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맛은 마음과 감정을 위한 멋 1 - 어린이에게
내 생각에, 단 맛은 복지와 문명의 척도다. 물론 세계 어디든 단 맛이 없는 곳은 없겠지만 문명이 발달되고 복지가 발달될수록 단 맛으로 멋을 부리는 방법과 누리는 방식이 다양해지는 것 같다. 생사를 책임지는 맛을 넘어서 마음과 감정을 돌볼 만한 여유가 생길 때, 건전하고도 화려하게 멋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단 맛만큼 적당한 게 없다. 달달한 맛은, 영양이나 건강보다는 기억과 감각을 기반으로 역사를 쌓아간다. 꼭 먹지 않아도 되지만 선물로 주어지는 축복 같은 맛이다.
외할아버지는 엿공장을 하셨다고 했다. 덕분에 엄마는 단 맛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고 나에게도 단 맛을 잘 음미하고 누리는 법을 제대로 알려주었다. 놀이 공원이나 동물원에 가면 꼭 단 것을 선사했다. 특별한 즐거운 경험엔 꼭 단 맛이 있었다. 그러면 그 경험과 추억은 단 맛으로 남아 계속 뇌리에 남는다. 구름 같은 푸르스름한 색의 솜사탕이나 손바닥만 한 막대 사탕, 설탕이 알알이 그대로 뿌려진 츄러스, 길게 또아리 튼 아이스크림은 학교 앞에서 사 먹는 것과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물론 가격도 조금 특별했다. 같은 제품이 왜 거기에서는 유독 비싼지 모르겠지만 그런 가격차이에도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쩌면 단 맛이 주는 특별한 멋이 어디에 장식되어야 하는지 잘 알았던 것 같다.
솜사탕이나 사탕, 젤리 같은 단 맛도 물론 좋지만, 가장 좋아했던 단 맛은 엿가락이었다. 엿은 사탕만큼 단단하지 않고 부드러워서 '단 맛'이라는 말보다는 '달달한 맛'이라는 표현이 적당했다. 학교 앞에 자주 오던 엿장수는 낡은 리어카에 거대한 생강엿 덩어리를 실어와서 나를 기다렸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을 기다렸겠지만 한 번도 그냥 엿수레를 보낸 적 없는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하게 인사를 해줬다. 내가 정문 앞을 나서면 벌써 아저씨는 덩어리 생강엿을 덮었던 보자기를 열고 대패로 슥슥 엿을 갈아내어 나무젓가락에 여치집 모양으로 꿰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셈하면서 아저씨에게 걸어갔다. 조급한 척을 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생강엿은 대패로 밀어낸 결에 따라 한 번 더 부드러워져서 빨리 먹지 않으면 금세 눌어붙어 다시 덩어리가 되었다. 파이의 생지 결만큼 자잘한 결이 나 있는 엿은 얇게 밀리고 겹쳐져 덩어리 엿과는 다른 맛을 냈다. 엿의 결 사이에 숨을 불어넣어 좀 더 폭신하면서도 부드러운 멋을 낸 그대로 즐기려면 최대한 빨리 입에 넣어야 했다.
외할아버지와 고개를 넘어 시장을 가는 길에도 엿장수가 있었다. 날이 너무 덥거나 추워지면 나오지 않아서 할아버지가 사주는 엿은 간절기라는 신호였고 걷기 좋은 날씨라는 온도계이기도 했다. 엿 공장을 운영하셨던 만큼 전문가인 할아버지가 고른 쌀엿과 후박엿은 어느 것보다도 달았다.
그 맛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늦여름, 피마자 열매가 영글기 시작하고 해바라기 고개가 꺾이기 시작할 즈음,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고갯길을 전부 끈적하게 이겨 마음에 들어오는 단 맛이었다. 아직도 제대로 된 쌀엿이나 후박엿을 늘려 먹으면 그때 봤던 고갯길 언덕 너머의 붉은 석양과 땀이 식어가며 내는 짠맛과 해바라기 씨앗을 몇 알 떼어다 주머니에 넣고 걷던 날이 생각난다. 그냥 설탕과는 다른 후박열매의 쌉싸래한 끝맛과 늘러붙는 단 맛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 길은 겨울에는 풀빵이나 붕어빵이 있었고 산딸기와 오디의 단 맛도 있었고 군밤이나 군고구마, 아이스크림도 있었다. 하지만 엿이 늘러붙지 않을 만한 날에 종이컵으로 손잡이를 만들어 주는 엿가락을 살살 녹여 먹으며 걷던 길의 단 맛은 조금 특별했다. 계절을 타는 단 맛이 아니지만 적당한 온도가 필요하고 매 년마다 돌아오지는 않는 뻔한 단 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 맛과 할아버지는 어린이들에게 적절한 연결고리다. 부모님은 영양과 건강을 위해 단 맛을 꺼려하기도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런 법이 없다. 내가 어렸을 적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단 맛을 먹던 모든 곳의 주인이 할아버지였다. 그 천막, 특히 한 겨울에 해가 지도록 아이들을 놓아주지 않던 녹색 천막은 헨젤과 그레텔의 집만큼 신비한 공간이었다.
