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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LifeBGM 17화

LifeBGM | 카잘스씨의 등짝

Pablo Casals - Bach Cello Suit

by Ggockdo


떡볶이 가게에 파블로 카잘스Pablo Cagals라니! 그것도 유서프 카쉬Yousuf Karsh가 찍은 사진이다. 액자 유리에 기름 얼룩이 섬뜩하게 늘러 붙어 있긴 하지만 아크릴이 아닌 진짜 유리와 진짜 나무 액자에 표구한 사진은 종교의 상징물처럼 높은 곳에 달려 있다. 떡볶이와 순대, 튀김 트레이가 늘어선 매대에서 바라보면 딱 좋은 높이다. 처음에는 의심부터 했다. 혹시 음악학원이나 음반가게, 악기 판매점 같은 파블로 카잘스가 어울릴만한 업장이었던 것이 아닐까, 떡볶이 가게로 변하면서 그 흔적을 다 제거하지 않은 것을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기엔 삼 년도 더 넘은 떡볶이 가게가 그깟 액자 하나 바꾸거나 없애지 못할 것도 없고 또, 분식과 파블로 카잘스가 어울리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카잘스씨는 등지고 앉아 있다. 유서프 카쉬는 이 사진을 회고하며 "나는 초상 사진을 숱하게 찍어오며 한 번도 뒷모습을 찍어 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사진을 찍던 날, 나를 등지고 바흐-첼로를 연주하고 있는 카잘스를 볼 때 찍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 그저 빛으로 보였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어떤 관람객은 이 카잘스 사진을 한참 보다가 "저는 지금 음악을 듣고 있어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떡볶이집은 오후 다섯 시가 넘어가면 슬슬 주점으로 탈바꿈한다. 오늘은 여섯 시도 안 된 시각부터 두 테이블에 벌써 소주가 깔려 있다. 아저씨 네 명은 어묵과 순대 안주에 소주를 네 병이나 깠고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 적은 어휘들의 대화를 난사했다.

홀 중앙의 4인석 테이블엔 홀로 앉은 감색 양복의 아저씨가 한 명 앉아 있었다. 다소 양복이 크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지나치게 말랐기 때문일 것이고 얼굴이 너무 헬쓱하고 두 뺨이 거무죽죽하게 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70-80년대 직장인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유행이었던 적이 기억도 나지 않는 감색 양복은 초여름 장마를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워 보였다. 넓적한 카라와 버튼, 테두리가 투박하게 둥글게 처리된 양복은 꼼꼼하게 단추가 다 채워져 있었다. 그는 너무 마른 데다 허무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거의 옛날 장롱에서 꺼낸 쿰쿰한 양복을 허수아비에게 입혀 놓은 것 같았다.


떡볶이 그릇의 떡볶이는 말라 붙어 있었다. 불어날 대로 불어난 흰 떡은 그의 손가락보다 크고 붉고 짠 양념을 잔뜩 먹어 위험해 보였다. 싸구려 순대 몇 점에 손을 댄 듯했지만 역시 말라 붙어있다. 그의 시선은 허공에 놓인 듯했다. 검은 테의 안경알이 시선을 어느 정도 감춰주긴 하지만 말 한마디 없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시선엔 취기도 없었다. 빈 막걸리 병 세 개가 가지런히 수저통 옆에 정리되어 있는 게 하나도 설득되지 않을 정도다. 두 손 모두 가지런히 내려 식탁과 관계없이 덩그러니 앉아 있는 모습은, 어쩐지 처용가를 부르는 넋을 가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왁지지껄한 테이블과 현관문 사이에 있는 티브이를 보는 줄 알았다. 티브이는 과거에 운동선수였던 한 남자의 처절한 도전을 방영하는 중이었고 음소거된 채로 재미없는 장면과 자막 몇 개만 내보내고 있었다.


그는 카잘스씨의 등을 보고 있는 듯했다. 등을 돌린 채 첼로를 연주하고 있는 카잘스씨의 사진과 그의 고개 각도가 딱 맞았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그의 고개 각도가 그저 그쪽으로 꺾여 있을 뿐, 정작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슬퍼본 자들은 모두 둘 데 없는 마음과 둘 데 없는 시선을 배운다. 그는 너무 많이 둘 데 없는 마음을 배우느라 식욕도 잊은 듯했다. 빼빼 마른 몸은 많은 배움과 지식을 담고 서서히 낡아가며 무너진 티를 냈다.

그러나 허름한 동네 떡볶이 집, 이름도 없고 딱히 대단한 메뉴가 있는 것도 아닌 이 가게에 부자연스러운 단 두 개의 시선이 맞대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빙성을 획득했다. 양말에 구두까지 완벽하게 입은 낡은 남자와 카잘스씨의 흑백 사진 속 등짝이 떡볶이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사실만큼 이상한 게 없지 않은가.


네 명의 아저씨들은 카잘스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점점 더 흉측한 대화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욕이 빠지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구는 벌건 얼굴과 소주병 사이에 맛없는 분식 안주거리들과 어묵국물 튄 자국이 낭자했다. 조미료 찌든 군내가 여름 비를 타고 번지고 있어 점점 땀과 술에 흥건해진 네 명의 검붉은 욕설은 괴물의 길을 따라갔다. 괴수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기괴하기 짝이 없는 네 몸덩이는 분명 그의 시선이 머물만한 모양은 아니었다.

