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장을 나섰던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하루 만에 내 모습에 적응한 강아지에게 입을 맞추고 집을 한 번 둘러봤다. 며칠 전 써두었던 편지와 선물을 부모님 침대 옆 탁자에 두고 왔다.
그날은 어버이날 하루 전이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부모님과 삼촌이 서 있었다. 괜히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 혼자 가고 싶었지만 그런 감정은 부모님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았다. 부모님과 나를 아들처럼 대해주던 삼촌과 함께 논산으로 떠났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는지 삼촌은 누구나 그렇듯이 입대자가 가장 싫어하는 노래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틀어주셨고 아버지는 내 이마 윗부분에 선명하게 있는 ‘땜빵’을 보며 농담을 시작했다. (사실 그 상처는 어릴 적 아버지가 나를 놀아주다가 실수로 생긴 상처였다.) 나는 그저 브로콜리 같이 생긴 초록 산들을 보며 멍하니 있었다.
아침 일찍 출발했으니 배가 고플 만도 한데 전날 먹은 파스타가 아직 소화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고속도로에 올라타면 휴게소를 들려야 하지 않겠나? 2시간쯤 달리다 보니 한 휴게소에 도착했다. 입맛도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내 눈에 빨간색으로 된 무언가가 보였다.
바로 복권 판매점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복권 판매장에 가서 수동으로 번호 여섯 개를 찍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생일, 좋아하는 그룹의 멤버 수… 이렇게 나름 의미 있는 숫자들을 나열하다 보니 숫자 하나만 남았다. 그 마지막 번호는 엄마, 아빠, 동생, 내 생일의 앞자리를 더한 11로 찍었다.
그렇게 2시간을 더 달려 논산 훈련소에 도착했다.
지금까지는 빡빡이가 나 혼자였는데 이곳엔 온 세상의 빡빡이가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는 슬프고 우울한 감정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체념이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과 인사를 나눈 후 나는 일부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빡빡이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입대 절차를 모두 마친 뒤 마지막 시간에 다 같이 부모님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충성!” 입대한 지 30분 된 군인의 충성을 본 적 있는가? 그 어리숙한 충성을 부모님께 하고 부모님들이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까지 많은 사람들 속에서 부모님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한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을 3초간 응시한 뒤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바로 내 아버지였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