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 캔센 카페 비테. Ein kännchen kaffee Bitte
아인 캔센 카페 비테. Ein kännchen kaffee Bitte. 독일문화원에서 독일어를 배울 때부터, 꼭 써보고 싶은 말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이 말이었다. 아인 켄센 카페 비테. 몇 번이나 선생님에게 발음을 부탁해서 혀에 착 붙였다. 켄센Ein Kännchen은 작은 주전자를 뜻했다. 커피 한 잔 주세요Ein Tasse Kaffee, Bitte. 와 다르게 두 잔 반 정도의 분량이 들어있는 작은 주전자 단위의 커피 메뉴. 늘 한 잔으로는 부족한 나에게 아인 켄센 카페의 단위는 눈이 번뜩 뜨이는 정보였다. 독일에 가면 바로 카페에 가서 멋지게 주문해야지. 아인 켄센 카페 비테. 그리고 느긋하게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책을 읽다가 계산을 하면서 슈팀 조,Stimm so! (거스름돈은 괜찮습니다.)라는 말로 거스름돈을 팁으로 줘야지.
그러나 나는 독일에서 지내는 동안 한 번도 이 말을 하지 못했다. 주전자 단위의 커피를 파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고 조금 좋은 카페는 크게 마음먹어야만 갈 수 있는 타국인의 신세였기 때문이다. 나는 대신 한인교회 청년들과 맥카페나 베이커리에서 파는 오십 센트짜리 싸구려 커피를 전전했다. 그것들은 잔Tasse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컵Becher 단위로 마셨다. Ein Tasse잔은 매끄럽고 작고 귀해 보이는 작은 잔이었고 컵Beche는 머그처럼 좀 더 편안하지만 격식이 덜 차려진 싼 커피의 그릇이었다. 대체로 우리 동네는 Ein Becher Kaffee라고 하면 테이트아웃잔을 의미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는 진득하게 커피만으로 위해 만들어진 여유 있는 공간에서 맛과 멋을 챙긴 커피를 마실 여유가 없었다. 나는 늘 오래된 라바짜Lavazza 원두를 쓰는 맥카페나 여름이면 두 달씩 문을 닫는 세가프레도Segafredo의 아인 베셔 카페를 마셨다.
그래도 세가프레도는 비교적 저렴하고 집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두어 번 친구와 가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나는 세가프레도의 네모난 에스프레소잔이 좋았다. 작고 까맣게 반질거리는 잔에 갈색 설탕을 까서 넣어주던 이탈리아 출신 가르송은 가끔 나에게 작은 아망뜨 쿠키를 몰래 주었다. 그 때문에 나는 세가프레도와 정이 들었다. 설탕이 무척 싸구려였음에도 불구하고.
잠깐 말 나온김에 말하자면, 곁들임 디저트를 꼭 주던 카페들이 있었다. 로컬 베커라이Bäckerei의 터키 혼혈 아줌마는 아침빵과 함께 카푸치노를 시키면 성냥갑 크기의 버터케이크를 찻숟가락에 얹어 주었다. 은퇴한 노부부는 늘 그 베커라이에서 아침을 먹고 성냥갑만 한 버터케이크를 최대한 아껴두었다. 지역 신문을 다 읽고 낱말퍼즐까지 다 풀고 나면 다 식은 카푸치노 한 모금과 버터케이크를 먹었다.
나는 옆 테이블에 앉아서 잠이 덜 깬 얼굴로 슈바르츠 카페Schwarz Kaffee(블랙커피)를 먹었다. 늘 지친 얼굴이었기 때문인지, 타국인이 지역 베커라이에서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게 기특했는지, 아줌마는 가끔 몰래 버터케이크를 찻잔에 올려두었다. 노부부가 볼 수 없는 쪽, 손잡이 바로 아래에. 그러면 손잡이는 버터가 묻어 미끌거리고 커피잔을 쥔 손가락에 꼭 버터 냄새가 남았다. 나는 그래도 재빨리 노부부가 눈치채기 전에 버터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35센트가 더 비싼 달걀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내 나름으로는 고마운 마음으로 조금 더 비싼 샌드위치를 시킨 것이다. 아니면, 그냥 내가 받은 온정 때문에 잠깐 마음이 여유를 느꼈기 때문이지도 모른다.
