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이 맞는 멋진 친구들을 위해서
콩쥐 팥쥐 이본 원작 후반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 콩쥐와 원님이 부부가 되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본 계모와 팥쥐는 무당을 찾아가 얼굴을 콩쥐처럼 바꾸는 사술을 쓴다. 콩쥐와 얼굴이 거의 비슷해진 팥쥐는 콩쥐를 찾아가 '언니, 내가 착한 마음을 먹고 사니 이렇게 얼굴이 바뀌었소. 우리 이제 우애로 살아봅시다.' 하여 콩쥐는 성심성의껏 팥쥐를 대접한다. 팥쥐는 산책을 하자며 졸라 함께 연못가로 가 팥쥐를 연못에 밀어 빠트려 죽인 후, 본인이 콩쥐인 행세를 하며 부귀영화를 누린다. 한편 원님은 분명 얼굴을 같은데 어쩐지 마음이 동하지 않아 부인을 꺼려하며 외로움을 느낀다. 그런데 콩쥐가 빠져 죽은 연못 한가운데 아주 영롱하고 커다란 연꽃이 피어나는 것이 아닌가. 팥쥐는 저 연꽃이 꼭 콩쥐인 것만 같아 불안해 연꽃을 자라다 아궁이에 불살라 버린다.
그러나 콩쥐의 선함과 억울함을 하는 신은 연꽃으로 피어나 아궁이에서 불살라진 콩쥐를 불꽃의 신이 되게 해 준다. 한편, 매번 원님의 아궁이에서 불씨를 얻어가는 노파가 불사른 연꽃의 불씨를 얻어다 집에 불을 지피자 콩쥐가 현신하여 노파에게 부탁을 하여, '원님을 초대해 밥상을 차려주시오. 님을 만나야 겠소' 라 한다. 노파는 매일 불씨를 얻어가 감사하다며 원님을 집에 초대해 상을 차린다. 원님이 보니 단촐한 밥상에 젓가락 짝이 맞지 않아 노파를 불러 '여보소, 젓가락 짝이 맞지 않소.' 하며 부른다. 그러나 노파는 들은 체 만 체 꽁무니를 빼고 불쾌한 원님을 병풍 뒤에서 콩쥐가 현신하여 부르며 "원님은 자기 짝 맞는 것은 모르시면서 젓가락 짝 틀린 것은 어찌 아시나요."라 하며 정체를 드러낸다.
(이야기만 요약한 것으로 문체나 단어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나는 결혼을 하는 지인들에게 꼭 불꽃의 화신이 된 콩쥐가 하는 말을 적어 유기로 만든 수저 세트를 선물하곤 한다. 사람의 짝과 젓가락의 짝을 잘 맞춘 식탁은 십시일반의 식탁을 화목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밥상의 취향과 예의를 한 짝으로 곱게 맞추는 사람은 꼭 부부가 아니더라도 늘 마음 가찹고 마음 따뜻한 관계가 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젓가락 짝을 맞추는 식탁의 예의를 알고 맛이 맞아 젓가락 한 쌍처럼 잘 맞는 사람은 늘 귀하다. 같이 사는 가족이라도 꼭 맞는 식구가 아닐 때도 많고 다른 맘이 잘 맞아도 맛이 잘 맞지 않으면 어쩐지 서운해지기도 한다.
내 젓가락은 좀 길다. 특별히 가리는 것이 없어서 무엇을 특별히 가리는 사람과도 그럭저럭 식탁을 마주할 수 있다. 좀처럼 내가 선호하지 않는 음식을 굳이 뽑자면, 원재료의 맛보다 못나게 만든 요리들뿐이다. 맛과 멋이 가미된 모든 음식을 집어 먹는 것은 늘 달갑고 그게 한국의 멋이든 서양의 멋이든 멋만 있다면, 맛만 있다면 순순히 한 짝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도 뭐든지 다 잘 맞는 내 젓가락 한 짝 같은 친구는 참으로 귀한 벗이다. 식탁을 대한다 하면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 젓가락 벗.
내 젓가락 벗과 내가 기억하는 식탁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 강원도 정선일대를 돌아다니며 옥수수와 산초 두부, 황태 문어국밥, 물회 등등 미식 기행을 같이 가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우리의 추억으로 짙게 남은 젓가락은 아주 소박하다.
벗의 집에서 두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지치지도 않고 대화하며 나눈 젓가락질들, 올리브유와 간 아몬드를 뿌린 크래미로 시작해 고메버터를 바른 호밀빵과 오이샐러드, 머스터드를 곁들인 흰 소시지와 가지 구이, 버섯들깨탕과 매운 짬뽕, 구운 복숭아, 제철 포도, 셀 수도 없는 커피잔과 찻잔들이 아주 느리게 왔다가 간 식탁이었다. 하루동안 풍족한 식탁을 나누면서 우리는 연극부터 드라마와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영화를 보면서 미장센을 초단위로 나누어 감탄했다.
그러고 보면 식탁의 젓가락 짝이란 꼭 음식을 집지 않아도 된다. 식탁에서 나누는 대화가 집어 먹을만하면 되는 것 같다. 우리는 그보다 더 조촐한, 잔치국수 한 그릇을 먹으면서도 숱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섯 시간, 여섯 시간 동안 서로의 이야기를 집어먹었다.
또 다른 벗들도 그렇다. 내가 사랑하는 내 젓가락 짝들은 모두 하나같이 맛깔난 이야기를 할 줄 알고 커피 식탁이나 찻상이나, 거한 식탁이나 조촐한 식탁이나, 어떤 음식이 있든 간에 점점 길어지는 젓가락을 놀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무척 사랑스럽고, 귀하고, 소중하다.
맛과 멋은 잘 배운 젓가락질에서 나온다. 내 벗들과 나의 기념할만한 모든 식탁이 그랬듯이 말을 듣고 맛을 보고 말을 하는 동안 거칠게 젓가락질하지 않는 마음에서 나온다. 우리는 조심스럽기도 하고 왁자지껄하기도 했지만 결국 짝을 맞추어 걷듯이 밥을 먹고 말을 먹었다.
요즘 입맛을 잃은 것은, 무더위만이 아니라 내 젓가락짝이 마땅치 않아서이다. 내 벗만 있다면 어쩌면 매 끼니 잘 먹고 잘 소화해서 포동포동해 질지도 모른다. 다가오는 말복에는 꼭 그들의 맛과 멋을 같이 집어먹을만한 시간이 차려지길.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잘 맞는 한 쌍의 젓가락 짝들과 맛과 멋을 잘 집어 먹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