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ip Glass/Uakti- Águas da Amazônia
장마 소식에 새 우산을 샀습니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도 장마 앞에서는 걱정이 많습니다. 무거운 비라서 그렇습니다. 비는 점점 더 무거워집니다. 장마보다 태풍이 더 거세고 여름비가 겨울비보다 더 많이 내리는 비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거움이 있습니다. 비가 상징인 일들은 버겁고 시린 일이고 점점 어른이 되어 갈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냥 다 맞아 버려, 자신만만한 패기를 자랑하던 날들은 다 흘러가 버렸습니다. 장마는 너무 길고 태풍은 사람을 아주 작게 만들며, 귀가 없는 비는 내 비명과 멈춰달라는 간청도 듣지 않습니다.
장마 지는 날이면 물의 무게를 체감합니다. 빗방울 하나의 물은 가벼워도 젖으면 중력의 충신인 듯 몸을 끌어내리고 그렇다고 부력을 부릴 수는 없어서 축축한 대기권에 사는 고단함만 남습니다. 몸속의 물은 장력에 끌려 동족을 향한 그리움에 자꾸 사무치고 나는 중력과 부력과 장력 사이에서 자주 미스터리한 상태에 빠집니다.
어스름한 물길이 공기 중에 열리는 여름이 되면, 물고기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금은 문을 닫은 아쿠아리움에 가서 무거운 물속을 느긋하게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의 무심한 표정을 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들은 나를 상관하지 않고 내 감정과 내 사는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덤덤한 얼굴로 하릴없이 물속을 헤집고 다닙니다. 거주하지 않으면 불안한 인간과 달리 무슨 이유인지 계속 물속을 느릿느릿 이리저리 움직이고 다니는 물고기의 임무는 무엇일까요. 내가 글 쓰는 일을 하듯이, 집안일을 하듯이 그들은 늘 움직입니다. 미스터리 한 그들의 일, 물속에서 움직이기, 는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처음엔 왜 그들은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하는지, 의문을 품던 것도 잊어버리고 물이 흐르는 대로 물에서 물까지 흐르는 법칙을 증명하는 모습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됩니다. 물이 흐르는 것을 관찰하고 몸으로 경험해 내는 것이 그들의 일인가 봅니다.
가장 좋아한 물고기는 피라루쿠였습니다. 피라루쿠는 아마존을 잊고 새파랗고, 고작인 수조에서 무기력하게 흘러 다녔습니다. 나는 피라루쿠의 우울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한 번도 나와 눈 마주치지 않고 두꺼운 피부로 물길을 쓸고 다녔습니다.
on Philip Glass/Uakti- Águas da Amazônia
피라루쿠는 아마존을 기억할까요? 나는 가 본 적도 없는 아마존을 기억합니다. 필립 그라스가 작곡하고 Uaktai 그룹이 연주한 <아마존의 강들> 음악이 내게 아마존을 기억하게 합니다. 만약 피라루쿠가 이 음악을 들으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을까요? 아쿠아리움은 없어졌고 이제 와서 그를 걱정해 봤자 아무 소용없지만 나는 그의 생애가 늘 궁금합니다. 아마존의 강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조상에게서 받았을 그가 아무쪼록 지금 잘 거슬러 올라가 어느 넓은 강가의 바닥, 진흙에 몸을 비비며 행복해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피라루쿠로 부르고, 그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또 형제나 남매 할 것 없이 일족을 모두 피라루쿠로 부릅니다. 그들은 거절하지 않습니다. 