아침 카페는 늘 아침을 먹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작은 빵Bröchen 이 담긴 빵 바구니, 삶은 달걀, 세트로 파는 잼과 버터, 치즈 몇 가지는 동네 흔한 빵집이라면 다 있는 메뉴다. Petit Pabilion작은 나비 카페와 Golden Regenbogen 금빛 무지개카페는 내가 특별히 좋아하고 선망하던 아침 카페였다. 낭독회와 작가 강연, 작은 도서 부스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역의 예술지원금을 받아 운영하는 카페였다. 두 곳 모두 가격이 아주 비싸지 않았고 좋은 품질의 아침 세트 메뉴를 팔았다.
나는 아주 가끔씩, 잼 두 종류(살구잼과 산딸기잼), 치즈 두 종류(에담 치즈와 스위스치즈), 버터 한 개와 폴콘 브로트Vollkornbrot 세 조각이 나오는 아침 메뉴를 먹었다. 나는 작고 왜소한 자리에 혼자 앉아 사방을 힐끔거리며 먹었다. 낭독회는 조찬과 함께 준비되는 경우가 많았고 한 무리의 준비 팀원들이 부지런히 홀 한가운데에 자리를 넓혀 다양한 빵과 잼과 버터를 세팅하는 것을 구경했다. 나같이 조용히 아침메뉴를 먹는 몇몇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는 커피를 시킬 수 없었다. 커피 값이 비쌌기 때문이다. 대신 가장 싼 페퍼민츠티를 시켰다. 티는 아인 켄센에 나오고 아침을 먹는 동안 목을 충분히 축일 수 있었다. 그것은 아인 켄센 테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아인 페파민츠테 라고 했다.
백야 시즌이 되면 오후 세시에 문을 닫던 가게들도 밤 아홉 시까지 문을 열었다. 라인강을 따라서 사람들이 작은 화로를 들고 나와 소시지를 굽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샴페인을 마셨다. 마지막 마이스크림 장사도 그 무렵이었다. 백야가 끝나면 날이 추워져서 아이스크림 가게들은 문을 닫고 긴 휴가를 떠난다. 쌀쌀해지면 백야의 아이스크림은 따뜻한 커피와 같이 주문된다. 한인 청년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한 손에는 아인베셔 커피를 들고 라인강을 활보했다. 우리도 이곳에서 정당하게 산책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우리도 나름대로 행복한 백야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행진을 하기 위해서. 그 커피는 기계로 내려서 값싸게 파는 밍밍한 드립커피였다. 금방 식어버리고 향기도 거의 사라진 검은 물.
그래도 우리는 아이스크림으로 단 맛에 절여진 혀를 검은 물에 헹구며 백야가 갑작스럽게 검어지는 것을 즐겨 봤다. 저마다 여유롭게 생활하는 국적자들을 힐끔거리면서, 그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어로 속닥거리면서. '우리도 나중에 꼭 여기서 직장을 갖고 돈을 벌어서 저들처럼 여유를 즐기며 살자.'
우리 중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 아, 딱 한 사람이 있다. 한인교회 목사의 아들.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우리와 어울리며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하던, 그 대가로 마지막까지 모든 무리가 독일을 떠나는 것을 수도 없이 목격하고 배웅한 남자. 나는 가끔 그의 어설픈 한국어와 어색한 독일생활 가운데서 늘 우리에게 맥카페에 가자고 권유하던 쓸쓸한 눈빛을 떠올린다. 남는 자는 먹다 버린 차가운 아인베셔커피처럼 쓰고 짙다.
아직도 나는 내가 즐겁게 생활하고 좋아했던 장소들을 여행한다. 늘 같은 곳이다. 놀랍게도 대부분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9할의 가게들과 주인도 그대로 천천히 늙어간다. 저속노화는 그런 동네에서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빠르게 변하는 국가보다 천천히 늙어가는 국가는 거기서, 여전히, 늘, 같은 메뉴를 파는 가게 덕분이다. 그 곳들은 익숙하고 천천히 늙어갔다.
