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ão Paulo - Believer
내가 말하는 고독은 인간의 비참한 조건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비밀스러운 존엄성, 뿌리 깊이 단절되어 있어 서로 교류할 수 없고 감히 침범할 수도 없는 개별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어렴풋한 인식을 의미한다.
- 장 주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고독은 차가운 감정 같습니다. 뜨거운 사막에서나 한여름에 고독을 느낀다면, 그것은 정말로 대단한 존재의 절실한 외로움일 것입니다. 모두 다 휴가를 떠나버려 문을 닫은 상가를 땀을 흘리며 가로지르며 느끼는 야속함, 또는 어디론가 떠나지 못한 처지를 비관하는 기분과는 다릅니다. 숨구멍을 틀어막으며 몰려오는 습한 열기 속, 누구도 접촉하고 싶지 않아지는 끈적한 피부를 가지고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품는 일은 열사병과도 같은 외로움이라서 좀처럼 달래지지도, 식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뜨거운 외로움입니다.
외로움과 고독은 인간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특정 상태가 아닙니다. 인간이 모두 다 각자 고유한 존재라는 증거입니다. 나는 장 주네가 평생 느껴오던 애끓는 외로움이 자코메티의 조각을 만날 때 켜지는 촛불 같은 뜨거운 외로움의 기록을 좋아합니다. 그는 동질감을 가지고 있는 것들조차 감히 침범할 수 없는 독자적인 외로움을 뿜어내는 순간을 아주 잘 알았으며 모두 자기만의 외로움으로 서서히 타오르고 있는 아틀리에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모델이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사람인 자코메티의 기다랗고 가늘고 단단한 조각에서 힘이 느껴지는 이유도 그것이 오로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고독하기 때문입니다. 외롭다는 것, 인간이라는 예술이자 사람 본연의 일, 우리는 모두 다 인간이기 위해 외롭습니다.
ON João paulo esteves da silva
음악은 악기 고유의 존재와 악기 편성으로 서로를 보듬는 하모니의 이중적인 면을 가장 아름답게 그립니다. 나는 무척 외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여러 악기가 한 가지에 달려 한꺼번에 바람의 손길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듯 하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가끔 이렇게 뜨겁고 낯 뜨겁고, 낮과 밤이 모두 뜨겁고, 내내 헐떡이는 뜨거운 외로움이 찾아오면 장 주네가 자코메티의 아틀리에의 조각상을 바라보듯 한 악기의 독주를 듣습니다.
피아노 독주라 하면, 소나타부터 에튀드까지 클래식이 훨씬 많겠지만 굳이 재즈 피아노 독주를 듣습니다. 클래식 피아니스트는 수학과 IQ와 이성적인 좌뇌를 더 많이 쓰지만 재즈 피아니스트는 대화와 EQ와 창의와 사고의 우뇌를 더 많이 씁니다. 나는 누군가와 말하고 싶은 뇌의 한쪽을 쓰면서 혼자 연주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의 외로움을 더욱 많이 신뢰합니다. 그것이 우리 일반과 더 닮아 있으면서 보다 처절해서 아름답고, 또한 혼자 연주하는 솔로음악이 끊임없이 우뇌활동을 증명하듯 듣는 사람의 존재를 눈치채주기 때문입니다. 독자적인 존재인 동시에 말하고 싶어 하는 존재, 어쩌면 인간 자체가 아닐까요?
재즈 피아노 솔로 연주로 유명한 연주자들이 있습니다. 지오바니 미라바시Giovanni Marabassi나 프레드 허쉬Fred hersch, 키스 자렛Keith Jarret의 명 연주들도 많지만 주앙 파울로를 듣는 것은 그의 피아노 솔로는 아주 뜨겁기 때문입니다. 감성적이거나 차갑거나, 혹은 호소에 가까운 독백인 피아노 솔로와 달리 유달리 체온이 높은 외로움을 가진 연주자이기 때문입니다.
포르투갈 리스본은 에리히 레마르트의 소설 『리스본의 밤』으로 나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 리스본은 뜨거운 사랑의 후술이 여전히 뜨거운 사연을 머금고 있는 도시입니다. 마치 삼키지 못하고 오랫동안 입 안에 머금었던 와인이 갓 뱉어질 때처럼 뜨겁고 침과 섞여 흐느적대는 붉은 외로움이 사방에 남겨진 곳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 리스본 출신의 후앙 파울로는 덕분에 리스본의 밤이 가진, 뜨거운 외로움을 발로 비벼 끄려는 타건을 연상시킵니다.
그의 솔로 연주를 듣고 있으면 장 주네가 말한 촛대에 스스로 켜져 스스로 태워 혼자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흰 양초를 떠올리게 됩니다. 인간의 생명을 촛불이나 하나의 양초로 묘사하는 고전이 많습니다. 우리는 각자 하나의 양초로 뜨겁게 불타는 외로운 순간을 살아냅니다.
차가운 고독과 다른 활활 타는 뜨거운 외로움으로 움직이는 뜨거운 피아노 연주를 꼼짝도 않고 앉아서 듣습니다. 여름이 아니더라도 내 체온은 늘 뜨겁고, 내 양초를 꺾어 부러트리고 싶은 감각이 들끓어도 그것을 혼자 온전히 삼켜 견디려 하는 은밀하게 타는 안쪽이 저기에도 보입니다.
리스본의 밤은 여기보다 더울까요. 더 검을까요. 세르티네 조(브라질의 목가 음악)의 연주자이기도 한 주앙 파울로의 피아노는 멀리서도 뜨거운 김을 내며 외롭게 자기 자신을 증명합니다. 나도 그의 음악과 장 주네와 자코메티와 한 촛대에 올라가 여름보다 뜨거운 외로움을 견뎌내 봅니다. 나는 오로지 하나고 그들도 각자 하나라서, 참으로 갸륵한 하나의 존재들이 서로의 고독을 알아봅니다.
"이것은 촛대다." 이게 그거다. 촛대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돌연한 확언은 화가를 일깨운다. 그 촛대, 종이 위에서 촛대는 아무런 꾸밈없이 벗겨진 모습으로 있게 될 것이다. 대상들에 대한 놀랄 만한 존경심. 각개의 대상은 '홀로' 있을 수 있기에 아름답다. 그 안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 (중략)
대상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혼자다. 그러므로 내가 사로잡혀 있는 필연성에 대항해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이대로의 나일 수밖에 없다면 나는 파괴될 수 없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 그리고 나의 고독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신의 고독을 알아본다."
- 장 주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