요. 그런데 이제 선택은 당신에게 있어요.

이런 나를 받아들일지 받아들일 수 없는지. “


나는 비겁하게 그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나를 좋아하는 그의 마음을 인질 삼아서 그에게 이 관계의 결정을 떠넘겼다.



그는 나의 뜻밖의 고백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당연히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나 역시 나의 이혼을 예상하지 못했으니.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그는 창문 밖 까만 밤하늘만 쳐다봤다.

숨 막히는 침묵, 나는 무죄를 주장하는 죄인처럼 그렇게 두려움과 당당함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그의 선택을 기다렸다.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그가 나를 받아 들 일 거라는 걸.

나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커져있는지 이미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 반면에 그에게 온전히 내 마음을 주지 않으므로 거절당할 준비 또한 되어있었다.



짧은 침묵이 이어지고 그는 말했다.

“그래도 나는 xx 씨가 좋아요. “


그렇게 이혼 후 나의 첫 연애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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