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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LifeBGM 19화

LifeBGM | 얇은 거죽을 두들겨 영혼을 묻다

Zohar Fresco - Tof Miraim

by Ggoc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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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얇은 거죽을 입고 평생을 활보합니다. 아무리 많은 공을 들여도 거죽은 무거워 늘어집니다. 그것은 알맹이가 점점 세월에 절여져 조금씩 쪼그라드는 탓이고 또한 영혼이 점점 단단해지기 때문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말테의 수기』에서 거죽 밑에서 삶이 점점 줄어들고 죽음만 남은 조부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우리의 거죽 밑에는 참으로 많은 게 들어 있습니다. 삶도 죽음도, 사랑도 미움도, 또 그런 모든 것을 끌어안고 있는 영혼도 있습니다.

가죽으로 만든 타악기는 아주 원시적인 때부터 연주되었습니다. 나무 프레임에 동물의 가죽을 팽팽하게 당겨 만든 표면을 두들기는 리듬에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우리 거죽 밑에 있는 것들을 깨우기 위해서입니다. 가죽이 만드는 탄력과 탄성은 자주 잊은 거죽 밑의 존재들을 부르고 생생하게 만듭니다. 이 얇은 거죽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살냄새를 풍기든 두들김과 울림에 태생적으로 반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On Zohar Fresco - Tof Miraim


박수를 치세요. 팔뚝을, 뱃가죽을, 허벅지를 두들기세요. 몸을 두들기면 어떤 파장이 몸의 깊숙한 곳 너머의 어느 지점까지도 전달됩니다. 그러면 속살이 간질간질해집니다. 피부도 붉고 따뜻하게 올라오다 간지러워집니다. 나는 이 간지러움을 참을 수 없어서 프레스코의 이스라엘 북 연주를 들을 때면 공연히 큼큼, 목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가다듬습니다. 프레스코만이 아니라 프레임북 주자들은 읊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추임새나 스캣을 넣기도 하는 것 같은 소리는 냅니다. 나는 그들의 그 소리가 흥에 겨워 일어난 자기 속의 영혼이 내는 즐거운 소리라고 믿습니다.


지난주에는 더위에 타고, 이번 주에는 내내 빗물과 습기에 지친 거죽을 문지르며 북소리가 전하는 말을 경청합니다. 언제나 모든 북소리는 몸 안에서 일어나는 장기의 리듬을 결코 배반하지 않고 둥둥, 울립니다. 울림은 어디를 두들기는 줄도 모르고 팔딱대고 졸음에 파묻혀 있던 안쪽의 사정도 불러옵니다. 안쪽의 사정이 목표인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프레스코는 손으로 치는 프레임북의 연합의 일원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프레임 주자들은 동일한 가죽의 선조와 리듬의 선조와 손의 선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정원'이라는 이름의 드럼 주자들의 손은 두툼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맨손으로 양이나 소의, 때로는 다른 동물의 거죽을 두드리는 것을 보면서 재채기하기를 좋아합니다. 굵은 손가락마디 하나하나 힘을 주어 손가락과 손바닥과 손목을 섬세하게 두들기며 내는 소리는 십 분이 넘어가기도 합니다. (수록곡 Jacob's Ladder는 12분이 넘는다.) 그다지 화려한 선율이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악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북소리만으로 안쪽의 무기력한 인사를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혹자들은 그것이 본능이라고 말합니다. 거죽의 본능, 또는 영혼의 본능 말입니다. 아무리 이성과 지성이 발달해도 거죽을 가진 자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는 본능입니다. 거죽이 없는 것들은 가질 수 없는 본능입니다. 그것은 또한 몸과 영혼의 경계에 대한 다른 이야기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무용수 오하드 나하린이 만든 GAGA가가에서 선생님은 거죽으로 걸어보라고 했습니다. 거죽이 너무 크고 몸은 그보다 작아서 너무 큰 거죽을 입고 버거운 느낌으로 걸어보라고도 했습니다. 또는 거죽이 뼈를 움켜쥐는 감각을 상상해 보며 걸어보라고도 했습니다. 나는 프레스코의 드럼 연주를 들으며 리듬에 맞추어 내 무거운 거죽의 무게를 질질 끌며 걸어보았습니다. 너무 작은 내 영혼과 너무 큰 내 거죽을 비교하면서 걸을 때, 이 버거움이 내 영혼의 고단 함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선생님은 나에게 몸을 두드리라고 했습니다. 얼얼할 때까지 맨손으로 나의 몸을 두드리면서 프레스코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얇고 팽팽해 조명을 비추면 투명하게 훤히 다 비치는 프레스코의 프레임북을 상상했습니다. 내가 내 몸을 두들길 때 내 안쪽에서는 저렇게 투명하게 비치는 리듬을 볼 것입니다. 프레스코의 손은 이미 단련되어 두껍고 아무리 두들겨도 아프지 않을 것 같지만 내 손과 내 거죽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 얼얼하고 빨간 거죽 밑으로 스며드는 두들김을 기꺼이 느꼈습니다. 내가 생생하다는 증거니까요.


이렇게 연약한 나의 거죽으로 삽니다. 종이날에도 쉽게 베이고 손가락 두 개가 힘주어 꼬집으면 빨갛게 멍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이스라엘 북 연주를 듣는 것은, 그들의 연주가 거죽에서 거죽으로 가 아닌, 거죽에서 영혼으로 통하는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연주를 듣는 것은 멍이 들거나 피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기력과 무망감에 지친 한여름에 프레스코의 리듬을 들으며 안쪽이 간질간질하게 계속 재채기하는 것은 아마 고단한 내 영혼이 그 부름에 대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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