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과 멋 | 모두의 장소, 그러나 사적인 그곳들

그 장소는 내 것이다.

by Ggockdo



유오디아Εὐοδία, 그곳은 나에게 커피의 고향이다. 지금은 사라진, 영영 사라진. 유오디아는 외진 건물 4층에 있었다. 지하철이 지나가는 뒷길목에 자리해서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차창으로 보이는 흰 건물이었다. 내가 어떻게 그곳을 찾아갔더라? 외떨어진 장소까지 나를 이끈 것은 달콤한 향기였다. 이름 그대로, 커피 볶는 달콤한 냄새가 역사 근처부터 나를 이끌었다. 나는 개처럼 코를 킁킁대며 걸었다. 제법 쌀쌀해지기 시작한 9월 말이었다. 그 냄새, 그 향기는 달콤하고 고소하다기보다 따뜻했다. 따뜻한 향기였다.

세계문학강독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모옌의『붉은 수수밭』을 세 번 읽었다. 어지러웠다. 수수밭에서 산 채로 피부 껍질을 벗겨내고 미치광이처럼 웃던 장면 때문에 딸기우유를 먹다 뱉었다. 나는 온기가 필요했다. 홍주紅酒의 기운을 누를 수 있을만한 것이 필요했다.

유오디아는 눈에 띄지 않을 작정을 한 곳 같았다. 간판은 불이 없는 목조로, 나무판자에 나무로 글씨를 조각해 달았다. 판자와 글자의 나무 색이 구분되지 않아서 멀리서 보면 한 덩어리처럼 보였다. 창문의 불빛도 어두웠다. 주광색을 쓰지 않은 실내는 밖에서 안쪽을 가늠하기 어려운 빛을 가졌다. 순전히, 나는 내 코만 믿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그 곳에 걸어 올라갔다.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차가웠지만 따듯한 냄새가 계속 났다. 때로는 지성과 이성적 판단보다 감각이 더 옳은 선택을 한다. 유오디아는 나의 감각이 옳았다는 증명이었다.


야자숯이 타닥타닥 타는 소리, 커피 콩이 굴러다니며 들볶이는 소리, 그 소리의 냄새는 고소하고 약간은 탄 내가 났고 카카오와 비슷한 묵직한 달콤함과 그리고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어깨까지 오는 긴 머리를 머리띠로 넘긴 까무잡잡한 남자가 선풍기 앞에서 볶은 원두를 식히고 있었다. 채반 아래로 얇게 구워진 체프(겨)가 노랗게 흩날렸다.

손바닥만 한 메모지에 매직으로 쓴 메뉴판 가장 처음에 있는 커피를 주문했다. 탄자니아 AA였다. 남자는 제법 사나운 눈매로 진한 커피를 내려 주었다. 암흑같이 검고 석유처럼 번들거리며 미끄러지는 커피 한 잔이 내 앞에 왔다. 나는 커피의 향이라기보다 온기의 향기, 그리고 숯의 향기를 느끼며 아주 느리게 마셨다. 창문 너머로 거뭇한 저녁을 가로지르는 전철이 보였다. 내가 타야 할 전철이었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내가 타야 하는 전철이 하염없이 가는 것을 세지도 않았다. 커피는 천천히 식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2005년대, 멸치통, 이따로 강배전 로스팅은 커피를 기름지게 했고 기름진 커피는 천천히 식었다. 나는 천천히 식는 커피가 충격으로 지친 내 속을 가라앉히는 것을 만끽했다. 그것이 내 첫 번째 싱글 드립커피였다.


