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과 멋 |지극히 개인적이고 공적인 커피 1

커피잔, 재즈

by Ggockdo


커피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너무 많고 커피에 대한 글도 너무 많다. 2004-5년대부터 한국의 로스팅 동호회 활동을 하며 싱글 오리진을 마셔온 구력 정도면 어디가서도 빠지지 않겠다 싶지만, 그래도 커피에 목숨을 건 사람들을 보면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내 인생에 있어 커피만큼 극히 개인적이며 또한 극히 공적인 맛과 멋도 없다. 그래서 '커피'가 아니라 나에 대해 쓰기로 결정한다. 명심해야 하다, 어디까지나 주어는 '나'여야 한다. 모든 맛이 멋이 되려면 그렇듯이, 모든 것은 오로지 내 혀 끝과 손 끝에.


아주 어릴 적에 나는 커피잔 만지기를 좋아했다. 교회의 점심 식사시간이 끝나고 어른들이 커피를 한 잔씩 먹고 나면, 끈덕한 커피얼룩이 잔 밑바닥에 남아 있는 잔을 수거하러 돌아다녔다. 흰 도자기, 길쭉한 머그들은 뜨거웠다 식으면서 오묘한 촉감을 낸다. 갓 씻은 컵의 촉감과 뜨거운 음료가 든 컵과는 사뭇 다른 감촉을 가진다. 아이가 만져도 좋을만한 적당한 온기가 남은 커피잔은 향긋하고 달달한 향기가 나는 매끄러운 표면으로 나를 유혹했다. 양손에 가득 들어차는 컵을 쥐고 있으면 내 손바닥의 체온에도 금세 데워져 잔바닥에 남은 커피 얼룩이 향기를 냈다. 가끔 한 방울 정도 먹을 만큼 남아 있으면 참지 못하고 입에 커피잔의 구연부(잔의 가장자리, 입술이 닿는 곳.)에 입을 대고 고개를 한껏 꺾어 찐득한 한 방울을 먹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이에게 믹스 커피 한 방울은 사탕이나 초콜릿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효과가 빨랐다. 금세 기분이 좋아지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잔을 수거해다가 컵을 쌓았다.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는 커피잔 탑은 어쩌면 가장 일찍 깨우친 심미의 상징이었다. 손잡이 때문에 차곡차곡 쌓이지 못한 컵들은 비정형적으로 아슬아슬하게 겹쳐서 쌓였다. 매끄럽고 미약한 온기가 남은 반질반질한 컵이 위태롭게 겹쳐져 구조를 이루는 모양은 심지어 향긋하고 맛도 났다. 간간히 묻은 흙색 커피 얼룩과 붉은 립스틱 자국이 보이는 것도 예술적인 의도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덜그럭거리며 흔들리는 스윙감도 간간히 손바닥에 느껴졌다. 열심히 양손으로 균형을 맞추려 애쓰다 결국 산산이 무너져 내릴 때의 캄캄한 감각까지도.

추운 날 단골 커피가게에 가면 두꺼운 안캅 Ancap 잔을 따뜻하게 데워 먼저 손에 들려주었다. 언 손이 녹아들어 가면 잔을 잔 받침에 내려놓는다. 그러면 주인은 뜨거운 물을 부어 다시 잔을 데우고 그제야 커피를 내리러 갔다. 나는 울적한 날이나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 때 온기가 도는 흰 커피잔의 매끄러운 촉감을 만지며 시끄러운 속을 가라앉혔다. 이제 곧 진한 커피가 가득 찰 것을 준비하는 희고 매끄럽고 도톰한 잔의 온기는 커피를 마신다는 것, 자체를 의미했다. 책을 읽거나 대화를 시작하거나 혹은 일을 하기 전에 산만한 주변을 정돈하고 깊은 맛을 적당히 담아내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는 과정이었다. 작고 얇은 찻잔과는 다르다. 손가락 두께만큼 도톰하고 적당한 무게를 가진 커피잔은 꼭 일의 무게나 하루의 무게, 감정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이 단단하고 매끄러웠다.

