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과 멋 | 할머니가 파는 야채

마트가 아닌 곳의 야채

by Ggockdo


늦여름 휴가를 보낸 숙소 앞은 파밭이었다. 창문을 열면 산 꼭대기를 바라보고 건장하게 뻗어있는 굵은 파들들이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었다. 매운 내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파밭은 유독 짙은 초록이었다. 나는 난을 치듯 파를 치고 싶었다. 파는, 더 담뿍 묻힌 먹으로 거칠고 짙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늦은 밤, 어둑한 산중에 더 검고 뻣뻣하게 솟아나 있는 파 떼들을 보면 마음이 편해졌다. 든든한 호위무사들처럼 내 휴가를 둘러싼 파떼들를 치하해 주고 싶었다.

마지막 날 아침, 파밭 앞의 노점에서 몇 가지 야채를 샀다. 그늘막 아래에서 할머니는 혼자 양파를 다듬고 있었다. 양파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노련하게 생생한 줄기를 잘라내고 망에 담는다. 양파의 기다린 잎은 파와 달랐다. 색이 다르고 단단함이 다르다. 작고 단단한 당근이 무더기로 있었다. 나는 미리 값을 지불한 당근 무더기에서 하나를 들고 대충 씻어 씹어먹었다.


가뭄이 들어서 야채들이 다 작고 맛이 없어. 미안해.


할머니는 당근의 머리를 다듬으며 미안하다고 하신다. 할머니는 자신이 당근이고 양파이고 양배추인 것처럼 미안해한다. 아니에요, 나는 수돗가에서 아주 조금만 물을 퍼서 당근과 손을 닦았다. 이례적인 가뭄이 든 강원도의 야채들이 다 쓴소리를 내는 바람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허리가 굽었다. 연신 미안해하느라고. 씹어도 씹어도 단물이 잘 나오지 않고 질긴 섬유질만 이에 끼는 당근과 쓴 물이 나오는 오이와 성성하게 자라난 파와 메마른 양파가 더미채로 앉아 뙤약볕을 참아내고 있었다. 벌써 한 달 전 일이다.


한 달째, 양파와 당근은 상하지도 않고 잘 있다. 마트에서 사 온 손질 양파와 적색 양파는 일주일 만에 썩어 버렸는데, 할머니가 미안해했던 양파는 아직도 단단하다. 잘 말려던 거라, 한 달 있다 먹어도 되니 천천히 먹으라던 말씀이 맞았다. 그 양파와 드센 파는 아직 그물망에 담겨 살아있는 열대식물처럼 대롱거린다. 가끔 베란다에서 그들의 실루엣을 보면 흠칫거릴 정도로 건장하다.


장정일 시인이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썼던 때에서 한참 지났는데, 나는 아직도 마트의 손질된 깨끗한 양파를 볼 때마다, 한 줄기씩 정갈하게 길이를 맞춰 비닐봉지에 소포장된 대파를 볼 때마다 식욕이 사라진다. 햄버거는 잘만 먹으면서. 이상하게도 이미 가공된 음식은 자포자기하듯 즐기지만 야채들만큼은 세척되어 깔끔하게 포장된 것을 보면 식욕이 떨어진다. 장정일의 시 때문만은 아니고, 아마 손질된 야채들이 꼭 손질된 시체 같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약품처리를 하지 않은 식물의 시체는 금방 썩고 무르고 맛을 잃는다.


독일 마트의 신선코너에는 화분이 놓여있다. 바질이나 페퍼민트, 딜과 같은 허브종류나 버섯 종류들은 손질된 채 비닐 포장되어 팔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화분채로 야채코너에 놓여 팔린다. 가격 차이도 별로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버섯을 화분채로 팔기도 했었다. 최소한 밑동을 잘라내지 않고 파는 종류들이 있다. 알뜰한 사람들은 화분째 파는 허브와 야채를 사서 잘라먹고 키워서 또 잘라먹는다. 나는 몇 번 시도해 보다가 포기하고 뿌리만 남은 화분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래도 꼭 화분째 파는 허브를 사 먹었다. 그들의 향과 맛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지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그들의 사후세계를 위해서.


나는 늘 시장 근처에서 살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늘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시장이 있었다. 마트와 시장이 같은 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시장에 갔다. 시장은 초입부터 바닥에 야채들이 놓여 있다. 할머니들도 같이 앉아서 행인들을 올려다본다. 나는 할머니와 야채들이 길바닥에 앉아서 지나치는 행인을 바라볼 때, 가끔 견딜 수 없을 만큼 어쩔 줄을 모른다. 낡은 바구니와 할머니와 야채들이 구걸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길바닥에 앉아 있는 길목을 건너가면 당당하게 자리를 얻어 매대에 정갈하게 종류별로 진열한 가게들이 있다. 나는 왜 빈부격차를 고작 얼갈이배추나 시금치, 파에게서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

며칠씩 두고 먹을 게 아니라면, 나와 엄마는 시장 초입 횡단보도 한편에서 장사하는 할머니에게서 정기적으로 더덕을 산다. 애호박이나 철마다 나오는 나물류도 종종 산다. 우리는 서로 이름을 모르지만 얼굴과 목소리와 식이습관을 안다. 할머니는 늘 거리에서 바로 더덕을 까고 흙과 더덕이 한 데 엉켜 진한 냄새를 풍겨낸다. 우리는 가끔 약속도 잡는다. 한 달 동안은 못 와요. 영감이 아파서. 밤은 언제 나와요? 다다음 주쯤에 나올 것 같아요.


농작물을 두고 잡는 약속은 풋풋하고 달콤한 흙내가 난다. 이사 온 집은 시장과 조금 거리가 멀다. 나는 정선의 파밭에서 사 온 양파와 당근을 한 달째 먹고 있다. 아파트 뒷문에 종종 나오는 파라솔 할머니는 자기 밭에서 나오는 야채를 조금씩 가지고 온다. 할머니의 토마토는 못생겼지만 맛있고 오래 두어도 잘 상하지 않아서 꼭 사서 쟁여놓는다. 토마토를 잘라보니 안에서 씨앗에 조그맣게 싹을 냈다. 볕을 잘 받아서 따뜻해진 토마토 안에서 씨가 발아해 버린 것이다. 이제 토마토는 없어. 오이는 맛이 없어. 이런 농작물의 약속은 오로지 구두로만 이뤄진다.

농작물의 대리자인 할머니들은 늘 자신이 파인 것처럼, 당근인 것처럼, 배추이고 토마토인 것처럼 약속을 잡는다. 그리고 자랑스러워하고 미안해하고 흙더미에 앉아 있듯이 바닥에 앉아서 행인들을 쳐다본다. 나는 그 모습이 정겨우면서도 못 견디게 서글프다.


파를 한 단 사야 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마트에 가야 한다. 나는 평창의 파밭을 떠올리면서 축 늘어지는 파를 본다. 절단내서 책 크기만 한 봉투에 담긴 것보다는 낫다. 이것들은 나와 약속을 잡지 않고 갑자기 만났고 딱히 대리자도 없어서 미안해하지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는다. 파에게 비닐 봉투 냄새가 났다. 가뭄이 든 것보다 더 열악한, 아픈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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