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gran Hamasyan - For Gymuri
혹독한 여름을 무엇으로 견뎠을까? 옛날에도, 내가 아이였을 때에도 이만치 더웠었나? 여름을 즐겼을 때, 웃고 떠들며 땀 흘릴 수 있었을 때, 그때는 오로지 아이였을 때다.
여름은 아이의 것. 나뭇잎이 덥수룩해 숨을 수 있고, 늦도록 해가 지지 않아 더 놀 수 있다. 옷이 물에 젖어도 땀에 젖어도 웃을 수 있기, 아이스크림 생각하기, 천진해질 수 있기. 제철 과일과 채소를 따먹으며 지치지 않고 뛰어다닐 때, 내가 아이였던 여름만이 오로지 여름이 친구였다.
햇볕에 타는 것이 두렵지 않았을 때, 땀이 배어 나오는 미끌거리는 피부를 맞대도 좋을 때, 살갗이 열을 뿜어내는 여름의 냄새를 킁킁거리며 후덥지근한 공기 중을 거침없이 달렸을 때, 궁금한 것들을 아무렇게나 던질 수 있었을 때, 뻣뻣하게 자란 풀숲에 베이지 않고 지는 해를 웃으며 배웅할 수 있었을 때.
지글거리는 수평선으로 헤엄치는 게 두렵지 않았을 때, 따끔거리는 해수 위를 떠다녀도 좋았을 때, 발에 묻은 모래가 너무 짜증스럽지 않고 끈적이는 바닷물로 씻으며 깨끗하다고 만족했을 때, 뜨거운 와중에도 잠들 수 있었을 때. 땀이 덜 마른 옷을 털어내고 또다시 작열하는 곳으로 달리면서 물음표를 떠올리지 않았을 때.
On Tigran Hamasyan - For Gymuri
내가 아이였던 여름만이 땀내가 화사했다. 오늘은 여름의 목을 따고 싶고, 덜 마른빨래 같은 심신 대신 누구라도 자줏빛 바위를 딛고 올라가 해의 모가지를 따오면 그와 혼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오! 헌화가), 나도 한 때는 여름을 사랑했던 적이 있었다, 떠올려보면, 그리워해보면.
티그란 하마시안의 전설 같은 선율은 여름 새들의 목소리를 타고 왔다. (Tigran Hamasyan 『The Birds of A Thousand Voices』, 2024) 새들이 아스팔트에 녹아 들러붙어 있고 울지 않는 지독한 여름, 에어컨이 윙윙 돌아 헐떡이는 아파트 단지를 걸으며 나는 물었다. "왜 새가 울지 않지?"
"왜 새가 노래하지 않지?" 여름이 목소리를 잃었다. 그리고 대신 몸짓으로 나에게 말을 하기 위해 더욱 뜨거워졌다. 사라진 여름의 목소리들, 여름 새, 매미, 찌르르, 땀을 두려워하지 않던 나의 아이일 적의 여름 소리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만큼 더 혹독해진 여름의 빛은 외면당한다. 아무도 그것을 읽으려고 하지 않고 버티려 하지 않는다. 기상학자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아이였던 여름은 고향의 것이었다. 민화民話로 남은 옛 시절은, 혹독한 계절의 한가운데는 도시에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산이나 바다나, 정취가 있는 곳들은 모두 고향이었다. 혹은 진짜 고향이기도 했다. 아이와 여름과 고향은 볕 뜨거운 줄 모르는 용감한 한철을 난다. 시큼한 땀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짭짤해지는 이마를 밝히는 웃음을 터트리며 여름의 한가운데를 질주한다.
티크란 하마시안은 아르메니아의 규마리에서 어린 시절을 났을 것이다. 아르메니아의 여름을 나는 모른다. 그러나 티크란이 늘 선율에 담는 규마리에서의 한 철은 그립고, 알 만한 것이다.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고향, 또 다른 여름의 한 때, 티크란이 아이였던 여름과 내가 아이였던 그 여름.
민속은 점점 더 넓어진다. 민속은 모든 지금의 어른들이 아이였던 한 철이다. 어른으로는 마냥 견뎌야만 하는 혹독한 열기와 기력을 빼앗기는 여름이 아직 만면한 기쁨일 시절이다. 아르메니아의 민속에서 올라온 티크란의 음악을 들으며 선선한 실내에서 창 밖을 본다. 통유리에는 건너편의 공원이 있고 가로수와 풀숲 너머 분수대에서 물 뿜는 광경이 보인다. 방학을 맞은 아이 몇 명이 핸드폰을 하며 지나간다. 차들이 2차선 도로를 쉴 새 없이 가로지른다. 여름인가? 참, 여름은 소리를 잃었다. 해가 잠깐 지쳐 쉬는 오늘 같은 날이면 유리창 안에서 어른인 나는 여름을 미워하며 동시에 동정한다. 신호등이 붉고 파랗게 쉴 새 없이 피었다 진다. 아스팔트가 딱딱하고 뜨겁게 바짝 구워져 동네 개들을 성급하게 한다. 어떤 개들은 유모차에 피신해서 달린다. 그들의 다리가 아니 다른 것으로. 비둘기가 낮게 날아 아슬아슬하게 질주하는 차 지붕을 스쳐 간신히 신호등 위에 앉는다. 멀리 바라본다. 비둘기는 무언가를 열심히 견뎌내고 있다. 나처럼, 여름처럼.
남은 이 여름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나는 내 어린 시절의 여름을 잃었고 여름도 새도 목소리를 잃었는데. 그렇다면 잃어버린 것들끼리 견뎌야 하나보다. 혹은 잃어버려진 것들의 모임에 나가야겠다.
바람과, 새의 목소리와 허밍과 고향과 여름이 『한 여름밤의 꿈』을 공연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티그란 하마시안의 규마리가 특별출연하는 극의 초대장을 눈치채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지만.
내가 아이였던 여름이 비둘기 옆에 앉아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나는 구슬픈 여름 땀을 가리려 여러 번 덧 뿌린 향수 밑으로 곰질거리는 살갗을 벅벅 긁었다. 내가 아이였을 때와 그때의 여름이 허밍으로 노래를 불렀다. 비둘기가 달궈진 신호등 위에서 펄쩍 뛰어 날아갔다.
티그란 하마시안의 페테스부르크 For Gyumri 라이브 공연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