할아버지의 연탄은 왕국의 중심이었다. 둥근 연탄 앞에 왕좌처럼 앉은 할아버지는 늘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한겨울 추위는 아무리 천막이 튼튼하고 연탄불이 빨개도 쉽게 가시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연탄 앞에 둥글게 무리 지기 시작하면 아이들의 체온과 연탄은 천막 왕국의 온기를 온통 다 감당하고도 남았다. 할아버지는 연탄불에 둥근 국자를 올리고 설탕을 담아 녹였다. 김이 폴폴 올라와 설탕이 충분히 녹으면 연탄에서 얼른 국자를 분리해 소다를 넣어 대나무 막대로 휘휘 저었다. 달큰하고 폭닥하게 올라오는 설탕빵에 아이들은 넋을 잃었다. 한껏 부푼 것을 스테인리스 쟁반 위에 탁, 쳐서 한 번에 덜어내면 표면만 순식간에 굳어 바삭하고 안에는 따뜻하게 그대로 부풀어 있는 단 맛이 돌았다. 아이들은 서로 싸우지도 않고 저절로 자기네들의 순서를 알았다. 그렇게 집중력 있게, 온순하게 구는 모습을 부모님들이 봤다면 허탈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밥상예절을 모르고 동네 싸움에 능한 어린아이라도 연탄불에서 마법같이 부풀어 오른 따뜻한 단 맛 앞에서는 모두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할아버지는 물이 든 양동이에 국자를 넣었다. 그러면 달궈진 설탕과 국자가 치이익, 소리를 내며 천천히 물속에 가라앉았다. 그 천막에서 가장 권위 있는 권력의 측근들은 물 양동이 앞에 서 있었다. 물이 탁해지면 양동이를 비우고 새 물을 얻어오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다. 나도 양동이 옆에 있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할아버지는 양동이와 국자를 관리하는 측근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지는 않았다. 그 천막에서는 모두가 공평했다. 학년에 높아도 적어도 모두 설탕국자 앞에서는 평등했다. 그러나 가끔 실패한 설탕과자나, 떨어트리는 타이밍을 놓쳐 국자에서 떨어지지 못한 것들은 측근들이 처리해야 하는 즐거운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생각보다 자주 실수를 했고 측근들이 국자에 담긴 부푼 설탕 빵을 대나무 젓가락으로 떠먹으면서 입 안이 온통 단 맛이 절여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할아버지의 연탄은 저녁 8시 즈음에 생명을 다했다. 그때까지 엄마가 부르러 오지 않는 아이들이 천막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설탕과자를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달콤하고 아늑한 천막은 연탄불이 꺼지기 전까지는 기꺼이 머물러도 되는 안식처였다. 자동차 정비소 한편에 쳐진 초록 천막의 주인인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집에 다 갈 때까지 설탕 왕국을 지켜주었다.
그 왕국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갑자기 커버린 것 같다. 중학교가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천막을 잊어버렸다. 『사자, 마녀, 옷장』의 나니아 왕국처럼 어느 순간 가지 못한 곳이 되어 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그 장소로 찾아갔을 때는 이미 자동차 정비소 공터에 건물이 세워져 빈틈이 사라져 있었다.
그때의 단 맛은 어린이들의 복지이고 문명이었다.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렸다. 나는 기성품으로 납작하게 찍혀 단정한 모양으로 케이스에 담겨 나오는 설탕과자들이 싫다. 그 맛은 멋이 하나도 없다. 설탕 과자는 오로지 나니아나 서커스가 있는 천막에서 누려지는 백 원짜리 복지여야 한다.
가끔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손목까지 끈적거리는 손을 닦아주던 외할아버지의 손길과 아이들이 해마다 떠나가는 연탄 천막을 지키고 있던 할아버지의 흰 눈썹을 떠올린다. 그 단 맛이 내 어린 시절에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내 역사에 그토록 달콤한 문명과 복지가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쓰고 울분에 차 입맛을 잃는 어른의 오늘을 비참하지 않게 한다.
- 다음 주 금요일, To be Contin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