우습게도, 나는 아인 켄센 카페, 비테를 네덜란드에서 드디어 뱉을 수 있었다. 렘브란트의 도시는 작고 오래된 역사驛舍 와 신축 역사驛舍 사이에 거대한 자전거 주차장이 있었다. 나는 오래된 역사에 내려 아주 조그마한 사무실에 큰 덩치의 네덜란드 역무원이 끼어 있는 곳을 찾아갔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나는 영어 대신 독일어로 길을 물었다. 그는 반갑게 웃으면서 오, 너 독일어 하는구나. 라면서 독일어로 길을 알려 주었다. 나는 조금 먼 곳에 있는, 도시와 도시 사이에 끼인 호텔을 예약했다. 값이 쌌고 1층에 정원이 딸린 카페가 있는 곳이었다. 무더위와 덜덜 거리는 오래된 여행가방을 끌고 한 시간을 넘게 걸었다. 호텔은 목가적인 외관을 가지고 도로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아스팔트 도로가 너무 정갈하게 재단되어 있어서 목가적인 호텔들이 코너마다 박혀 있는 그 거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호프가르텐Hofgarten이라 붙은 1층 로비를 지나서 뒤뜰로 연결되는 곳마다 빨간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벽에 반이 파묻힌 형태의 조명이 빨간 페인트 밖으로 불뚝 튀어나와 빛을 밝혔다. 나는 그 빛이 빨간색이어서 빨간 벽이라고 기억하는지, 벽이 빨개서 빨간빛이라고 기억하는지 아직도 구분하지 못한다.
나는 1인실을 배정받았다. 오래된 숙소만 찾아다니는 내 버릇은 늘 욕실에서 가장 크게 티가 났다. 깔끔하지만 오래된 변기는 물 내려가는 게 느렸고 샤워실은 옷장 같은 문이 달려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빗살로 이뤄진 문 틈새로 증기가 다 새어나가 방안에 뿌옇게 흐렸다.
저녁 무렵의 로비는 한산했다. 이미 지고만 하늘은 내 샤워가 뿜은 수증기 때문에 비누냄새를 풍겼다. 카페 메뉴는 오래된 나무 표지에 낡을 대로 낡은 종이 묶음이었다. 조금 기대했다. 이렇게 오래된 곳이라면, 어쩌면 아인 켄센 카페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곳은 네덜란드다. 네덜란드 말로 아인 켄센 카페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말은 진짜로 거기에 있었다. 아주 낡고 많이 번진 말로.
아인 켄센 카페, 비테. 다스 바스? 다스 바스. 당크.
짧은 머리에 생글생글 웃는 여자는 내 주문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가고 진심인지 가짜인지 모를 미소를 주고 갔다. 그리고 내 주문은 은주전자에 담겨 나왔다. 작은 세 개의 발이 달린 주전자였다. 주둥이가 기린같이 길고 좁은 입구가 있어서 온도가 빨리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따뜻하게 데운 희고 앙증맞은 잔이 함께 했다. 잔은 오래된 발퀴레Walküre(독일의 유명 커피잔 브랜드) 였다. 모든 것이 잘 낡아있었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나도 느긋해도 될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빨간 빛(또는 벽) 벽에 반이 잠긴 전등갓, 어두운 하늘이 보이는 작은 뒤뜰 통창, 앙증맞은 정원용 조명이 하나 둘 켜지는 것보다 좋았던 것은, 내가 드디어 그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커피 맛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순전히 그 말에 담긴 멋 때문이었다.
아인 켄센 카페, 비테. 이 말은 조금 오래 머물 거라는 암시와도 같다. 나는 다이어리를 꺼내 일기를 쓰고 엽서를 다섯 장 쓰고 관광지도를 읽었다. 아무리 좋은 주전자라고 해도 커피는 식을 수밖에 없었다. 차가워진 은주전자는 더 매끄럽고 빛났다. 나는 암시한 대로 두 시간 가까이 앉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인 타세가 아니라 아인 켄센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몇몇 투숙객이 커피 또는 차를 마시고 올라갔고, 내려왔고, 밖으로 나갔고 들어왔다. 데스크 직원이 야간 직원으로 바뀌었다. 로비와 뒤뜰에 점점 비누향이 내려왔다. 위층 투숙객들이 뿜어내는 샤워 증기가 뜰에 무겁게 가라앉고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천천히 지켜봤다. 나에겐 아인 켄센 카페가 있었기 때문에.
- 다음 주 금요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