그곳은 사라졌다. 그곳이 사라질 때, 머리가 긴 남자와 그 남자의 조카인 긴 머리의 여자는 나에게 멜리타 드리퍼를 주었다. 내가 평소에 가장 좋아했던 도구였다. 사용감이 잔뜩 있어서 나는 더 좋았다. 나는 아직도 가끔 그 멜리타 드리퍼로 탄자니아를 내려 마신다. 따뜻한 냄새가 필요할 때마다 적막하고 황량한 작품을 읽으면 더없이 차가워지던 속을 달래주던 유오디아를 마신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가지 말까 고민했다. 하지만 고집스러운 데가 있던 나는 내가 계획한 일이 틀어지는 게 싫다. 우격다짐으로 우산을 펴고 걸었다. 비가 너무 거세서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았다. 비에 쫄딱 젖으면서 찾아간 곳은 종각역 근처에 있는 커피친구였다. 후지로열 로스터기를 쓰는 곳이고 볶을 때마다 기계를 다 분해해서 청소해서 엄청 깨끗하고 깔끔하대, 라는 소문을 들었던 것이다. 흠뻑 젖은 안경에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이 들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카페는 만석이었다. 드립 스테이션 바로 앞에 바 테이블 자리 한 자리를 제외하고는. 나는 젖은 옷 때문에 머뭇거렸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괜찮다고 앉으라고 했다. 수건도 주어졌다. 나는 그날 무슨 커피를 주문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는 것은 드립 스테이션 안쪽에서 바글바글 끓고 있던 동주전자와 서비스로 내어 준 시원한 더치커피였다. 케냐로 내린 더치커피는 새까맣고 시원했다. 꼭 취하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는 내 말에 빙긋 웃었다.


더치커피라면 내 친구도 곧잘 만들었다. 친구라고 해야 할까? 우리는 같은 대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고 어떤 접점도 없다. 그는 홍대 골목, 외국인 게스트 하우스 앞에 캠핑용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하고 주말마다 커피를 내려 파는 학생이었다. 중국어와 무역을 전공한다고 했다. 그와 그의 친구는 비가 오지 않은 주말에만 좌판을 깔아 놓고 직접 집에서 내린 더치와 직접 볶은 원두를 가지고 나와 커피를 내려 팔았다. 브루스타, 아이스박스, 일회용 커피잔이 살림의 전부였다. 나와 내 부모님은 벼룩시장같이 열리는 그 어설픈 커피 노점상을 좋아했다. 커피는 한 잔에 천오백 원, 이천 원이었다. 나는 근처의 빵집에서 빵을 사서 길거리에서 그가 내려주는 커피와 함께 먹었다. 길다방,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길다방이 영업을 종료하고 나서, 그는 더치를 동그란 병에 담아 알음알음 팔았다. 일명 고블린 커피는 폭탄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단골이었다. 한참 후에 그는 광명의 골목에 작은 카페를 냈다. 아들의 이름을 딴,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는 카페였다. 나는 그 작은 카페를 너무나 좋아했다. 너무나...

그의 커피는 그의 인생과 그의 가족사와 얽혀 있고 나도 가끔 그 얽힌 가지에 가끔씩 끼어 있다. 그는 지금 조금 떨어진 도시에서 새로운 카페를 운영한다. 내가 폐차 하지만 않았다면 비가 오지 않는 주말에 가끔 갈 수 있을 텐데.


커피는 나에게 시간을 가르치치 못한다. 잠을 앗아간다는 커피의 난폭함이 나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마신다. 우리 집에서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 골목안쪽으로 들어가면 길 가운에 섬처럼 있는 주택이 있었다. 삼거리를 만드는 그 집의 위치 때문에 골목은 삼지창으로 갈라진다. 그때 나는 17세기의 책들을 돌보느라 온종일 추웠다. 책들을 위한 방은 늘 싸늘했다. 그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내가 인내해야 했다. 나는 나의 인내에 질려 한 밤 중에 난데없이 산책을 했다.

산책로에 그 삼거리를 껴 넣은 것은 가끔, 운이 좋으면 창고가 열리고 거기서 맛있는 커피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커피 창고이자 로스터 회사 사장의 은신처였다. 그는 가끔 한 밤중에 그곳에 들러 옅은 불을 켜고 연구를 하거나 생두를 정리했다. 내 산책 타이밍과 그의 연구타이밍이 맞으면 나는 열한 시나 자정에도 진하고 질 좋은 커피를 얻어마실 수 있었다. 창고 앞에 임시로 놓아둔 캠핑용 의자나 그냥 문턱에 앉아서 마시는 한 밤의 커피는 묵혀둔 내 인내의 찌꺼기를 녹였다. 그때, 만약 이따금씩 자정 커피가 없었다면 나는 17세기 책을 갈기갈기 찢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곳은 지금 멋진 카페가 되었다. 아프리카를 왕래하는 사장님 때문에 나는 케냐시편을 쓴 내 스승의 시를 그곳에서 읽는다. 다락같은 곳에 드러누워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면 체기가 있던 마음속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나는 그곳에 이제 커피를 마시러 가지 않고 누우러 간다. 아프리카 화가의 그림이 걸려 있고 늘 원두가 찰랑이며 볶이는 소리가 들리는, 드러누워도 되는 내 은신처.


