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인 카페들
Kaffeegraten이라는 말은 당연히 없다. 내가 방금 지어낸 말이니까. 물론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커피는 장소와 무드를 잘 타는 맛이기도 하다. 고작 커피 한 잔이라고 말은 하지만 커피는 음료가 아니라 장소와 감성과 정서가 포함된다는 것도 모두들 잘 알고 있다.
아네스 바르다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영화에는 클레오가 머무는 카페 속에 온갖 미술 전시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시대 파리의, 우리가 지금은 내한 전시로 만나야 하는 화가들의 전시포스터가 아주 덕지덕지하다. 웅성거리고 수근거리고 설탕을 찾는다.
키에슬로프스키의 < 세 가지 색 : 파랑> 영화에서는 줄리엣 비노쉬가 혼자 카페에 앉아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부어 먹는 카페의 장면이 나온다. 오후 햇빛이 드는 평범한 카페는 무엇때문에 그렇게 드글거리는 마음이 깔린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짐 자무쉬의 <COFFEE and CIGARETTES> 은 여러개의 카페 씬이 나온다. 담뱃재가 같이 나와서 더러는 조금 지저분하고 짐 자무쉬가 즐겨마신다는 커피는 참으로 맛이 없었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있다는 문학 작가들이 앉았던 자리를 꼭 가보고 싶다. 코로나 때, 그 카페들이 문이 닫지 않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나는 지금 커피가 의미를 부여하는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카페를 좋아한다. 호텔로비나 책방에 있는 카페도 좋아한다. 그런 곳의 커피는 공적인 커피의 멋이 난다. 개인이 연 카페나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훨씬 더 열려있고 공적 가치가 보장된 장소의 커피. 조금 비싸거나 맛이 전문적이지는 않아도 작품이 주렁 주렁 매달린 큰 건물을 활보하고 난 뒤에 마시는 커피는 조금 다른 맛을 낸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시립 미술관 Den Haag Kunst Museum의 카페는 중앙 보온실 뜰 같다. 전시실에서 안쪽으로 나 있는 창을 보면 넓은 보온실 광장 천장의 유리돔에서 비치는 햇빛과 공중을 날고 있는 나무 뼈대의 작품이 유유히 사람들의 정수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광장 카페를 둘러싸듯이 나 있는 ㄷ자 복도를 돌면서 주문을 하면 트여 있는 실내 광장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몽상에 빠져 있다. 아니 상상인가? 또는 생각. 그것도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앉아 있다. 사방은 이미 무언가로 꽉 차 있다. 전시된 작품들이 내뿜는 기류는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의 타일과 작품의 일부인 웰 페인팅의 부리부리한 관찰 속에서 관람객 사이를 맴돈다. 그런 기류는 사람의 입맛까지 바꿔놓는 법이다. 사과주스나 차가운 탄산음료, 심지어 맥주도 팔지만 그곳을 방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커피를 마신다. 진하고 작은 잔에 나오는 슈바르츠카페Schwarz kaffee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사람들은 몇 모금도 되지 않는 작은 잔을 오랫동안 마시면서 생각의 언저리를 두리번거린다.
로테르담 사진 박물관의 카페는 건물 중간에 있다. 나는 추위를 뚫고 한 시간을 걸어 박물관을 갔다. 얼굴이 얼얼해서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나는 무슨 마음에서인지 전시를 보지 못하고 전시실 벽 뒤를 맴돌았다. 어쩌면 아직 마음에 작품을 들일만한 여유가 충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로테르담과 헤이그를 찾아갈 때는 물 밑으로 잠수하고 싶을 만큼 지쳤다는 신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자꾸 간과한다. 박물관 교육관과 서점 사이는 '네덜란드 사진사 100년'의 주제로 강연이 열리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몇 번 기웃거렸지만 독일어와 비슷하고 영어같기도 한 네덜란드말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나를 힐끗거렸다. 나는 앞에서 흑백으로 인화된 오래된 체육대회 사진을 들고 설명하는 사람의 입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다 재미있는 입모양을 보고 있느라 전시실 내부는 한산했다. 전시실을 가로질러 나가자 조금 넓은 복도 한쪽에서 한 남자가 열심히 잔을 닦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주문했다. 사실 나는 그가 기게를 청소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모른척했다. 그는 나를 모른척하지 못했다. 왜 인지는 알 수 없었다.
