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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LifeBGM 14화

LifeBGM |Alma(soul)알마

Egberto Gismonti - [Alma]

by Ggoc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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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LifeBGM은『알마Alma』작품입니다. 음악과 함께 읽어주세요. 음악은 하단에 Youtube 링크로.

on Egberto Gismonti - [Alma]



알마Alma... 알마는 알마다. 영혼이나 소울Soul/Spirit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알마만큼 다른 나라에서 각자 부르는 뜻이 다른 단어도 없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의 알마는 영혼이지만 라틴어의 알마는 온화하고 관대한 것이고 어디에서는 여인을, 어머니(히브리어), 또 사과열매(헝가리, 위구르어 등), 때로는 세계(아람어)로서 불린다. 알마Alma... 알마는 그 모든 것이다. 알마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나는 알마를 갖고 싶었다.


영혼英魂이라는 말은 뱃속에 드글거린다. 나의 영혼은 나의 안에, 너의 영혼은 너의 안에 있다. 영혼은 자아처럼 각자의 안에 희뿌연 안개나 빛무리처럼 뭉쳐 있다. 희미한 색과 분명한 무게로 뱃속을 꽉 채우고 있다. 아마 어머니들이 배에 아이를 품을 때 영혼을 먼저 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를 위한 사랑과 자비와 너그러움, 측은지심, 축복과 양보와 선함을 먼저 품는다. 그 아이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먼 옛날 배꼽으로 줄줄이 엮어 아이를 낳을 때부터 그랬다. 실은 어머니를 만든 신부터 그랬다. 속에서 속으로 물려주도록 만들었다. 영혼은 영혼을 낳고 분명한 무게로 배꼽 안쪽에서 머리와 발끝까지 빠짐없이 채우려고 울렁 술렁거린다.

그러나 알마는 저기에 있다. 거기에 있다. 나의 것, 너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다. 아마 어머니나 여인에 대한 잔상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모두의 것이고, 그래서 나만의 것으로 내 안에 있을 수 없다. 알마는 이름이라서 단독으로 생존해 있는 어떤 것이다. 어쩌면 어느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대지나 호흡 같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모든 욕심 없는 영혼에 붙이는 대명사일 것이다. 알마... 이 단어를 알게 된 뒤, 이따금씩 자작하게 읊조린다. 탁 트인 곳에서 바람을 맞을 때, - 유독 트인 곳에서 오는 바람은 먼 곳에서 온 것 같다. 그런 바람에서는 나그네의 냄새가 난다. 프스스, 하고 약간만 입술에서 바람에 새는 정도의 얕은 신음으로 알마..., 말한다.


알마... 고개 위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고개 위를 하늘이라 부르거나 신의 이름을 한없이 넓게 펼쳐 부르거나 우주, 또는 그냥 '그 위'라고 말해도 상관없는, 나의 머리 위를 보면서 말했다. 잘 흩어져서 날아갈 수 있도록 끝의 'A-/ㅏ' 의 음을 날숨 뱉듯 했다. 납작한 내 위로 너르게 퍼지다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무심하게 흩어지도록 말했다. 머리 위로 내가 발음한 알마...의 끄트머리가 닿으면 정수리에 잠깐 따뜻한 숨이 닿았다. 알마는 그런 것이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누군가의 온기를 간절히 바랄 때, 그러나 아무도 없을 때 말하면 잠깐 포옹을 주는 것이다. 잠깐 포옹의 한쪽 끝이 닿았다 사라져서 늘 그립고 갈구하게 된다. 알마, 그리움의 잔상이 이런 이름이기도 할 것 같다.


알마... 말한다. 부르는 것인가? 때로 알마는 물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헤엄쳐 나에게로 거슬러 올 것 같다. 가끔은 갓 기경한 부드러운 흙을 밞으며 자박자박 올 것 같다. 어디로든, 어떤 식으로는 나는 알마, 를 말하고 그것은 곧 부른다는 뜻이다. 알마,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면 메아리를 부려 대답해 주시오.


