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한 후 내게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기준점이 생겼다.
언제나 기억에서 지우고 싶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누군가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마다 항상 전남편이 떠올랐다.
같은 실수를 다시는 하지 않으려는 나만의 최선이었을까.
아니면 같은 상처를 두 번은 겪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의 보호벽이었을까.
언제나 전남편은 나의 기준점이 되어 어떠한 순간마다 툭하고 튀어나와 그렇게 누군가를 판단하게 했다.
내 인생에 다시는 결혼은 없다고 결심했지만 연애는 다른 문제였다.
그 고통스러웠던 사랑의 무게에 힘들어했던 게 무색하게 누군가가 나에게만 주는 특별한 다정함이 좋았고
나의 빈 시간을 가득 채워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았다.
그림모임의 그는 굉장히 다정한 사람이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의 모든 시간을 공유해 주었다.
아침 인사를 시작으로 점심 식사 메뉴 사진을 보내주기도 하고 바쁠 때면 양해를 구하며 자신의 시간을 쪼개 나를 생각해 주었다.
이십 대의 서툴고 뜨거웠던 연애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어른스럽고도 배려있는 연애.
무엇보다 툭하면 연락이 끊기던 전 사람과 비교해서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동네가 가까웠던 우리는 퇴근 후면 자연스레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야근이 없는 날은 거의 매일 나를 보러 왔고 같이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간까지 함께 있는 걸 좋아했다
술도 좋아하지 않고 친구도 많지 않아서 퇴근 후와 주말의 그의 시간은 온전히 나를 향해 있었다.
그림 외에는 별다른 취미가 없던 그는, 마치 내가 그의 취미가 된 듯 온 마음과 정성을 쏟아냈다.
그렇게 해피엔딩이라면 좋으련만 도대체 연애라는 게 참 뜻대로 되지 않는 거였다.
사랑의 크기라는 게 쌍방이 똑같은 크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이만큼 커져있으니 당신의 마음도 이 정도까지는 와 주겠어. 어 딱 그 정도 좋아. 라며 맞출 수 있는 거라면
연애의 관계에서 약자도 강자도 없을 텐데 말이다.
그에게 받는 사랑만큼 내 마음의 크기도 커졌더라면 나의 해피엔딩은 완성 됐을까?
우리는 같은 연애의 선상에 놓여있었지만 그가 바라는 연애의 크기와 속도는 나와는 퍽 달랐다.
그와의 연애가 한 달, 두 달이 지나가면서 나는 그가 주는 사랑의 크기에 조금씩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참으로 못되고 이기적인 심보가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