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이 건네는 다정한 위로.
20년 가까이 비행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멀리 장거리 비행을 가면서도 쿨하게 돌아서는 엄마에게 고맙게도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헤어져 주었습니다. 비행을 떠나는 길은 매번 즐거웠습니다. 육아가 맞지 않는 엄마에게 콧바람을 쐬러 가는 길이 즐겁지 않을리 없었습니다. 가는 길은 비록 고되지만,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포근한 침대와 맛있는 음식, 퇴근 후의 *랜딩비어 한잔을 기대하며 가는 길은 힘들지만은 않았습니다. (승무원들은 퇴근 후의 맥주 한잔을 '랜딩비어'라고 부르지요. 나는 이 순간을 몹시 사랑합니다.)
푹 쉬고 돌아오면 한국에서의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동네 엄마들을 삼삼오오 불러모아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학교 행사에도 제법 참여할 수 있는 나의 스케줄이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책방을 시작하면서 긍정인지 무식인지 모를 용기에 나는 세가지 일도 다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만은 않았습니다.
책방을 열고나서 가장 많이 받은 것 중 하나는, 과태료 고지서 입니다. 나는 어느 순간 마음이 쫓기고 있었습니다. 과속과 불법주차 과태료가 심심찮게 쌓이고, 가끔은 쫓기는 꿈을 꾸었습니다. 서두르며 출근을 하다보니 아무래도 그런 나의 모습이 상사에게도 보였나봅니다. 책방 문을 열던 그 시기의 고과가 훅 떨어졌습니다. 당시의 나는 회사에서 교육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과가 떨어지니 교육이 나올리가 없었겠지요. 답답한 좌절감이 무겁게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아이들을 향하는 내 입에 '시간이 없어, 서둘러, 엄마 바빠, 엄마 지금 일하잖아!'라는 말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감당하고 싶지 않았던 묵직한 죄책감이 몰려왔습니다.
제비다방을 찾은 것은, 전에 우리 책방에서 공연을 해주셨던 '유발이'님의 신곡 발표를 축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랫만에 상수동 뒷골목, 나의 20대가 녹아있는 그 곳을 찾은 것만도 흥분이 되는데, 제비 다방의 충격적으로 신선했던 공간은 두고두고 내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좁다랗게 깊은 공간에 울려퍼진 유발이 님의 노래.
"나는 다정한 사람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씩씩한 사람
...
그렇게 적당한 사람
적절하고 친절하게
나는 적당한 사람
모르는 척 안보이는 척
그래도 조금은 다를거라 생각했는데
적당히 평범한 사람
그래도 나다운 사람"
옆자리에 앉아있는 언니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마른 침을 삼켰지만,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엄마인 그녀는,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거겠지요. 아이를 키우며, 내 일과 삶의 균형 안에서 갈팡질팡 죄책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끼며, 손 안에 그 감정들을 어쩌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렸을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그 날, 그 노래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래 나는 적당한 사람.
오전에 운동을 하고 카페에 들러 약속한 브런치 발행일을 지켜보려 허둥대고, 아이들을 찾아서 한 놈 클리이밍 수업을 보내고, 그 사이에 다른 한놈과 잠시 카페에서 숙제를 하고, 피아노 학원에 집어넣고, 그 틈에 책방 신간을 스마트스토어에 부지런히 업데이트하고, 9월의 책방 일정을 고민해서 공유하고, 당장 다음주에 있을 북토크 질문을 좀 더 다듬어보고. 그리고 아이들을 찾아서 집에오면, 한모금 낮잠을 자고(과연 그럴 시간이 될까?) 난장이 된 집안 정리를 하고, 그리고 화장을 하고 유니폼을 입고, 뉴욕으로 떠나는 나는,
적당한 사람. 폭풍같은 일정이 때론 버겁다가도, 또 14시간을 날아가 와인한잔 따라놓고 세상 다가진양 행복해 할, 나는 그냥 그런 평범한 사람.
부족해도 괜찮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