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과 멋 | 달아서 다행이야 3

단 맛의 양, 속도와 온도

by Ggockdo


맛과 멋의 스승 중 이탈리아 가정식 요리를 즐겨하는 셰프님이 있다. 점심으로 파스타 한 그릇 먹고 브레이크 타임에 문 닫은 가게에서 한창 수다 떨다가 저녁까지 먹고 가던 날들의 맛과 멋은 식탁을 문화의 장으로 끌어올려준 가르침이기도 했다. 스승은 한창 같이 수다를 떨고 음악을 감상하다가 저녁 영업을 위한 재료를 다듬고 요리 준비를 했다. 나는 주방 앞 높은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앉아 바질과 올리브유, 엔초비를 넣고 갈아 시저샐러드드레싱 소스를 만드는 것이나 차가운 전체 요리를 위한 리조 파스타(쌀알 모양의 작은 파스타)를 삶아내는 것이나, 홍메기살을 바르고 포르치니 버섯을 불려 라비올리 속 재료를 만드는 모습을 한없이 쳐다보았다. 모든 요리 과정이 신비하고 놀라웠지만 가장 신기한 점은, 생각보다 재료의 양을 많이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풍미나 맛은 포르치니 버섯이 백 개가 들어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적은 양으로 그만큼의 풍미를 내는 것이다.

적당한 양. 적절한 맛. 맛과 멋의 스승은 궁금한 게 많은 나의 질문에 많은 철학이 담긴 대답을 해 주셨다. 단 맛을 내는 것은 설탕이나 달기만 한 재료가 아니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단 맛의 양은 늘 비례하는 것이었다. 소금과 설탕과 물과 불과 그 밖의 여러 가지는 늘 내 생각과 달랐다. 아마 전문가이기 때문에 조금의 양으로도 더 한 풍미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점이 부러웠다. 그가 수년간 갈고닦은 '적당한 단 맛의 양'을 언제나 알 수 있을까.

모든 식재료는 각기 단 맛을 가지고 있다. 애호박의 단 맛은 늙은 호박의 단 맛과 다르다. 애호박의 단 맛은 소금간이 들어가면 더 올라오고 늙은 호박의 단 맛은 계피와 크림이 들어가면 더 올라온다. 심지어 쌉싸레한 도라지나 인삼도 단 맛을 가지고 있다. 나는 외할아버지의 흰 도라지 무침을 명절 음식 중 가장 좋아했다. 할아버지는 도라지에 아주 적절한 소금 처치와 아주 조금의 마늘 향신료로 단 맛을 끌어올릴 줄을 알았다. 입에 넣자마자 달지는 않지만 강렬한 쓴 맛 뒤로 올라오는 도라지의 단 맛은 고약할 정도로 끼를 부려서 처음의 쓴 맛 마저 인내하다가 종국에는 즐기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흰 도라지 무침은 엄마의 수삼채나 고들빼기김치의 쓴 맛이 단 맛을 업고 들어오는 멋을 알게 해 준 디딤돌 같은 것이다. 나는 아직도 수많은 명절 음식 가운데 가장 삼삼하고 수수하게 누워 있는 고운 흰 도라지의 자태를 잊지 못한다. 새빨갛고 짜고 달고 굽고 튀겨내고 지진 친가의 식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단아한 도라지의 단 맛.


모든 단 맛들을 섭렵해 간다는 것은 점점 어른이 된다는 미각의 신호이기도 하다. 무의 단 맛과 간장의 단 맛을 깨치는 것, 생선살을 오래 씹으면 나는 어육의 단 맛을 즐기는 것, 설탕이나 꿀, 올리고당이 맛의 초반을 장악한 음식보다 서서히 조화롭게 다른 재료 사이에서 뭉근하게 올라오는 단 맛의 정체를 아는 것.

이탈리안 셰프님은 설탕을 아주 조금 넣었다. 그는 식재료 안에 있는 단 맛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어떤 것은 오래 끓여야만 단 맛이 우러나고 어떤 것은 빠르게 구워야만 단 맛이 우러난다는 '단 맛의 속도'도 잘 알았다. 나는 그런 지식을 알고 있다는 걸 늘 동경했다. '단 맛의 속도'를 아는 사람들은 대체로 인내심이 길었다. 여유가 있었다. 이십 대의 나는 '단 맛의 속도'를 잘 조절하지 못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나 자신과의 관계와 지식과의 관계에서도.


