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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뇌과학자 - 제임스 펠런

by 이소

나의 최애 프로그램, <용감한 형사들>을 보다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사이코패스는 타고나는 걸까, 아니면 만들어지는 걸까?"


궁금함을 해소하기 위해, 예전에 언뜻 들은 적 있는 ‘사이코패스를 연구하는 사이코패스 과학자’ 이야기를 찾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책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사이코패스의 뇌 구조가 일정한 특징을 지닌다는 점이었다. 공감 능력의 결핍, 자기중심적 사고, 법과 규범에 대한 무시 같은 성향이 단지 성격이나 교육 때문이 아니라, 뇌의 구조적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사이코패스는 유전되는 것일까?


펠런은 자신이 유전적으로 사이코패스의 뇌 구조를 가졌다고 고백한다. 조상들 중에는 살인범도 있었고, 형제들 중에는 공격적 기질을 지닌 이도 있었다.


만약 이런 뇌의 특성이 유전된다면, 이 사회에는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상상만 해도 섬뜩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점점 분명해진 사실이 있었다. 사이코패스적 기질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반사회적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펠런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종종 했지만, 극단적인 폭력성을 보인 적은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그런 충동이 없었으며,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로 ‘부모의 절대적인 사랑과 애정’을 꼽는다. 이 부분에서 나는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의 깊이와 무게를 다시 한번 절감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우주다”라고 말했다. 단지 시적인 표현이 아니라, 현실의 본질을 정확히 짚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처음 마주하는 세계는 부모다.


특히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타고난 아이일수록, 그들이 세상을 적대적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유일한 방패가 바로 부모의 사랑일 수 있다. 펠런의 사례는 그런 점에서 부모의 역할이 단지 ‘양육’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지탱해 주는 구조임을 보여준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단지 생명을 잉태하는 일이 아니다. 한 존재의 세계 전체를 책임지는 일이다. 부모의 삶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며, ‘아이의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윤리적 삶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책임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세상에 대한 분노를 품게 되고, 그것이 사이코패스적 기질과 결합할 경우 파괴적 폭력성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사이코패스 범죄를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단순히 ‘공포의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대신, 그들이 왜 그런 존재가 되었는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존재들이 펠런처럼 사회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펠런의 사례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파괴적 본성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사랑과 이해 속에서 자란다면, 사회와 공존하는 윤리의 경계 안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 더 나아가, 그런 존재가 인간과 뇌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학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결국 사이코패스적 기질은 쉽게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기질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할지는, 부모와 어른들, 그리고 사회 전체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누군가를 향해 “왜 저럴까?”라고 묻기 전에, “그는 어떤 아이였을까?”라고 질문할 수 있다면 — 아마 이 책이 내게 던진 가장 깊은 질문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사이코패스뇌과학자 #제임스펠런

북스타그램 @yiso_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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