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과 멋 | 선물로 오고 가는 음식들

음식 선물

by Ggoc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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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으로, 쿠폰으로 음식 교환권을 주고받는다. 주로 만원 전후의 카페나 패스트푸드 음식 교환권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받아도 막상 교환해서 먹을 때, 이 음식이 누군가가 나에게 준 것이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야속하다. 음식을 준다는 것, 음식을 받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쿠폰화 되어 바코드로 변환되어 교환해 먹는 커피도 처음엔 일일이 사진을 찍어 고맙다고 보냈다. 지금은 준 이도, 받은 이도 너무 흔해져 버린, 감응 없는 음식의 교환을 간과하며 산다. 정말로, 야속하다.

명절 즈음이 되면 음식이 오고 간다. 한국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 가서도 축제와 명절은 음식을 주고받는 장이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부활절 같은 종교 행사에도 늘 음식이 빠지지 않는다. 선물이 된 음식은 꼭 당신의 끼니를 위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생명과 삶과 입이 행복하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나는 1인 가구의 고됨을 늘 염두에 둔다. 주변에 혼자 사는 당찬 친구들의 끼니와 냉장고 사정에 조금 관여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산다. 이 버릇은 아마 엄마에게서 보고 배웠을 것이다. 엄마는 오랫동안 매주 주일마다 밥과 반찬을 만들었다. 엄마의 밥을 얻어먹은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 지금 주일마다 왕래하는 이들도 엄마의 밥과 반찬을 자식인 나만큼 먹고 자랐다. 그들은 잠깐 감사하고 금방 잊는다. 음식이 너무 소화가 잘 되는 탓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종종 그들의 순탄한 소화기관이 얄밉다. 내 친구의 어머니는 매주 잔치국수를 끓였다고 한다. 주일마다 내어지는 한 그릇의 국수를, 내 친구는 절대 먹지 않는다.

나도 질릴 만큼 질렸다. 지금은 주일에 밥을 먹지 않는다. 먹고 싶지가 않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간식만 조금 주워 먹다 집에 와서 내 손으로 밥을 차려 먹는다. 일요일의 음식은, 신이 내려준 적이 한 번도 없다. 늘 엄마의 손에서 내려졌다. 나는 늘 그 점을 신에게 따진다. 그렇다면 엄마의 목구멍은 당신이 채워주어야 할 게 아니냐고 묻는다. 나는 그럼에도 신을 믿기 때문에 언젠가 엄마의 손과 입에 축복 같은 음식이 주어지리라 기대하며 산다.


그렇게 싫다고 했으면서, 나도 내 친구들에게 음식을 베풀며 산다. 요리는 내가 할 수 있는 값이 적게 들면서도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일이고 내 마음을 담기에 적절한 시간과 열기와 조리과정을 거친다. 나는 양파와 마늘과 토마토를 다지면서 친구를 생각하고 육수를 우려내면서 그를 위한 마음을 진하게 우려낸다.

가장 최근에 준 음식은 미네스트로네 수프였다. 야채와 토마토로 끓이는 겸손한 음식인 미스트로네를 끓이면서, 나는 최대한 예쁘고 잘게 감자와 당근과 셀러리를 썰고 입에 거치는 것이 없게 토마토를 곱게 갈아 내렸다. 내가 먹을 음식보다 배의 시간이 들었다. 그래도 힘든 줄을 몰랐다. 그것은 끼니가 아니라 선물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선물이 되는 음식은 마음을 쓰는 일이라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친구는 출산을 하고 혼자 누워 있다고 했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갖은 재료를 사들고 한 시간 반을 걸려 찾아갔다. 적막한 집에 혼자 누워 있는 친구와 잠이 든 아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는 친구가 먹고 싶다고 했던 반찬을 하기로 했다. 말린 도토리묵을 물에 불리고 들깨미역국을 끓였다. 냉장고는 소스 몇 가지와 마트에서 사 먹고 남은 반찬이 굴러다녔다. 나는 내가 사들고 간 재료들을 빠짐없이 정리해 넣었다. 오이를 무치고 말린 묵오라기를 무치고 들깨 미역국과 두부 부침을 내었다. 퉁퉁 부은 친구와 그날 식사를 한 후로 우리는 무려 9년째 만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때의 이야기를 한다. 너무 적막하던 집에 음식을 선물로 가져간 나를, 친구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해준다.

명절이 되었다고 벌써부터 집에 음식 선물들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김이 두 개 들어왔다. 해산물과 곶감이 들어왔다. 오늘은 저녁에 집에 와보니 냉장고에 과일이 가득 들었다. 이 계절에 우리들은 나를 위한 과일보다 다른 집을 위한 과일을 사고 또한 다른 집에서 온 과일을 먹는다. 사과와 배, 밤, 포도 따위의 박스가 아파트 재활용품 정리소에 슬슬 쌓이기 시작한다. 나는 잠시동안 또, 뻔한 선물이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나도 방금 내 친구에게 호두정과와 아몬드 초콜릿 세트를 선물로 보내고 오는 길이었다. 그게 꼭 필요한 영양소는 아니지만, 없어도 상관없는 음식이지만 먹을 것으로 보내는 마음을 나도 알고 있다.