혈기왕성하다는 청춘의 표현은 가끔 혈당을 빠르게 많이 감당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사랑과 우정도, 세상도 더 달고 자극적으로 씹어 삼킨다. 나는 시골 출신으로 도라지의 단 맛도 알고 있으니, 다른 이십 대와 달랐을 거라고 오해했었다. 이제야 돌아보면 수많은 브레이크 등이 깜빡이는 세월의 통로를 선글라스를 끼고 성급히 건넜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십 대와 이십 대의 몇 해를 보낸다. 단 맛의 속도를 조절할 줄 모르고 모든 자극적인 것에 속절없이 무너지던 날은 설탕과자의 부스러기로 남아있다. 지금은 녹아 끈적끈적한 바닥을 남긴 단 맛의 과속 구간들.

더불어 온도에 따라서도 단 맛은 다른 맛을 낸다. 음식에 맛이 베어드는 순간은, 팔팔 끓을 때가 아니라 끓었다 식어 들어가면서 라고 한다. 보글보글 끓을 때 첨가한 것들이 한 김 식어가면서 맛이 드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맛과 멋은 적당한 온도 속에서 제 성격을 갖춘다.

보글보글 끓던 때를 지나, 한 김 식었나 싶은 순간을, 그러므로 사랑해야겠다. 때로는 가장 뜨거울 때가 가장 달다고 생각했다. 식기 시작하면 그건 이제 수명을 다했다고 멋대로 단정하기도 했다. 그때 한창 맛이 들어가던 가장 달콤한 순간을 버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단 맛은 차가워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레몬청을 뜨거운 차로 낼 때는 한 숟가락을 넣지만 차가운 차나 탄산으로 낼 때에는 두 배를 넣는다. 온도가 너무 내려가 있는 마음에는 두 배 만큼의 단 맛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나는 너무 차가워진 마음을 대할 때에는 조금 과하게 달게 사랑해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다. 그런 이들은 우리 주위에 너무 수두룩하다. 냉정해진 마음들, 기력이 쇠해서, 너무 많은 냉대와 냉정을 만나 체온을 잃은, 언 혓바닥 같은 우리들, 당신들, 단 맛을 기다리는 모두들.


어느 날 밤, 갑자기 나는 홍차 시럽을 만들었다. 새벽 두 시에 얼그레이 홍차를 진하게 우리고 그만큼의 설탕을 부어 녹여 잔불에 끓였다. 두 시간 넘게 은근한 불에 천천히 저어가며 시럽을 만들었다. 식지 않은 시럽은 아직 줄줄 흘렀고 적당한 윤기를 내며 김을 뿜었다. 얼음물에 홍차시럽을 넣어 마셔가며 단 맛의 농도와 속도를 조절했다. 두 병 넘게 홍차 시럽을 오밤중에 만들며 잠을 지새운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단 맛의 왕도를 알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시끌거리던 날들을 곱씹으면 제 멋대로 쓰고 달았던 일들이 덜 녹은 덩어리채로 둥둥 떠 있었다. 어떤 것은 너무 농도가 묽어 부패하기도 했다. 그런 날들을 이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심경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홍차 시럽마저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너무 달고 홍차맛은 옅었다. 다음에 만든 것은 너무 묽었다. 그다음의 것은 심지어 쓴 맛이 났다.


단 맛의 양과 농도와 온도는 언제 조절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대신 나는 이탈리안 셰프의 요리를 먹고 외할아버지의 흰 도라지 무침을 회고하면서, 남은 평생 동안 단 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설탕을 넣지 않은 모든 것들의 단 맛을 깨닫고 그것을 곰곰이 쓰다 보면 언젠가, 내 친구에게(*맛 과 멋 | 달아서 다행이야 2 참조) 설탕 같은 문장을 써 줄 수 있지 않을까? 내 안 뜰에 사탕수수가 자라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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