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과 멋 | 계란? 달걀? 동그라미!

달걀? 계란? 동그라미!

by Ggockdo



계란, 겨란, 지란, 저란, 게랄... 계란의 사투리는 엇비슷하다. 닭 계啓와 알 란卵의 한자어의 변형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달걀은 조금 다르다. 닭의 알, 닭알, 달걀은 사투리도 별로 없다. 단순한 어감의 차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늘 계란이라는 단어보다 달걀이라는 단어를 좋아했다. 계란에 한자가 붙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토속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리마다 어울리는 어감은 따로 있다. 예를 들어 찜은 계란찜보다는 달걀찜이, 후라이는 달걀후라이보다는 계란후라이가, 삶은 것은 삶은 계란보다 삶은 달걀이, 날 것도 날 계란보다는 날달걀이 더 입에 착 붙는다. 외래어(한자어)와 순우리말의 조합 같은 건 둘째치고 그냥 자연스러운 내 입맛에는 그렇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계란이 달걀보다 더 입맛에 잘 맞는 사람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계란 또는 달걀은 밥상 구성원에서 아주 중요한 동그라미다. 가장 단순한 동그라미 달걀 또는 계란은 주방에서도 동그라미다. 점과 선 긋기 다음으로 해 볼 수 있는 동그라미, 그 위에 무엇이든 덧붙이고 이어 붙여서 화려하게 만들 수 있는 동그라미. 달걀 또는 계란은 그냥 물에 넣고 삶거나 후라이팬에 그대로 굽는 가장 단순한 조리에서부터 날달걀로 간장과 밥에 비벼도 먹는 탄탄한 기본기다. 점점 이 기본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되는 게 맛과 멋의 길이다.


어느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탈락 미션으로 달걀 또는 계란을 제한시간 내에 완벽히 조리하도록 했다. 그만큼 어렵다. 동그라미가 그렇다. 원은 참 그리기 쉬운 것 같은데, 각 없이 선을 이어 둥글게 붙이기만 하면 되는데, 제대로 그리기가 참 어렵다. 찌그러지거나 알맞은 크기가 아닌 동그라미도 동그라미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재적소에 필요한 아주 동그란 동그라미는 지름과 반지름, 선의 두께와 이어지는 점이 티 나지 않아야 않는다는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 집 사람들은 반숙으로 삶은 달걀 또는 계란을 좋아한다. 아주 익은 노른자는 퍽퍽하고 색도 연해져서 계란 또는 달걀의 맛이 밋밋해진다. 약간 덜 익은 노른자는 색이 진하고 계란 또는 달걀의 고유의 맛과 향이 진하게 돌고 촉촉해서 별다른 곁들임이 없이 먹어도 충분히 꿀떡 넘길 수 있다.

후라이는 더 다양하다. 익힘 정도나 모양에 따라서 서니사이드업이니, 오버이지, 오버 하드와 같이 구분되기도 하고 에그 베네딕트나 오믈렛에 올라가는 달걀 또는 계란의 조리법도 있다. 이를 두고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런어웨어 브라이드>에서 "내가 에그 베네딕트를 좋아하는지, 프라이드 에그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달걀 또는 계란을 먹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결혼할 수 없어." (비슷한 내용이지 정확한 내용은 아닙니다.) 라고 말했다. 계란 또는 달걀의 취향은 동그라미, 맛과 멋의 기본 취향이고 개성이고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까지 의미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는 온갖 동그라미를 다 좋아하는 셈이다. 나는 계란 또는 달걀을 다양하게 맛있게 먹는 법을 안다. 완숙으로 삶은 것은 반으로 갈라 소금, 후추, 올리브유를 뿌려 살짝 노른자를 으깨어 먹고 반숙은 버터와 먹는다. 서니사이드업은 노른자를 터트려 먹거나 한 입에 입에 넣고 입 안에서 터트려 먹고 오버이지나 오버 하드는 흰자와 분리하지 않고 한꺼번에 밥이나 고기에 올려 먹으면 맛있다. 달걀 또는 계란을 풀어 조리할 때는 물과 우유를 반반 넣고 소금과 말린 허브를 곁들인다. 치즈가 있다면 꼭 치즈도 같이 곁들인다. 만만한 동그라미, 조금 더 공 들인 동그라미, 아주 신경 쓴 동그라미로 먹는 달걀 또는 계란 요리는 언제나 싫었던 적이 없다.


강화에 가면 오일장이 선다. 강화의 오일장에서는 심심치 않게 볏짚으로 꼬아 만든 게란 또는 달걀집에 알알이 엮은 그림 같은 달걀 또는 계란이 나온다. 청란도 매번 볼 수 있고 초란부터 왕란까지 크기도 제각각인 달걀 또는 계란들이 소복하게 담겨 팔린다.