사과를 한 알씩 감싸 냉장고에 넣으면서 쓰다듬어본다. 조심스럽게 포도를 켜켜이 쌓고 선물로 들어온 음식들에 반드시 기도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스팸이든 김이든, 포도씨유든, 무엇이든 간에.


음식을 주고받는 건 다른 선물과 다른 일이다. 나는 독일에서 굳이 약밥과 수정과를 만들어 독일 친구들에게 가져갔다. 그들은 나에게 다음날 각자 음식으로 보답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는 자기네 농장에서 그 해에 딴 올리브유 한 병을 주었다. 페르시아에서 독일남자에 시집온 친구는 체리가 들어간 고국의 초콜릿 한 상자를 주었다. 브라질에서 약학을 공부하러 온 친구는 쭈뼛거리며 나에게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서양배가 들어 있었다. 그는 무척이나 미안해했다. 나중에 꼭 콩으로 만든 브라질 요리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학업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고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가 작은 서양배를 나에게 쥐어주던 때를 잊지 못한다. 잘 익은 서양배에서 나던 달콤하고 풋풋한 향이 손에 가득 담겼었다. 전날, 나는 서양배를 점심으로 씹어먹는 그에게 그 배가 참 맛있어 보인다고 말했던 게 기억났다. 나는 그가 보는 앞에서 씻지도 않은 서양배를 베어 먹었다. 배는 예상보다 훨씬 더 달고 시원하고 서걱거렸다. 그의 마음이 서걱였다.


모든 음식은 선물이 될 때 조금 더 맛있어진다. 이상한 일이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손맛 때문일 것이다. 나는 녹두전과 꿀떡을 좋아하지 않지만 맛있게 받아 들고 맛있게 먹어본다. 그러면 제법 맛있다. 손의 공정을 거쳐 오는 음식의 선물이 때로는 버겁고 귀찮을 때도 물론 있다. 그냥 교환권으로 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은박지에 꽁꽁 싸맨, 직접 만든 고국의 명절 음식을 주는 마음은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이, 는 중국인이었다. 나는 중국 유학생들에게 대학 부설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아이는 유난히 꼬지지한 여학생이었다. 나와 나이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는데 나는 어린 이십 대의 선생님이고 아이는 어학원의 학생이었다. 아이, 는 나를 유달리 좋아했다. 아이,라는 이름은 나에게 이상한 보호본능을 만들어 주었고 나는 아이, 가 머리를 감지 않아 떡이 진 머리를 질끈 묶고 늘 같은 옷을 입고 오는 것을 아무 말하지 않았다. 아이는 일 년 먼저 한국에 들어온 남자친구를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고 했다. 남자친구는 명동에 있는 샤부샤부집에서 일을 했고 아이도 시간당 근무로 식당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나는 유일하게 아이에게 내 번호를 알려주었다. 내가 어학원을 그만두고, 아이도 졸업을 하고 나서도, 우리는 몇 번 밥을 같이 먹었다. 아이와 나와 그녀의 남자친구와 중국어과를 나온 내 친구는 명동 구석에 있는 김치찌개 집에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설날 즈음이었다. 아이는 나에게 명절선물이라며 비닐봉지에 꽁꽁 싼 기름진 음식을 주고 총총히 사라졌다. 낡은 목도리에 어쩐지 기름 냄새가 배어있더라니.


고국에서 명절에 먹는 간단한 빙이었다. 고추와 땅콩과 설탕이 들어간, 그다지 맛이 없는 빙이었다. 은박지에 꽁꽁 싸매고 비닐봉지도 두 겹으로 포장한 빙 세 조각. 나는 집에서 혼자 그 빙을 모두 먹었다. 맛이 없었지만 맛이 있었다. 그 맛이 대체 무엇이었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화장기 없이 단 벌로 버티면서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던 아이의 웃음과 남자친구가 자랑스러워하던 그녀의 솜씨, 그리고 나를 무척 좋아해 주던 수줍은 눈을 기억한다. 빙은 아이의 마음 맛이었다. 음식 선물은 그 사람의 마음 맛이다.


음식선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직접 해주는 것에서 산 것으로 그리고 이제는 쿠폰이나 주문내역으로 들어온다. 오늘은, 메시지로 전달된 음식 선물이 조금 야속했다. 그래도 이번엔 그냥 감사한다는 메시지 답장으로 끝내지 않고 더욱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음식 선물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김을 준 사람에게는 맨 밥에 김을 올린 사진을 찍어 보내고, 포도를 보낸 사람에게는 포도를 잘 씻어 그릇에 담아 먹는 사진을 찍어 보내야지. 그리고 나중에 꼭 같이 음식을 먹자고 해야겠다. 음식을 나누는 기쁨으로 명절을 연장하자고 해야겠다.

마음의 맛으로 만찬을 즐겨보자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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