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꺼내야 할까, 어떻게 물어야 할까. 마음에 오래 맴돌았지만, 선뜻 꺼낼 수 없었던 이야기.
엄마와 장을 보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점점 내 마음속에서 크기를 불려 가는 먹구름을 꺼냈다. 엄마의 눈을 마주 보고는 차마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엄마, 나 궁금한 게 있어.”
“응. 뭔데?”
“왜 엄마는 선우 어릴 때, 장애 아이한테 나오는 혜택 신청 안 했어?”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감정을 싣지 않은 투로 물었다. 질문은 엄마에게 향했지만, 나의 눈은 앞만 보고 있었다. 바깥에는 붉은 꽃들이 푸른 잎의 나무들을 배경으로 자신을 뽐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가벼운 옷차림,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열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차 안은 서늘한 에어컨 바람만이 가득했다.
“예전에 엄마가 다른 아줌마들한테 말한 거 들었잖아. 선우 하버드 대학 보낼 거라고. 그러니까 신청 안 했지.”
엄마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런 거 말고, 진짜로. 진짜 왜 그랬어? 아빠 월급, 선우 교육시키는데 다 들어갔잖아. 그렇게 돈이 없어서 힘들게 사는데 왜 신청 안 했어? 그럼 아빠랑 엄마랑 좀 더 편했을 거 아냐.”
순간, 차 안에는 창 밖의 희미한 매미 소리만 남았다. 역시 괜히 물어본 걸까. 이미 한참 지난 일을 물어, 엄마에게 속상한 일을 다시 되새기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꼭 듣고 싶었다. 내 마음속 먹구름이 더 커지기 전에 꺼내고 싶었다.
“엄마, 나는 우리 집이 돈이 없는 거 어릴 때부터 알았지만, 내가 부족하게 컸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 난 이 정도면 되게 잘 컸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남들 다 신청하는 거, 안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싶어서 물어보는 거야.”
“나는, 선우를 장애아로 키우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그걸 신청할 수가 없었어.”
엄마는 나라에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선우를 장애인으로 등록해야 하는데, 그걸 차마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럼 엄마마저 선우가 자폐아라고 모두에게 공표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선우를 장애인으로 공표하고 받는 돈으로 사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 했다.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아빠의 월급 80 퍼센트를 전부 선우의 교육비에 쓰면서. 생활이 힘들어 제대로 된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사지도 못 하면서. 남들 다 하는 외식 한 번 제대로 하지 못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선우를 장애인으로 등록하지 못한 엄마의 마음. 그 마음을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처음으로 진실을 들었다. 이미 오래전 일이고, 이제는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눈물이 차 올랐다. 이게 도대체 무슨 감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엄마의 옆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눈에 힘을 주고 크게 떴다. 하지만 자꾸 차오르는 눈물은 갈 데 없이 흘러내렸다. 고개를 돌려 옆 창문으로 바깥을 봤다.
바깥은 여전히 뜨거운 열기로 도로 위에 아지랑이를 피웠다. 여전히 나만 따뜻함과 차가움이 뒤섞인 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돈이 제일 중요한 가치를 들어내는 세상 속에서, 가장 바닥의 삶을 선택하고 사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걸까. 세상의 모든 엄마는 자녀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감내할 수 있는 걸까?
“선우가 나아지지 않았으면 어떡하려고 했어? 그럼 결국 언젠가는 장애인으로 등록해야 했잖아.”
“그때 엄마 머릿속에 그런 생각은 없었어.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일반 아이로 만들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
“엄마, 후회하지 않아? 그때 조금 여유로웠으면, 덜 힘들었을지 모르잖아. 남들한테 덜 무시당했을지도 모르고.”
“그런 건 다 쓸데없는 거야. 내 자식이 지금 자폐인데,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어떻게든 어릴 때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때, 최대한 교육시켜서 나아지게 만들어야지.”
나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그냥 조용히 창 밖을 봤다. 어느새 눈물은 말라있었다.
“효진아, 봐봐. 선우가 물론, 사람들과 관계는 못 맺지만, 일반 애들이랑 대학을 다니고 졸업해서 직장을 다닌다. 그리고 선우 태어나고 너를 많이 못 챙겨줬지만, 항상 기도했어, 하나님한테 너를 맡긴다고. 그리고 이렇게 둘 다 잘 커줬어. 그래서 엄마는 이제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어. 더 바라면 그건 욕심이지. 나는 정말 감사해.”
고개를 돌려 엄마의 옆모습을 봤다. 미소 지은 엄마의 얼굴에서부터 조심조심, 따뜻한 기운이 번지는 것 같았다. 비로소 바깥의 사람들처럼 오늘의 계절에 사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이제야, 엄마와 같은 계절을 걷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