올해, 나는 후암동에서 사랑하던 두 곳의 카페를 잃었다. 사실 오래 알았던 곳들은 아니다. 짧고 굵게 나를 품었던 곳이다. 그곳들은 남산의 산장이기도 했고 타국이기도 했다. 나는 고재를 가지고 있던 그곳의 정서를 매우 사랑했다. 이탈리아식 커피를 내려 담은 안캅 잔을 무척 좋아했다. 그곳이 차례로 문을 닫을 때, 나는 이별을 당한 듯이 쓸쓸히 거리를 헤매었다.


좋아하던 카페를 잃는 것은 이상한 종류의 이별이다. 실향이나 연인과의 이별과도 다르다. 그것은 장소와 정서와 향기와 은신처에 대한 것이다. 나는 내가 즐겨 앉던 모든 자리를 기억한다. 상수역 근처에 있던 18g, 그중에서도 특히 예멘 모카 마타리를 잘 내려 주던 솜씨 좋은 바리스타가 있던 카페에서는 오른쪽 창가 첫 번째 테이블을 좋아했다. 합정동의 I do는 거울이 가로로 벽에 비스듬하게 붇은 자리를 좋아했다.

산딸기 케이크가 맛있었던 연두색 반지하 커피숍은 분홍색 쿠션이 있던 가운데 자리를 좋아했다. 아르크 커피는 햇빛이 비치면 유리창에 붙은 글자가 사선으로 멋진 그림자를 내던 창가 왼쪽 자리를 좋아했다. 카페 담은 가장 안쪽에서 두 번째 자리를 좋아했다. 카페 코는 빨간색 밑동 나무 의지가 있는 흑백 사진 아래의 자리를 좋아했다. 수도 없이 드나든 히브앤셋에서는 유리벽 앞의 2인 석을 좋아했다. 가족과 가면 일렬로 놓인 소파 자리에 앉았다. 폴의 카페는 큰 테이블의 모서리 자리에 자주 앉았다. 서울역 근처에 있던 투 카페의 1층에서 윤희 씨와 나는 독일어 수업을 째고 잠을 잤다. 그 날의 소파는 주황색 카우치였고 창가여서 아마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우리를 봤을 것이다. 내가 처음 당근케이크를 먹었던 그 카페의 테이블은 대리석이었다. 나는 그 차가운 대리석 테이블과 은으로 된 티스푼이 있던 바 테이블을 기억한다. 다스베이더를 그려 넣은 프린팅 샵 안쪽의 작은 카페는 널빤지로 만든 자리를 좋아했다. 선인장 카페는 바깥에 딱 하나 있는 야외 자리를 좋아했다. 아주 커다란 멕시코 모자를 쓴 선인장 화분 바로 옆 자리였다.


그 장소들은 모두의 것이지만 또한 나만의 자리이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사랑했던 것은 커피였을까, 그 장소였을까. 카페는 때로는 커피지만 때로는 장소로 남는다. 어제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유오디아가 있던 곳이 스쳤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내가 사진을 찍었던 자리의 식탁보를 떠올렸다. 온기를 조금 더 보태주던 낡은 식탁보. 비슷한 식탁보를 가진 카페는 얼마든지 있다.

카페가 사라졌든, 살아남아있든 그 장소들은 내 것이다. 모두를 위해 열려 있고 아무나 앉을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분명히, 분명, 내 것이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21화맛 과 멋 | 지극히 개인적이고 공적인 커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