어떤 변종을 만들어내거나 의외의 장소에 발견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기억도 나지 않을 어린 시절에서 온 습하고 쿰쿰한 강바닥의 냄새와 물에서 물까지 이르는 긴 강들, 나무가 빠르게 자라다 강물에 쓸려 썩어가는 냄새를 모두 일컬어 아마존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아마존의 8개의 강의 이름에 바쳐진 필립 그라스의 곡명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강은 아마존으로 통하고 나에게는 모든 강을 거니는 일생의 피라루쿠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피라루쿠는 아주 오래된 종種입니다. 광물화된 두꺼운 껍질은 오랜 시간 퇴적된 지질화석 같습니다. 질기고 견고해 보이는 피부가 유연하게 움직이면 물의 무게와 비례하는 비늘의 무게를 알게 됩니다. 나는 어쩌면 피라루쿠의 갑옷 같은 두꺼운 비늘을 갖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피라냐도 깨물 수 없는 질기고 단단한 피부와 유연한 몸짓을 갖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쉽게 다치는 마음으로 찾아가 하염없이 바라보던 피라루쿠는 내 말도 모르고 내 사연도 모르지만 자기만의 속도로 느릿하게 내 앞에서 헤엄쳤습니다. 나는 물의 무게를 감당하는 거뭇한 지질화석 같은 물고기가 뻐금거리며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유려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는 아주 느리고 묵직한 무게로 물을 가진 모든 존재의 물길을 열어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거대 수조는 물의 감촉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 물이 어떤 감각인지 다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속에 흐르는 물들이 물의 감각을 알도록 길을 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피라루쿠는 서두르지 않고 아주 천천히 떨리는 속울음 속으로 헤엄쳐 들어옵니다. 그리고 나를 관통해 물로 다시 나아갑니다. 피라루쿠는 품어지지 않았습니다. 뚜렷한 상으로 맺히지도 않습니다. 그는 늘 나를 관통해 갔습니다.
어떤 물들은 나를 관통해 흘러갑니다. 실은 모든 물들이 그렇습니다. 가만히 있는 물은 기화되거나 썩는 방법으로 나아가고, 살기 위한 물들은 계속 움직입니다.
피라루쿠는 물의 생애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아마존의 8개의 강이 연결되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계속 물들을 이동시키는 대로 잠자코 따라줍니다. 그들의 임무는 물에서 물까지 관통하는 물길을 육중한 무게로 누르고 나아가는 일입니다.
타악기와 플루트가 끊임없이 흘려내는 선율은 물 위를 흐르는 것 같습니다. 이 음악은 피라루쿠의 물을 헤아리지 않고 계속 물결을 쓰다듬으로 나아갑니다. 마치 미끼와 같습니다. 다른 물고기들은 튀어올라 입질을 해도 내 마음속의 파라루쿠는 묵묵히 물로 나아갑니다.
이 음악을 피라루쿠와 듣는 것은, 그의 종種이 가진 오래된 임무와 물의 생애를 관통하며 헤엄치는 일을 함께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쿠아리움의 시리게 푸른 수조에 사는 피라루쿠와 도시에 사는 내가 가진 살 떨리게 서글픈 삶이라도 물이 있는 곳이라면 물에서 물까지 관통하며 움직이겠다는 무언의 약속입니다.
습한 공기와 비소식 때문에 우산 하나 더 챙겨드느라 짐이 무겁습니다. 나는 또 피라루쿠를 생각합니다. 아마존의 기억을 잃은 피라루쿠의 두껍고 질긴 피부와 느릿한 헤엄을 떠올립니다. 중력과 부력과 장력 사이에 사는 우리, 물에서 물까지 흐릅니다. 훌쩍, 콧물이 났습니다.
*Uakti는 브라질의 악기그룹으로 직접 고안, 창작한 악기를 주로 씁니다. 우악티는 전설 속의 인물로 온몸에 구멍이 있어 구멍에 바람이 드나들며 아름다운 소리를 내어 여자들을 꾀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우악티를 잡아 죽여 땅에 묻었고 그 자리에서 자란 야자수의 가지를 베어 악기를 만들어 음률을 연주했다고 전해집니다.
*필립 그라스의 우악티의 이 음악은 포르투갈의 댄스 컴퍼니, GRUPO CORTO의 발레 작품을 위해 쓰였습니다. 그라스는 처음으로 다른 그룹에게 이 음악의 편곡, 연주를 맡겼으며 후에 솔로로 연주한 앨범도 발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