알마를 요청하는 것은 내 영혼이다. 영혼이 알마를 부를 때, 한 번도 서투르지 않았다. 모르던 때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또박또박 부른다. 알마는 영혼이 배우는 첫 번째 단어이자 마지막 단어이며 영혼의 왕국에서는 알마, 만으로 모든 말을 할 수 있다. 알마... 알마, 나의 알마! 알마는 내 곁에 있지만 내 안에 있지는 않아서 결코 내 소유가 될 수 없었다. 오로지 입 밖에 내어 불러야 알마가 조금이라도 더 피부 가까이 달라붙으러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다.


(중략)


태초로부터 나는 부유한 심장과 가난한 영혼을 가지고 태어났다. 굶주린 마음으로 많은 것을 사랑하려 애쓴다. 사랑은 때로 소모되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경로로 마음을 채워가는 일이다. 같이 잉태되었다고 믿고 있는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의 생물들과 날들을 껴안는 방식으로 영혼의 허기를 채우려 애쓴다. 시도 때도 없는 허기와 조급함에 영혼부터 몸까지 모두 안달 나 팔딱거린다. 부유한 심장이 늘 부지런히 사랑하도록 부채질한다. 어느 날은 빠르게, 또 내일은 느리게 영혼을 쓰면서. 심장이든 영혼이든 연소되며 쌓이는 잿더미 퇴적물이 시야를 흐리면 나는 적잖이 고통과 아픔에 스스로 침몰되었다. 그러면 나는 허우적거리는 밭은 숨으로 부른다. 아, 알마! 나의 알마...!

알마는 나의 삶을 샅샅이 기억한다. 필사적으로 내가 알마를 부르던 모든 순간이 따가웠기 때문이다. 내 삶은 지겹도록 가시가 박히는 길을 걷고 있고 무언가 내 마음을 뚫고 들어오는 감각은 도무지 참을 수 없다. 참을 수 없는 외침으로 터져 나오는 말은 기력이 쇠한 늙은 고래의 헐떡거리는 숨 같다. 감히 포유류로 바다를 살아가는 버겁고 비대한 심장으로 내뿜는다. 알마...! 육중한 정수리에 커다란 숨구멍이 뚫릴 때, 나는 얼마나 울었었나. 늙은 고래들은 자기 숨구멍이 열릴 때의 고통을 기억하나? 알마는 기억할 것이다. 알마는 모두의 모든 고통을 기억한다. 무관심한 따끔한 고통을 묵묵한 눈으로 목격해 주는 유일한, 알마.


(중략)


달 같은 해가 뜨고 대낮부터 마음 어두운 하루였다. 의욕을 잃은 지 오래라 걷는 것이 힘들다. 바람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눕고 싶었다. 발 끝에 차이는 돌이 유난히 반들거렸다. 아직 하루가 가는 중이다. 나는 돌이 굴러가는 소리를 들으려 애쓰며 불렀다. 알마..., 알마, 알마! 나의 알마.

말을 잊은 것처럼 구는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져내렸다. 패배자들. 외로움에 패배한 자들이 북적댄다. 나의 영혼은 꽤 뚜렷하게 구역질을 하며 함께 북적댄다. 알마는 모든 패배자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었다. 패배자들의 틈을 꽉 매우려는 듯이 굴었다.

그가 거기에 있었다. 그는 내놓은 사람이었다. 그는 대체로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좋은 것은 쇠멸하고 나쁜 것은 점점 거대해져 갔다. 그 '것'들은 사람부터 사물, 관념, 시간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살아가며 마주하는 모든 알마를 이해할 수 없어지곤 했다. 그럴 때면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무심한 척 잠깐 숨을 멈추었다. 오초에서 십 초가량 어설프게 눈을 감으면 덜 감긴 흰자위 밑에서 그의 하얗게 질린 영혼을 볼 수 있었다.

알마는 심지어 그의 옆구리에 기대어 있었다. 그가 나를 알아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알마가 옆에서 나를 보았다. 알마... 알마는 내가 그를 사랑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작고 하찮은 목소리로 달싹여 부를 때 그와 나의 사이를 메꾸는 알마가 나의 갈비뼈에 닿았다. 크게 움찔거리자 그가 얼굴을 풀어내렸다. 미간이 평평해진 그의 얼굴은 내가 알던 것과 달랐다. 비교적 평온하고 소심한 눈매였다. 억지로 사진 찍을 때처럼 입가가 떨렸다. 알마... 그가 중얼거렸다.