타국에서 자취를 시작하며 살림을 마련할 때에도, 나는 발품을 팔아 잔받침까지 세트로 있는 커피잔을 구했다. 고단하고 외로운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나는 꼭 커피잔을 데우고 온기가 올라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 마음에 커피를 들일 준비를 했다. 또는 하루나 대화나 그 밖에 채워야 하는 것들을 위해.



S백화점은 우리 학교를 무서워했다. 석식 시간이 되면 교복에 체육복 바지를 겹쳐 입은 여고생 무리가 들이닥쳐 백화점 지하 1층 푸드 코너를 종횡무진했다. 횡단보도 두 개만 건너면 지척인 곳에 세워진 S백화점은 여고생 무리가 들이닥치는 시간대의 시식코너를 무척 고심했다고 한다.

나도 그 거친 무리 중 하나로 빨간 체육복 바지를 치마 안에 받쳐 입고 종횡무진할 때, 스타벅스가 지하 1층에 입점했다. 클래식 앙상블 단원으로 활동하던 나는 야간 자율 학습을 생략하고 앙상블 단원 친구들과 함께 백화점 지하를 서성거리다 스타벅스에 처음 들어갔다.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첼로주자 친구는 본인도 잘 모르는 어색한 티를 감추지 못하면서도 제법 능숙하게 커피를 주문했다. 나는 갓 출시된 비싼 메뉴를 주문했다. 밥 한 끼 값에 버금가는 금액이었다.

얼린 우유와 잘게 갈린 얼음이 담긴 긴 유리잔과 투명한 에스프레소 샷 잔이 내 앞으로 서빙되었다. 직원은 칵테일처럼 내 눈앞에서 샷 잔을 퐁당 빠트렸다. 흰 우유 속으로 덜그럭거리며 빠져 섞이는 커피는 서서히 짙게 번져 나가며 내 입맛을 돋구었다. 그러나 사실 맛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길고 투명한 잔이 차갑다는 것이었고 그 안에 뜨거운 에스프레소가 퍼져가며 천천히 물들어가는 색채다. 옆에 첼로주자가 있어서였을까, 나는 그 커피가 첼로의 맛이 난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켜던 첼로는 유난히 색이 짙었고 내가 자주 현을 갈아주어 가공된 나무의 이상한 온도과 촉감을 잘 알고 있었다. 첼로는 차갑다가도 켜기 위해서 껴안으면 금방 따뜻해지는, 커피잔과도 같은 오묘한 온기가 있었다.

그때, 첼로가 아닌 처음 듣는 음악이 귓전을 때렸다. "음악 너무 좋다." "너 몰라? 빌 에반스잖아."

빌 에반스는 그때 처음 마셨다. 첼로주자의 거들먹거리는 꼴사나운 어깻짓이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 빌 에반스 트리오의 현 음색이 콘트라베이스인 줄도 몰랐던 어설픈 내 귀에 첼로 같은 온도와 커피 같은 미각으로 빌 에반스가 왔다. 나는 언젠가 빌 에반스,라는 커피 블렌딩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첼로의 현을 갈며 만졌던 나무 몸통처럼 울리는 피아노의 타건 같은 촉감을 가진, 희고 찬 마음과 도톰한 커피 잔에 짙고 따뜻한 커피가 채워지는 감각과 같은. 그러나 아직도 나는 모른다. 그때 들었던 빌 에반스 트리오의 곡이 무슨 제목이었는지. 사실 무슨 곡이든, 아무 상관없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맛이므로.


