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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LifeBGM 18화

LifeBGM |잃어버린 길을 찾지 않는다

Sissoko,Segal,Parisien,Peirani-LesÉgarés

by Ggockdo


사람들이여, 안녕하신가요? 여름은 길 잃기 쉬운 계절입니다. 마음의 길도, 감정의 길도 모두 열기에 시달려 지치기 십상입니다. 몇 년 전, 한여름에 해파랑길을 걸을 때의 혼란한 길을 떠올립니다. 행인들이 기껏 밟아 다져 놓은 산길은 반나절만에 덥석 자라난 풀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여름의 산은 폭우만큼 갑작스런 무더기 풀더미의 성성한 성장에 길을 잃고 덥수룩하게 잎으로 뒤덮입니다. 나는 잘 보이지 않는 길을 바닥을 더듬어 찾느라 풀물이 드는지도 모르고 웃자란 풀더미를 헤집었습니다.


사람들이여, 잘 걸어가고 있나요? 조금만 걸어도 금방 탈진해 버리는 계절입니다. 그늘막에 누워 여름의 끈질긴 집착을 벗어나려 버둥대며 헐떡이는 숨구멍들은 다 괜찮은가요? 해가 뜨고 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낮에도 밤에도 여름은 한결같고 성실해서 지독하게 내 호흡을 재촉합니다. 숨길도 이렇게 길을 잃습니다. 뻔한 경로라도 여름에 걷는 것은 겨울의 눈밭을 헤치고 걷는 것과 또 다릅니다. 길은 그대로인데 통째로 난해해집니다. 방해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열이 이글거리는 거리는 길을 회피하게 만듭니다.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가 되어버립니다.


여름은 어느 길을 걷고 있나요? 바람도 바람길이 있고 물도 물길이 있으며 하늘에는 하늘길에 땅에는 흙길이 있는데 여름은 길이 없습니다. 여름은 난폭하고 잔인하게 사방을 다 태우며 활보합니다. 길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처럼, 길을 거부하는 것처럼 갈지자로 뻗어나갑니다. 광활한 여름의 길을, 나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여름의 길은 더욱 난폭하게 모든 길을 더위로 뭉개버립니다.


나는 어디쯤, 어느 길목에 있을까요? 여름이 거칠게 밀고 들어오는 저 길은 나의 길인데 무소불위의 열기에 곤란해하면서 내 길을 포기해야 할까요? 여름의 성질머리란, 세상의 핏줄을 그대로 이어받아 저리도 광인같이 굴며 밀려오는데 내가 이 길을 꼭 걸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무기력하게 늘어지고 싶습니다. 몸이 접히는 곳마다 고이는 땀이 끈끈하고 권태가 속까지 골고루 아주 알맞게 익어 부풉니다. 여름에 점령당한 이따위 위험한 길을 오늘 꼭 걸어야 할까요? 유독 이 여름은 내 자리를 마땅한 자리같이 만족스럽게 굽니다. 나는 자리 선점에 실패했습니다. 하필이면 여름의 길목에 자리를 잡은 것일까요? 내 길인데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오로지 내 길에는 무성한 여름 수풀과 난폭한 더위만 휭휭합니다.


on Ballaké Sissoko, Vincent Segal, Vincent Peirani, Émile Parisien - Les Égarés

여기에 "길을 잃어버린 자들"이 있습니다. Les Égarés ! 4인조, 또는 두 개의 2인조는 길을 잃었는데 나와 같지 않습니다. 나는 잠시 이들이 나와 같은 신분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어 황망했습니다. 길을 잃은 자들의 덕목이 하나도 없는 경우 없는 자들입니다.

길 잃은 자들은 낭패, 실망, 무기력, 짜증과 우울, 불만과 낙담, 낭패와 권태를 가져야만 하는데, 이 불경한 4인조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시적입니다. 길을 잃었는데 길을 찾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길을 찾지 않습니다. 더위에 헐떡이며 경황없는 귀로 길을 잃어버린 자들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길이 있었나 싶습니다. 그들은 길을 잃었다고 고백하면서도 슬퍼하지 않고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덥수룩하게 난 수풀 사이로 엿듣고 싶어지는 음률을 읊습니다.

생각해 보면, 길이라는 게 과연 있나, 싶습니다. 내게로 오는 길은 제한이 없고 또한 내가 당신에게 가는 길도 제한이 없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사방으로 가고 싶습니다. 여름처럼, 더위처럼. 온몸을 감싸고 덮어버리듯이 가고 싶습니다. 4인조의 불경한 음악처럼, 길을 잃어도 찾지 않아도 되는 길의 포식자들처럼.


길은 한 점과 한 점이 만나는 선이 아닌데, 자꾸 잊어버립니다. 우리의 마음도, 거주하는 곳도 꼭 한 갈래의 길로 들고 나지 않는데 자꾸 착각합니다.

"길을 갖고 놓치지 않으려고 하니, 잃어버리지." 시소코의 코라 현 위에서 춤추는 페이라니의 아코디언 소리와 전혀 다른 소리를 하는 에밀 파리지엥의 색소폰이 픽, 하고 웃고 지나갑니다.

때로는 길을 갖지 않아도 됩니다. 여름은 겨울로 가기 위한 것이고 과실이 익기 위한 시간일 뿐입니다. 마음의 숱한 길도, 집으로 찾아 들어가는 길도 몸 둘 데로 가기 위한 움직임일 뿐입니다. 가야 할 곳이 중요하지, 길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자꾸 길을 잃어버리다 보니 자주 망각합니다.

나에게 지치지도 않고 찾아오는 마음들은, 그러고 보면 길이 없어도 꼭 찾아옵니다. 이 무더위에도 부엌에서 복작거리며 밥을 차려내는 어머니들의 마음이나 검은 물에 들어간 마음까지 찾아 스며오는 음악과 문장들이 그렇듯이.

길을 이겨내십시오, 사람들이여. 길을 잃어버린 자들이 나에게 속삭여 준 전언입니다. 시간의 길은 비대하고 여름이 갈지자로 길을 뭉개며 오니, 그렇게 걸으십시오. 길을 잃어버린 자들은 여름이 뭉갠 한복판에서 잘 놉니다. 2인조로, 4인조로. 나도 합류합니다. 여러분도 어서 오세요. 잃어버린 길을 찾지 않고 여름을 한바탕 놀아봅니다.



You walk without knowing where you're going, letting yourself drift and giving into thepleasure of being lost.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걷고, 스스로 내버려 두어 표류하고 길을 잃은 즐거움에 몸을 맡긴다.

- Vincent Segal (Cello) -



LesÉgarés 전곡 Youtube

Ballaké Sissoko빌라케 시소코(Kora코라), Vincent Segal뱅상 시갈(Cello첼로) Duo

Vincent Peirani벵상 페이라니(Accordion아코디언), Émile Parisien에밀 파리지엥(Sax색소폰) D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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