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선우 누난데, 너네들 중에 어제 선우 이름으로 떡볶이 먹은 애들 있지? 나와.”
급식을 먹고 난 후, 나는 친구들과 함께 선우의 반으로 갔다. 교탁에 서서 앉아있는 아이들을 노려봤다. 이 중에 누가 선우를 이용한 걸까. 이 조그만 아이들이 어떻게 벌써부터 약한 아이를 골라 이용한 걸까. 2학년 아이들은 6학년 네 명이 들어왔을 때부터 소리를 죽이고 긴장하고 있었다.
“빨리 나와. 안 나오면 너네 반 선생님한테 가서 여쭤볼 거야. 어제 선우랑 나간 애들 누구냐고.”
선생님이란 말에 몇몇 아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일어났다. 2학년 1반 아이들 전부가 나를 보고 있는데, 딱 한 명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 난리통에도 자기랑 아무 상관없다는 양, 책을 보고 있다. 자기가 이용당한 줄도 모르는 선우. 그 모습에 교탁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네 셋, 따라 나와.”
세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 구석으로 향했다. 파란색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철봉 옆에 아이들을 세웠다. 아직 한 마디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아이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렸다.
어제 선우의 떡볶이 사건을 들었을 때는 너무 화가 났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면 그 애들을 불러서 아주 눈물 쏙 빠지게 해 줄 거라고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눈앞의 울먹거리는 얼굴들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봤자 2학년 꼬맹이들인데. 설마 선우를 따돌리고 괴롭히려고 한 건 아니겠지.
“너네, 앞으로 선우 이름 대고 분식점에서 떡볶이 먹으면 나한테 죽어. 알았어?”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아이들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앞으로 그러지 마. 이번만 봐주는 거야. 교실로 가.”
세 명은 꾸벅 인사를 하고 후다닥 교실로 뛰어갔다. 애들을 무섭게 혼내려고 나왔는데 내 고민만 늘어났다. 내가 졸업하고 나면 어떡하지? 선우가 3학년때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지? 선우는 누가 때려도 울지 않는데. 괴롭혀도 말을 못 하는데. 선생님한테 이르지도 못하는데. 집에 와서 엄마한테 말도 못 하는데. 누가 선우를 지켜주지?
학교 수업 내내 고민했다. 답도 없는 고민을 계속했다. 속상한 마음에 집에 가자마자 엄마를 붙잡고 이야기를 했다.
“엄마, 어제 떡볶이 먹은 그 애들 내가 오늘 불러서 혼냈어. 아마 이제 안 그럴 거야.”
“뭐 하러 그랬어. 그냥 두지.”
걸레로 마룻바닥을 닦으며 너무 태연하게 말하는 엄마의 말에 불쑥 화가 치밀었다.
“왜? 왜 그냥 둬? 그건 선우를 이용한 거야. 나쁘게. 진짜 나쁜 거잖아. 엄마는 맨날 학교 찾아가면서 왜 선우네 선생님한테 말 안 해? 왜 그 애들 가만둬? 난 이해가 안 가. 진짜 짜증 나, 엄마.”
“왜 네가 말하다가 울어? 효진아. 괜찮아. 그 애들이 선우를 놀리고 때리고 한 거 아니잖아. 그냥 선우 따라가서 떡볶이 얻어먹었다고 생각하면 돼. 별거 아니야. 괜찮아. 네가 울 아무 이유가 없어.”
엄마의 말에도 눈물이 계속 흘렀다. 코를 훌쩍이며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계속 닦았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우의 동의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먹은 건데. 왜 이게 별거가 아니지? 엄마의 말이 서운했다. 아니, 서러웠다. 그 아이들에게 화나는 내 마음을 엄마가 몰라주는 게 너무 서러웠다.
한 손에 걸레를 쥐고, 엄마가 나를 바라보며 앉았다. 정말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나처럼 속상하지도, 화가 나지도 않은 그런 얼굴.
“효진아. 엄마는 그 애들한테 고마워. 왠 줄 알아? 선우는 친구가 없잖아. 너처럼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떡볶이 먹으러 못 가잖아, 평생. 누가 말도 안 통하는 자폐 아이랑 같이 분식점에 가겠어. 그렇지? 그런데 어쨌든 그 애들이 교실에서부터 분식점까지 선우랑 같이 걸어가 줬잖아. 그게 고마워. 선우한테 그런 경험을 하게 해 줘서. 그러니까 울지 마. 다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