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ie Haden - Silence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소란과 더위에 이미 지친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닥에 누워 만델슈탐의 시를 읽었습니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고,
아무것도 배울 필요가 없으니
야수처럼 어두운 영혼
참으로 슬프나 아름답다.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기에
아예 말할 줄도 모른다.
어린 돌고래처럼
깊은 잿빛 바다의 세상을 헤엄쳐 나간다.
-오시프 만델슈탐 О́сип Эми́льевич Мандельшта́м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고> 1909 -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무거움, 모든 감각이 피로해질 때까지 타인을 향해 있어야 한다는 번잡함, 속내가 짓무르도록 시끄럽게 살아야 한다는 버거움을 견딘다는 뜻입니다.
때로는 모두 왁자지껄하게 떠들어 이명이 돌고, 이명의 귓바퀴를 돌아 빠져나오고 싶은 간절한 소망, 홀로 나를 버려두고 싶은 외로움에 대한 열망이 솟습니다.
여름은 특히나 그렇습니다. 열기에 열린 땀구멍은 끊임없이 짠맛을 내고 피부부터 장기까지 온몸은 시끄러운 온도에 닳아버립니다. 마음은 몸과 친해서, 몸이 이만큼이나 지쳐 버리는 열대야면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나 아파트 공터에서 하릴없이 나는 벌레 소리에도 마음이 부어버리곤 합니다.
나의 퉁퉁 부어버린 마음은 도무지 아무 말도 아무 소리도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꿈마저 녹아버리고 나면 까칠한 눈꺼풀은 쉬이 잠들지도 못하고 겨울보다 환한 밤의 발랄함을 피해 깊은 바다로 들어가고 싶어 집니다. 오시프 만델슈탐의 잿빛 고래가 되고 싶습니다.
On charlie Haden - Silence
'이렇게 많은 말들을 헤치며 걷는 침묵의 고단'함에 대해서 쓴 일이 있습니다.(길에서 주운 생각들 12) 침묵이 무서운 것은 그 고단함의 무게 때문입니다. 말 많은 이 세상, 잠시도 조용할 날 없는 이 세계에서 멈추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침묵이 말하는 소리를 듣겠습니다.
침묵도 말합니다. 뻘밭을 저벅이는 것 같은, 또는 물구나무 선 채 밤의 하늘을 짚어 오는 새벽의 어조로 말합니다. 바글거리는 더위의 부산한 호흡 사이에서 서늘하고 길게 말합니다.
아마 나는 소음마저 더위를 부채질하는 이 여름의 축축한 열기 사이를 서늘하게 침묵이 가르며 와주기를 바라는 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황망한 정수리까지 오르는 복잡한 세상사에서 비명을 지를 수 있다면, 그것이 침묵의 말소리처럼 뻘밭과 새벽의 차가움을 닮아있기를 바라는 지도 모릅니다. 세상엔 온통 점점 온도를 높이는 일들 뿐이고, 잠깐 서늘할 수 있는 순간은 침묵하는 때입니다.
쳇 베이커가 세상을 떠나기 6개월 전에 녹음한 찰리 헤이든의 이 곡은 유일하게 쳇 베이커의 연주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 곡입니다. 그의 지나치게 낭만적인 보컬과 트럼펫 연주는 여기에선 아주 고즈넉하고 단순하게 울립니다. 엔리꼬 피에라눈찌의 피아노가 천천히 화성으로 가르고 나오는 틈으로 질질 끌며 걸어오는 그의 트럼펫 소리는 어쩌면 침묵의 소리를 닮은 것 같습니다. 찰리 헤이든의 콘트라베이스와 빌리 히긴스의 드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뭇가지로 뻘밭에 필담을 건네듯 적는 화성은,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은 자를 위한 배려 같습니다. 연주되었다기보다, 사운드라기보다, 묵음의 뒷면을 보여주는 듯한 이 곡은, 만델슈탐의 잿빛 고래의 서식지까지 닿을 만큼 깊고 긴 파장을 지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듣기 싫어 잠수한 내 귀까지 내려오는 소리입니다. 리듬도 선율도 서두르지 않으며, 어두운 영혼이 고래의 등을 타고 달리며 울 때, 오래 숨을 참은 침묵이 마지막 숨을 길게 뿜었습니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 없이 슬프고 아름다운 여름이 헐떡입니다.
...
이것도 이미 음악이군요. 말이군요. 바다가 뱉은 말이 뒹구는 해변으로 헤엄쳐야겠습니다. 어린 돌고래가 꺄르르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