전날 팔다 남은 뭉개진 어묵 같았다. 알코올의 붓기가 점점 더 올라오는 그들의 표정은 너무 많은 짠내를 먹은 티가 났다. 그들은 차례로 자리를 비우고 비를 피해 떡볶이집 처마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들어왔다. 서서 먹는 학생들과 가까운 자리였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입에 문 채 큰 소리를 냈다. 과연 그들이 술에 취하지 않아도 예의를 갖출지는 의문이다.


양복남자는 딱 한 번, 떡볶이 가게 문 앞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조용히 전화를 시도하고 들어왔다. 그가 전화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는 그저 허리춤에 한쪽 손을 얹고 한 손으로 핸드폰을 댄 채 등짝으로 서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보다 더 짧은 등짝의 시간이나 비에 살짝 젖은 어깨가 더 헐렁해진 듯 축 쳐져 다시 제자리에 놓인 걸 보면 아무도 전화를 받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다시 허공을 바라보는 듯했다. 아니면 카잘스씨의 등짝을 보고 있거나. 카잘스씨의 등짝은 무게가 있었고 바흐의 선율을 저절로 연상하게 했다. 카잘스의 바흐는 푸에르트리코를 전혀 떠올리지 않게 했다. 이상한 일이다. 그는 스페인 사람이고 푸에르토리코에서 나고 죽었지만 한 번도 스페인을 연상하게 만들지 않았다. 바흐의 무반주곡집이 가진 이미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흐와 스페인은 양복남자와 떡볶이집만큼 어울리지 않았다. 사이에 카잘스씨가 있지 않았다면 둘은 절대 연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Pablo Casals, Yousuf Karsh, 1954



그는 어쩌면 바흐를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떡볶이와 바흐도 어울리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요즘은 뭐든지 다 섞어 내려는 욕심이 드글 드글하고 의미나 진심 같은 건 애초에 사지도, 소유하지도 않는다. 카잘스씨의 바흐는 등짝에서 나왔다. 그 유명한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나 요요마의 연주와 달리 홀로 고군분투하는 외로움에서 나왔다. 고서점에서 어렸던 카잘스씨가 바흐를 발견했을 때, 그는 세상을 등지고서라도 바흐를 오래도록 껴안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홀로 연구하며 25년을 등진 채 연주하던 습관대로, 카잘스의 바흐는 등짝에서 나온다. 오롯이 곡을 연주하게 만든 바흐의 외로움, 카잘스씨가 발견해 주기까지 400여 년을 기다린 외로움, 등짝의 외로움.

양복남자는 어쩌면 바흐의 외로움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카잘스씨가 재현해 주고 있는 바흐의 외로움. 첼로의 등을 가슴에 맞대고 등짝으로 바흐의 악보를 읽는 카잘스씨의 외로움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일순간에 양복남자의 헐렁한 양복 아래, 과연 얼마나 넓은 등짝이 남아 있을지 궁금해졌다.


선풍기가 아무리 돌아가도 습도는 어쩔 수가 없는데, 양복남자는 더워 보이지 않았다. 그는 카잘스씨의 사진처럼 이미 납작한 이미지가 된 것 같았다. 그의 현재가 너무 얇고 슬퍼서 카잘스씨가 아니면 아무도 그를 연주해 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내 몫의 떡볶이를 다 먹었다. 텁텁한 공기는 네 명의 취기에 휘둘려 점점 더 난폭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양복남자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카잘스씨의 등짝을 바라보았다. 막걸리는 다 어디로 갔는지 취기 하나 없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손을 허벅지사이에 가지런히 넣고 있다. 뽕이 든 어깨가 양쪽으로 솟고 허리춤이 말려 들어가 마른 뼈대가 보였다. 흡사, 감색양복을 입은 남자는 첼로로 점점 변해가는 중인 것만 같았다. 천천히 첼로가 되어가는 중인 것 같았다.


떡볶이집의 카잘스씨는 등짝을 내밀고 이를 수 없는 어느 경지에 오른 듯 바흐를 연주하고 있다. 그의 모노 녹음 첼로는 비 오는 소리나 오징어 다리 튀기는 소리 같은 자글자글한 잡음과 드글드글한 숨소리 너머에서 납작하고도 풍성하게 울려 나온다. 여전히 기름얼룩이 묻은 유리액자 속에 있다. 얼룩이 아니라면 다른 세계로 이끌어 주는 마법의 통로나 에셔Escher의 기법이 깃든 그림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떡볶이는 아무런 음악 없이 빨갛게 불어 가고 불어 터진 어묵 같은 단골 술손님들은 똑같이 담배를 피우던 입으로 뻘건 말을 하는데, 홀 중앙 테이블은 비어있다. 누구라도 그 자리에 앉아 카잘스씨의 등짝을 본다면 순대 몇 점을 씹다 천천히 첼로로 굳어가던 한 남자의 심정을 알아주길. 아무런 반주도 없이 외롭게 그러나 온전하게 현을 울리는 등짝이 있던 자리, 오로지 카잘스씨만이 교감해 줄 수 있는 누추한 외로움이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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