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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둘리 반창고

by 이소

그날은 우리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특별하고 절망적인 날이었다.




나무로 된 안방의 닫힌 문을 봤다. 오늘따라 저 문이 거대한 태산처럼 보였다. 절대 열어서는 안 되는,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선처럼 느껴졌다. 문 너머에서 들리는 희미한 부모님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분명하게 들렸다.


“여보, 안 되겠어. 더 이상 한국에서는 답이 없어. 초등학교 4학년인데, 벌써 학교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잖아, 앞으로 어떻게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가.”


“얼마나 심하길래 그래?”


“얼마나 심한지가 문제가 아니야. 쟤는 저런 일을 당해도 말을 안 하잖아. 이제 내가 학교에 찾아가고 선생님을 만나도 소용이 없어. 애들도, 선생님도 일, 이 학년 때랑은 달라.”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선우의 장난감 방으로 향했다. 벌컥, 문을 열자 순한 표정으로 슈퍼 마리오 게임을 하는 선우가 보였다. 또 우리 선우를 괴롭힌 거다. 이번 달만 대체 몇 번째지?


“선우야, 슈퍼마리오 재밌어?”


“응.”


이제 선우는 단답형의 대답을 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정말 기쁜 일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게 있었다.


“선우야,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답이 없는 아이의 옆으로 가서 머리부터 발끝을 쭈욱 훑어봤다. 차분하고 단정하게 빗어 내린 머리카락, 나와 달리 뽀얀 얼굴, 슈퍼 마리오와 자신만의 세계에 집중한 눈. 어릴 때와 달리 이제는 집에서 내복을 입지 않는, 선우의 하늘색 티셔츠 소매 끝을 따라갔다. 게임기를 든 손이 눈에 들어왔다. 버튼을 열심히 두드리는 작은 손의 손등. 그리고 초록색 둘리 반창고. 오늘의 둘리는 전혀 귀엽지 않았다.


선우의 얼굴을 슬쩍 봤지만 아무 표정이 없다. 조심조심 둘리 반창고를 떼어봤다. 그곳에는 미끌거리는 투명한 연고와 함께 검붉은 색의 작고 동그란 자국들이 있었다. 뾰족한 무언가에 여러 번 세게 찔린 자국이었다.


“이거 학교에서 다친 거야?”


“응.”


“누가 그랬어? 친구가 그랬어?”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모두가 미웠다. 아니, 온 세상이 싫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지 않는, 아프다고 하지 않는 선우가 원망스러웠다. 선우를 지켜주지 못한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선우의 담임 선생님이, 교감 선생님이, 교장선생님이, 선우의 반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원망스러웠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동생의 누나라는 이유로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들. 우리 가족을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들. 그 시선들이 불쾌했다. 선우처럼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괴롭힘을 당해도 아무렇지 않은 학교에 화가 났다. 이런 아이들이 괴롭힘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이 증오스러웠다.


예전처럼 선우의 반으로 쫓아가 못된 아이들을 혼내줄 수 없는 중학생이 되어버린 내가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졌다.


선우가 눈치챌세라, 재빨리 빨간 소매 끝으로 눈가를 훔쳤다. 그리고 선우의 둘리 반창고를 다시 붙여줬다. 괜히 선우의 부드러운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방에서 나왔다. 힘 없이 내 방으로 향하는 길에 또다시 부모님의 속삭임이 들렸다.


“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 지금 할 수 있는 게 뭐야?”


“한국에서는 안돼. 선우는 여기서 못살아. 우리, 미국 가자.”


희미하게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에서도 떨림이 느껴졌다. 언제나 강하고 든든한 엄마였는데.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떨림이었다.


이제 선우는 엄마의 치맛바람이 통하지 않는 나이가 되어버렸나 보다. 이제 우리 가족이 지켜줄 수 없는 아이가 되어버렸나 보다. 꾸역꾸역 참고 있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지만 닦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굳게 닫힌 안방 문 너머, 중학생의 나는 그저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그때 선우의 손등에 있던 상처가 뭔지 알게 됐다. 선우와 같은 반 친구가 뾰족한 연필로 손을 여러 번 찌른 것이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놀림과 괴롭힘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빠와 엄마는 미국행을 결정했다. 보통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려면 3,4년은 준비를 해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선우가 겪을 일을 상상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한국 땅을 떠나야 했다.


매일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하는 아빠 대신, 엄마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선우의 학교에 가고, 동사무소에 가고, 대사관에 가고, 여행사에 갔다. 틈틈이 선우를 교육시켜야 했고, 집을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그 많은 집안일까지. 엄마는 하루를 48시간씩 살았다.


부모님의 수고로 몇 개월 뒤, 우리 가족은 정말 미국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책으로만 보던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갈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겐, 아니 선우에겐 이보다 더 나은 선택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15시간을 날아 미국에 도착했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곳에서 살고 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도 부모님은 강했다. 평생 회사원으로 살았던 아빠는 운전사가 되었다. 가정 주부로 집안일을 했던 엄마는 워킹맘이 되었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부모님이 자식들을 먹여 살리겠다고 밖으로 나갔다. 직장을 구하고 일을 했다.


미국에 왔다고 선우가 갑자기 달라진 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선우를 좋아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선우는 엄마의 치맛바람 없이도 일반 학교에 잘 다닐 수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리진 못해도 괴롭힘을 당하진 않았다. 점차 단답형 외의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길게 대화하지 않으면 선우가 자폐 스펙트럼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서 선우가 자라오는 과정을, 부모님이 선우를 키우는 과정을 보고 겪은 사람으로서 말할 수 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는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 어린 교육으로 분명히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 이것은 비단 발달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교육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이 성적과 돈에 가치를 둔 교육보다는 사랑과 인간의 도리에 가치를 둔 교육을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위의 모두를, 세상을 원망하는 나와 같은 아이가 사라지기를.

괴롭힘을 피해 살기 위해 도망쳐야 했던 선우와 같은 아이가 사라지기를.

아픈 자녀의 삶을 위해 본인의 삶 전부를 포기해야 하는 부모님이 사라지기를,

나는 오늘도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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