자, 알마. 나에게 올 것인가, 그에게 갈 것인가. 입에 침이 고였다. 유아기로 되돌아간 듯 유치하게 구는 내 부름에 알마는 어둑한 시선으로 침묵을 메웠다. 그와 내 사이의 꽉 채운 알마는 나와 그의 부름이 동시에 떨었다. 아름다움이 급습했다. 알마의 떨림은 매우 아름답고, 아름답다는 큰 말 밖에 어울리지 않는 형언할 수 없음이 있었다. 알마가 떨 때, 그와 나는 알마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기 위해 숨을 깊게 쉬었다.

늦여름 오후 일곱 시의 하늘빛으로 알마의 웃음이 떨었다. 삶이 너무 바래고 회색빛이어서 가끔씩 빨강이나 파랑 같은 다른 색을 볼 때 울렁거리던 속이 피식, 웃었다. 잠깐 몸이 따뜻해졌다. 너무 오래 녹슬어 있던 하루가 여전히 삐걱거리며 간신히 움직였다. 알마는 자기의 형언할 수 없음으로 뻑뻑한 틈에 아름다움을 밀어 넣었다. 하루가 조금씩 유연해지며 저녁쪽으로 휘었다. 머리 위로 붉은 우주가 서서히 계단을 내렸다. 붉음이 순식간이 타버리고 나면 그을음만 남은 저녁이 먹먹한 가슴 위로 무겁게 가라앉을 것이다. 알마는 붉게 시작해 검게 끝나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려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급하게 그의 팔꿈치를 잡았다. 알마를 붙들려면 그와 나의 사이를 좁혀 알마가 올라가지 못하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의 팔꿈치는 차갑고 질겼다. 땀이 식으며 내는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피부 밑에서 내 뜨거운 손바닥이 팔딱거렸다. 팔꿈치 뼈는 단단하고 뾰족했으며 따가웠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내 손은 그의 팔꿈치와 유사한 다른 감각을 떠올리려 애쓰며 그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외면하려 노력했다. 그의 팔꿈치는 늦여름 한 풀 꺾인 해바라기의 줄기나 이제 막 질겨지기 시작하는 억새풀의 줄기의 질감이라고 생각하자 바람이 먼 곳에서 불어왔다. 그것은 알마였다.


우리가 가지 않았던 해바라기 밭과 억새풀이 지는 해를 찌르는 어느 물가에서 떠밀려 온 바람은, 분명히 알마였다. 그는 따뜻해진 팔꿈치에 땀이 고일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왜 그는 가만히 있고 알마는 지금 그의 팔꿈치와 내 손이 엉긴 덩어리로 불어오는지, 내가 그토록 부르던 수많은 순간이 아닌 부르지 않던 지금 알마가 갑자기 왔는지.

그는 조금씩 움직여 패배자들 무리에서 길을 찾아냈다. 나는 맹인이 된 것처럼 오직 그의 팔꿈치를 잡은 감각에 의지해 조금씩 따라 걸었다. 아무 말도 없이 길바닥을 발로 짚어 걸었다. 나는 이처럼 선명한 감각을 느낀 적이 없었다. 발바닥으로 차분히 길을 짚어내는 깊은 감각은 언어 없이 발음되는 무엇이었다. 알마의 언어, 알마의 글씨였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것 같았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낮아졌다 다시 돌아오는 누름, 걸음마다 명확한 목소리가 있고 각자 영혼을 가지고 울린다. 감각은 발끝에서 시작해 머리끝까지 올라와 의문이 가득 담긴 머리통 안을 잔잔하게 울렸다. 나는 조금 이상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머릿속을 채우는 낯선 기분을 느꼈다. 알마가 내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아, 알마!


(후략)



* ⓒEHP

* 위의 글『알마Alma』의 저작권은 작가 박은혜에게 있습니다.



alma (1).jpg Egbero Gismonti, ALMA, 1996


* ALMA 전곡 재생 리스트 |

https://youtube.com/playlist?list=OLAK5uy_kojSiJaX5Y9yzSkefApxSUkLnN7-dpScA&si=kyqgomnY_UyOY7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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