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은 날에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은 날이 있나요?
솔직하게 말하면 나에게 그런날이 많은 것 같지는 않아요. 나는 오히려 가만히 있지 못하는 편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시간에 대한 쓸데없는 강박이 있다는 쪽에 오히려 가까울지도 모르겠어요.
생각해보면, 언제부터 그랬는지 잘 모르겠어요.
인간의 뇌는 동시 동작을 할 수가 없다고 하던데, 나는 가끔 다른 일을 하면서 또 다른 일에 좇겨 메모를 합니다. 아 오늘 이거해야해 아 이것도 중요해 아 이것도 놓치면 안되지 아 이 생각도 기록해두고싶다. 아 나 지금 이거하고 있었지!
하고싶은 것도, 해야하는 것도 많은 인간의 번뇌.
어쩌다가 내 인생에 투잡이라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길로 들어서게되었는지 알 수 는 없습니다만, 원래도 정신사나웠던 내 인생이 한 층 더 스펙타클 해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어떤 날에는 이런 내 삶이 하루하루 재미있고 설레고 뿌듯하다가도 어떤 날에는 자꾸만 놓치고 잊어버리고 마는 스스로가 속이 상합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사실은 (조금 부끄럽지만) 꽤 오랫동안 토익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토익이라는 시험의 특성상 짧고 굵게 치고 빠져야 할 것을, 할 것 많고 정신없는 나는 지리지리 오랜 시간을 붙들고 있었나봅니다.
뭐 괜찮아 이것도 내 나름의 공부 방식이야 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시간이 날 때에만 그래도 내딴에는 틈틈이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원하는 점수는 나오지 않았어요. 놀거 다 놀고 다른 할 일 다 하면서 이 시험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다른 경쟁자들을 기만한 걸까요.
툭.하고 그만두고 싶어졌어요. 친한 친구는, 잠시 쉬고 다시 시작하래요. 잠시 쉬면 그래도 내딴에는 쌓아놓은 토익에 대한 감들이 그마저도 사라져버릴까 그러지 못했는데 친구 말이 맞는 것 같아서.
그냥 잠시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어요.
회사를 20년째 다니고 있어요. 첫 직장이었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죠. 가끔 선배나 후배들을 보면 와 정말 대단하다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들.
솔직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조금 해놓고 자랑하고, 내가 한 것 칭찬받고 싶고, 힘들면 금새 쉬고 싶어요. 꾸준히,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의 힘이,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나는 부러워요.
나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쉴새없이 나풀거려요. 자주 행복하고 금새 외로워져요. 한없이 마음이 부풀어올랐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공기빠진 풍선같이 쭈글어들어요.
그런 내가 버겁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버겁지는 않아요. 그냥 내가 그렇게 생긴거라고 인정하기까지(아직도 가끔은 답답하고 못마땅해도) 그런 나도 예뻐해주기까지 오래 노력했어요.
나는 가끔 노력하지 않아도 편안한 사람들이 또 부러워요.
나는 혼자서 뇌과학 컨텐츠를 보며 내 뇌를 궁금해해요. 하지만 또 괜찮아요. 어느 뇌과학자의 강연에서, 스쳐지나간 한마디에 나는 또 쉽게 위로받았어요. 창의적인 사람은 고립감을 느낀대요.
나는 창의적인 사람일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가끔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은 날엔 아무것도 하지 않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