"Schwarzkaffee 밖에 지금은 줄 수가 없어. 괜찮아? 그건 적은 양의 커피야." "그걸로 충분해."
그는 닦던 잔을 다시 뜨거운 물로 헹구고 커피를 내렸다. 모두 청소를 하느라 분주한 로비에 혼자 앉아 검은 커피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폐관까지는 삼십분이 남아 있었고 남자는 가끔 나를 힐끔거리며 계속 정리를 이어갔다. 점점 적막해지는 박물관의 커피... 청소 담당은 테이블의 휴지와 꽃병을 수거해 갔다. 점점 비어져 가는 박물관의, 점점 비워져가는 시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는 커피... 남자는 나에게 눈치보지 말고 천천히 마시라고 했다. 본인이 마지막까지 있을 거라고.
그가 내 빈잔을 받아간 것은 폐관을 삼분 남긴 시각이었다. 그는 빈잔을 설거지 조차 하지 않고 개수대에 넣고 그대로 문을 닫았다. 마지막으로 앞치마를 벗으며 그는 커피가 충분했는지 물었다. 나는 충분했다고 말했다. 실은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베푼 친절은 충분했다. 그는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남색 버버리코트를 입고 붓기 가득한 얼굴로 미세하게 웃는 초상사진을.
슈만의 도시에는 규모가 제법 되는 서점이 네 개가 있었다. 괴테 서점, 별 서점, 마이어쉐 서점, 부티크 서점. 그 중 나는 오래된 호텔 로비에 차린 별 서점을 좋아했다. 별Stern 서점은 가운데가 서서히 꺼져 들어가는 지형을 가지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카페가 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 곳의 서점들이 다들 서점 내부에 카페를 만든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새 책이 커피에 젖어 들어갈 염려는 하지 않는 것일까? 계산을 하기 전에도 사람들은책을 보다말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Normal Kaffee 보통 커피는 생각보다 잔이 아주 컸다. 거의 수프그릇이나 뮤슬리를 먹는 컵 사이즈와 같았다. 흘러 넘치기도 잘 넘쳐서 잔 받침과 잔 틈에 꼭 휴지를 깔아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눈으로 책을 보고 코로 커피 냄새를 흡입하면서 서서히 가운데 지형으로 물방울이 모이듯 빨려 내려가 카페에 앉는 광경이 좋았다. 보통 커피는 가격도 아주 쌌다. 책을 보는 사람들에게 서점의 커피는 카드 명세서 사인 잉크만큼 당연한 것이다. 나는 거기에서 늘 세일하는 책을 샀다. 그리고 동화책 코너에서 한참 그림책을 보다가 커피를 마셨다. 아직 독일어로 책을 읽는 게 부담스러울때는 그림 동화책만큼 좋은 게 없었다. 토끼인형이 주인공인 시리즈와 오리가 주인공인 그림동화 시리즈를 다 볼 때까지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노말 카페의 양이 충분할 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K21의 미술관 카페는 애플 슈트르델이 맛있다. 나는 관람도 하지 않으면서 그곳의 애플 슈트르델과 커피를 먹으러 갔다. 거기에는 그런 이들이 꽤 있었다. 유학생들 한 무리가 자기네 나라 말로 학업을 떠들어대고 있었다. 한국인들이었다. 나는 다 알아 들으면서도 못 들은 척하며 계피가루가 잔뜩 뿌려진 애플 슈트르델과 짙은 커피를 마셨다. 한번은 배가 고파서 우유커피Milchkaffee를 마셨다. 양이 너무 많은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곧 볼 게 많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그리고 그 날 세 시간 동안 그림을 보고 로비에서 요셉 보이스의 문구가 적힌 가방을 샀다. 그리고 다른 카페를 찾으러 갔다. 배가 고팠다.
그것들은 내 Kaffeegarten이다. 공적이지만 또한 개인적인 카페들. 예술작품이 그렇듯이. 그런데 카프카는 커피를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는데, 그는 물 한잔으로 카페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그 공적인 기류 속에서.
- 다음 주 금요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