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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특별한 날

by 이소

나는 가장 무섭다는 중2병이 돋을 시기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급속도로 망가지기 시작했다. 맏딸로서 착하고 올바르게 살아왔던 모든 삶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려는 듯이. 혹은 ‘그건 진짜 내가 아니야’라고 외치듯이.


“효진아, 우리 정혁이네 갈 건데 같이 가자.”


“지금? 좀 있으면 2교시 시작인데?”


“어. 정혁이 오늘 차 끌고 왔어. 가자.”


“음… 그래!”


대답하는 순간 손에 든 묵직한 교과서의 무게가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그렇게 우리는 정혁이네 집으로 향했다.


모두가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간 시간. 조용하고 포근한 날이었다. 따뜻한 햇살이 거실 창을 통해 들어왔고, 밖에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우리는 범죄 스릴러 영화를 봤다.


영화 속, 가장 긴장감 넘치는 클라이맥스 장면이 끝났다. 하아, 한숨을 쉬며 잠시 TV에서 시선을 돌렸다. 오른쪽 벽에 걸린 새집 모양의 시계가 보였다. 12시 50분. 5교시할 시간. 괜스레 소파 옆, 가지런히 놓인 책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었다. 분명 클라이맥스 장면은 끝났는데, 이상했다.


“효진아 우리 피자 시켜 먹고 갈래? 학교 점심시간 끝났잖아.”


“배달 기다리고 하다 보면 스쿨버스 시간 못 맞출 수도 있어 그냥 가자.”


“그런가?”


마치 하루 종일 학교에 있었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마지막 7교시에 맞춰 수업에 들어갔다. 여느 날처럼 스쿨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미국에 온 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집이 조용한 게 싫어, TV를 보려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꺼진 TV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TV위에 놓인 가족사진이 보였다. 표정 없는 선우의 얼굴이 보였다. 이 시간, 선우와 나를 위해 일하고 있을 부모님의 얼굴이 보였다.


나 뭐 하는 거지. 대체 왜 이러는 거지.


나는 계속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나를 무너뜨려갔다. 나조차 나를 주체할 수 없었다. 미국에 오면서 모법적이던 나를 한국에 버려두고 온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나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고, 사랑을 받고, 관심을 받았던 내가 미국에 와서 그것들이 사라지자 정신이, 내면이 엉망진창이 된 게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사춘기 시기이기도 했지만. 이 시기의 나는 부모님을 많이 원망했었다. 왜 미국에 와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는 선우가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평생 그렇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살 것만 같았던 내가 다시 조금씩 차분해질 수 있었던 건 선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교회에서(아무리 엇나가도 교회는 꾸준히 갔다.) 어떤 아이가 교묘하게 선우를 괴롭히는 장면을 봤다. 선우는 말간 표정으로 벽에 붙은 공룡 그림을 보고 있었다. 그 아이는 나를 등지고 있어서 내가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그랬을 거다. 아마도 저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을 거다. 매주 봐야 하는 교회 사람과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그냥 모른 척 지나갔다.


집에 와서도 그 생각이 계속 났다. 며칠이 지나도 그날의 선우 표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놀림을 받아도 놀림을 받는지 모르는 표정. 학교에서, 교회에서,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몇 번을 지었을지 모르는 그 표정.


그리고 나의 행동. 한국에서는 선우가 괴롭힘을 당하면 당장 가서 보호해 줬었는데. 나는 그냥 지나쳤다. 내가 원망하던 사람들처럼.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아이가 놀림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처럼.


그걸 깨닫고 나니, 미국에 온 뒤의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왜 그렇게 살았던 건지. 나에게도, 선우에게도, 가족에게도,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부모님께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오기 위해 비행기 타기 직전까지 일을 해야 했던 아빠가 생각났다. 각종 서류와 집안일을 해결하기 위해 혼자 고군분투했던 엄마가 생각났다. 학교에서 친구들의 연필에 찔렸던 선우의 손등이 생각났다.


아빠와 엄마는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열심히 일을 했고, 선우는 학교를 다니며 아주 조금씩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 가족은 모두 미국에 온 뒤 열심히 살고 있었다. 나만 빼고. 나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뒤를 돌아 도망치고 있는 꼴이었다. 부끄러웠다.


이때부터 다시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시 선우의 든든한 누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나를 다잡았다. 부모님의 믿음직한 맏딸로 돌아가기 위해 나를 다독였다.


지금의 단단한 내 모습이 선우 덕이라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나를 다잡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 원래의 나보다 더 크고 깊은 뿌리를 내리게 해 준 건 모두 우리 가족 덕분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날은 아마도 선우가 태어난 날, 내가 선우의 누나가 된 그날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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