특히 나는 보통 달걀 또는 계란보다 조금 작은 청란을 좋아한다. 닭이 새라는 사실을 잘 잊고 살다가 청란을 보면 닭도 새고 달걀 또는 게란도 새알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청란의 껍질은 좀 더 단단하고 맛도 조금 톡 쏘는 맛이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주 예쁘다.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시기의 도자기 빛을 닮은 작은 알은 살구색이나 옅은 황색의 계란 또는 달걀과 달리 유난히 고고한 자태를 가졌다. 강화 오일장이나 가끔 동네 시장에 청란이 들어오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도 실은 다른 무엇보다 멋 때문이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청란을 본 적이 없었다. 독일은 마트보다 시장이 비쌌다. 시장은 농장 직영에 가게마다 농장주의 이름이나 사진까지 걸린 지역 유통망의 점유지였고 마트는 혼종들의 물류센터다. 내가 자주 가던 리들 lidl마트의 달걀 또는 계란 코너는 2구, 4구, 8구, 10구짜리 종이틀과 여러 종류의 계란이 뷔페처럼 펼쳐져 있었다. 수입란은 값싸고 지역 농부의 것은 세 배에 달했다. 나는 주머니 사정과 달걀 또는 계란 요리의 종류에 따라서 골라 담는 시간을 참 좋아했다.

동글동글한 달걀 또는 계란이 얌전하게 담겨 켜켜이 층을 이루고 있는 것도 좋았고 선선한 바람이 드는 코너의 온도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란 또는 달걀의 반질반질한 껍질을 쓰다듬고 손에 쥐는 게 좋았다. 나는 닭장에서 뜨뜻한 달걀 또는 계란을 만져본 일이 없어서 알의 멋은 잘 모른다. 그렇지만 서늘하고 시원한 달걀 또는 계란 껍질의 촉감은 잘 안다. 껍질을 문질러 거친 것과 매끈한 것을 구분하고 오돌토돌하게 뭉친 게 있는지를 식별하면서 계란을 골라 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달걀 또는 계란이 동그라미이기 때문이다. 자매품으로 사과나 오렌지를 골라 담는 일이 있다. 하지만 한 손을 넘어서는 사과나 오렌지의 크기는 확실히 조금 다르다. 특히 오렌지 껍질에 달라붙어 있는 왁스 성분이 손바닥에 남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오로지 달걀만이 손이 작아도 온전히 감싸 쥘 수 있고 어느 정도 단단해서 힘을 주어도 안심이 되며 손에 어떤 흔적을 남기지 않는 깨끗하고 맑은 동그라미다.


거주민들이 그렇듯이 나도 거의 매일 달걀 또는 계란을 샀다. 한꺼번에 30개짜리 한 판을 사는 사람은 제과제빵을 하거나 달걀물로 더 복잡한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다. 달걀 또는 계란의 기본기에 충실한 사람들은 그날이나 다음날 아침에 먹은 달걀 또는 계란만 샀다.

나는 주로 두 알 내지는 네 알을 샀다. 2구짜리 종이틀은 아주 연약했지만 플라스틱이 아니어서 좋았다. 가끔은 얇은 유산지가 제공되기도 했다. 나는 달걀 또는 계란에 꽤 후하게 굴었다. 아주 저렴한 수입산은 건너뛰고 그보다 조금 비싸고 큰 달걀 또는 계란을 골랐다. 가끔은 청란을 그리워하면서 시장에서 달걀 또는 계란 묶음을 샀다. 시장의 알들은 강화의 것처럼 볏짚단으로 만든 알집에 알알이 엮여 있다. 시장의 달걀 또는 계란은 내가 개수를 정할 수 없어서 무조건 다섯 개 묶음을 사야 했다. 그러면 나는 그 볏짚에 들어간 달걀 또는 계란을 하루 정도 식탁 위에 놔두었다. 마른풀 냄새가 나는 알집 안에 동그라미들은 이제 태어날 가능성도 없고 어미도 없는데 종이틀이 아니라 볏짚 속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때로는 화병에 든 꽃 같았다.


볏짚단 안에 든 동그라미를 하나씩 빼먹으면 빈자리에 마트 계란을 사서 채워 넣었다. 당연히 동그라미 크기는 맞지 않았다. 그래도 볏짚단이 낡아 해질 때까지 버리지 않고 썼다. 달걀 또는 계란의 동그라미들이 초가 같은 소박한 집을 가지고 아늑하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뱃속이 훈훈해졌다.


모난 사람이다. 사람은. 사람은 정육면체라고, 단테가 말했다. 나는 주사위만큼 각이 진 인생을 굴러다니며 높은 숫자가 나오길 요행을 기다리는 사람의 각진 마음을 가진 모난 사람이다. 둥글 둥글게 살 수 없는 건, 알에서 태어나지 못한 탓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그란 얼굴과 둥근 어깨, 동그스름한 엉덩이같이 동그라미로 보이는 몸을 좋아하는 건 마음이 충분히 모나 있기 때문이다. 달걀이라고 발음할 때 입이 굴러가며 둥그런 소리가 나는 게 좋은 것도, 달걀이 볏짚단으로 만든 집에 들어라 평온히 앉아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좋은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요즘은 달걀 또는 계란을 정기 구독해 먹는다. 닭장은 없고 강화도 아니라 청란은 없지만, 이상적인 동그라미를 그리워하며 충청도의 한 양계장에서 올라오는 달걀 또는 계란을 정리하면서 여전히 흐뭇해한다. 종이와 뾱뾱이에 감싼 동그라미들, 매끈한 껍질을 매만지고 살짝 손에 쥐어 보면서 입맛을 다진다. 마음도 살짝 모서리를 둥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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