빌 에반스보다 커피에 더 어울린다고 느끼는 재즈는 키쓰 자렛이다.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하는 이 조합은 부산의 보수동 헌책방 골목 어귀 모서리에 애매한 모양으로 나 있던 카페 덕분이다. 나는 문예창작과 과제를 위해서 부산으로 내려갔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 등장하는 시집의 평론을 쓰기 위해서였다. 박목월의 초기 시집이 그 골목 어딘가의 헌책방에 있다는 소문이 있기도 했었다. 나는 박목월과 박두진의 시집 중 한 권으로 논물을 쓸 예정이었다. 세 권의 시집을 찾기 위해서 부산은 기꺼이 갈 만한 곳이었다.

엄마가 동행했다. 단지 커피 때문이었다. 고향 강릉과 버금가게 부산도 항구도시로서 좋은 원두가 많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횡횡했기 때문이었다. 유명한 로스팅 카페 몇 군데의 목록을 들고 내려간 부산은 비가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너무하다 싶게 내렸다. 헌책방 골목은 축축하고 음산했다. 먹구름 때문에 일찍 어둠이 드리운 골목마다 책이 비에 젖어서 내는 쿰쿰한 냄새가 났다. 엄마와 나는 우산이 지칠 때까지 걸었다. 비는 무겁고 가차 없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흐릿한 불빛과 커피향기가 풍겨 나왔다. 골목 모퉁이 모서리에 삼각형으로 나 있는 애매한 카페는 간판도 없었다. 희미하게 음악 소리가 들렸다. 빗소리 때문에 어떤 음악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단지 드럼 스내어가 찰랑거리는 소리와 콘트라베이스 현 뜯는 소리가 간간이 재즈라는 것만 알려주었다. 우리는 서로 동의를 위한 최소한의 대화도 나누지 않고 동시에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차피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빗소리가 심했다. 비좁은 내부는 테이블 둘 공간도 없었다. 창가 자리에 길게 난 바 테이블과 높고 긴 의자가 여섯 개 있었다. 바 스테이션 옆에 난 조그마한 공간 아래는 의자대신 원두를 들여올 때 쓰는 큰 원통이 놓여 있었다. 빗소리에 파묻혀 있던 커피와 재즈 음악이 삼각형 속에서 끊임없이 회 돌고 있었다. 나는 아득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키쓰 자렛이다. 키쓰 자렛 트리오였다. 나는 예멘 모카 마타리를, 엄마는 브라질 세하도를 주문하고 비가 원한처럼 퍼부어 내리는 창가에 앉아 멍하니 음악을 들었다. 비에 얻어맞은 감각은 좀처럼 현실로 복귀하지 못했다. 축축하고 시리고 눅눅한 귀청이 꼭 물속에 있는 것처럼 멀었다. 노란 조명 몇 개가 간신히 빛을 밝히는 그곳은, 오로지 키쓰 자렛만 나왔다. 주인의 얼굴이나 커피맛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위치도 정확히 기억할 수 없다. 모든 감각이 상실되는 폭우 속에서 키쓰 자렛과 커피 냄새는 숲 속의 은신처로 마련된 오두막 같은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원두를 담는 원통 보관함에 들어앉은 것 같은 훈훈한 온기를 느꼈다. 차마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아득한 느낌은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그곳을, 키쓰 자렛을 들을 때마다, 보수동이라는 동네 이름을 들을 때마다 물 먹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아득한 감각이 몸에서 스며 나온다. 가끔은 그 경험이 진짜 겪었던 것인지, 아니면 꿈을 꾸거나 내가 상상해 낸 경험인지도 헛갈린다. 이것도 역시 아무 상관없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커피를 마셨던 순간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키쓰 자렛이라는 이름의 향수를 만들고 싶다. 비와 헌책의 냄새와 커피냄새, 낡은 나무 테이블과 노란 전등 불빛의 냄새가 뒤섞인. 강배전으로 볶은 예멘 모카 마타리에 대해서 일기장에 적은 메모가 있다. "키쓰 자렛 트리오, 삼각형 카페, 세 개의 꼭짓점, 비와 커피와 키쓰자렛, 세 권의 시집 모두 분실. 부산에서."


- 다음 주 금요일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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