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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이소

저물어가는 노을빛이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은은하게 들어왔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수영 언니와 나는 스타벅스 구석에 앉아, 녹차라테를 앞에 두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효진아, 너 책 보는 거 좋아한다 그랬지?”


"응. 유일하게 중간에 안 때려친 취미지. 왜?"


"나 독서모임 만들려고 하는데, 같이하자."


"독서모임? 요즘 누가 책을 본다고. 언니랑 나랑 둘이 하는 거 아니야?"


나는 깔깔 웃으며 앞에 놓인 녹차라테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야, 책 보는 사람이 왜 없어, 있어. 벌써 3명 등록한다고 했단 말이야."


"오, 진짜? 좋아. 그럼 나도 할게. 책 수다 떠는 거 재밌겠다."


그렇게 나는 수영언니가 운영하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책을 함께 읽는 게 즐거울 줄 알았지만, 너무 지루했다. 이 모임이 일반 독서모임이 아니라, 고전 문학을 읽는 독서모임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고, 언니를 나무랐다. 결국 나는 모임에서 나왔다. 그 이후로 나에게 고전문학은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재미없는 책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지루했던 고전문학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꿀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삶의 방향이 바뀔 줄은.


나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했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로 읽는 수준에 머물렀다. 깊이 있는 독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냥 혼자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책을 읽으며 상상하고 즐기는 그 시간 자체가 즐거웠다.


4년 전쯤, 사이토 다카시 교수님이 쓴 <배움이 습관이 될 때>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배움에 대해 읽다 보니 책을 단순히 재미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독서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으며, 내가 그동안 재미로 읽던 책이 한 사람을 얼마나 성장시킬 수 있는지 배워갔다.


특히, 고전문학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나는 충격적인 문장을 봤다. “돈 없고, 능력 없고, 배경 없는 사람일수록 인문고전을 치열하게 읽어야 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입 밖으로 감탄이 나왔다. ‘아, 이건 난데. 돈 없고, 배경 없는 사람. 나한테 필요한 건데.’ 그리고 예전에 뭣도 모르고 참여했었던 고전문학 독서모임이 떠올랐다. 문제의 독서모임 후, 고전은 전혀 다른 얼굴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충격적인 문장과 함께.


사람들은 미국으로 이민 오면 다 성공해서 잘 사는 줄 아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길고 복잡했던 사춘기의 영향으로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던 나는, 이지성 작가가 말한, ‘돈 없고, 능력 없고, 배경 없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의 희생을 밟고 선 지금의 내 모습에 죄책감과 속상함이 마음속 깊이 박혀있었다.


그래서, 인문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일단은 무작정 짧은 고전을 찾아 읽었다. 그중에 하나가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다. 이 책은 아주 쉽고 짧았다. 하지만 한 장 한 장이 내 심장을 툭툭 건드렸다. 완독 후 곧바로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어 내려갔다. 두 번째 읽을 땐 한 줄, 한 줄을 꼭꼭 씹어 삼키듯 읽었다. 문장을 뜯고, 곱씹고, 내 안에 새겼다.


아,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아,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거구나.


책을 덮은 뒤,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나는 그 문장을 되새기면서 한 사람을 떠올렸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누구보다 사랑이 필요한 내 동생, 선우.


의자에 올라가 표정 없이 유리컵을 깨뜨리던 선우,

좋아하던 자동차를 빼앗겨도 그저 딸기 우유맛 츄파춥스를 입에 물던 선우,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말 한마디 못 하던 선우.


그리고 어릴 적 선우의 주위에서 보게 된 다른 자폐 아이들이 생각났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한 인간

으로서 사랑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그 시작은 이 아이들로부터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세상도, 사람들도 외면하는 발달 장애를 가진 아이들.


이 아이들은 오히려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이 필요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그것을 바랄 수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부터, 내가 받아온 사랑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가족에게, 공감과 응원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목표가 명확해지니, 세상이 이보다 더 환할 수가 없었다. 이제 방황할 이유가 없었다. 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따뜻한 시선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찾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삶이 참 단순해졌다. 지금 내 삶에 대한 죄책감이나 후회도 사라졌다. 내 앞에 커다란 목표가 있으니, 과거를 돌아보며 괴로워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


이렇게, 선우는 또 한 번 내 삶의 수평선에 커다란 점을 찍어 주었다.

이러니 내가 어찌 선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러니 내가 어찌 사랑으로 살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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