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관하여
책, 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싶어졌습니다.
책방지기에게 책이란, 뭔가 젓가락의 서로 다른 한짝 같은 그런 느낌이잖아요?
내가 만나 본 몇몇 책방지기들은 책이 좋아서, 책방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책이 좋아 책방을 열었나?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구지 대답을 해야한다면, 아니오 쪽이 더 맞을 것 같아요.
나도 책을 좋아합니다.
사실 어릴 때는 꽤나 열정적으로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뒷 이야기가 못견디게 궁금해서 밤을 새고 읽었던 쥬리기공원이나, 너무 여러번 반복해서 읽어서 표지가 너덜너덜해졌던 어린이명심보감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셜록홈즈 시리즈도 가슴 두근거리며 읽었고, 올리버트위스트의 서사나 오헨리의 단편을 보며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이십대에는 하루키에 빠져 살았습니다. 한권의 책을 여러번 읽은편이 아닌데, 노르웨이숲은 스무살에 읽었을 때와 이십대 후반이 되어 읽었을 때의 여운이 너무 달라, 충격적이었던 기억도 납니다. (덕분에 나의 버킷리스트에는 노르웨이에 가보는 것이 추가되었습니다.) 하루키책을 일본어로 읽고싶어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기어이 도쿄의 기노쿠니야 서점에 가서 책을 사왔습니다. (결국 일본어 실력의 부족으로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읽을 수 있을까요?) 1Q84가 국내에 출간되었을 때에는 1판1쇄를 사려고 줄서기도 했지요.
지금은 바쁘다는 뻔한 핑계로 예전 만큼 책을 읽지는 못합니다만, 그래도 항상 읽고 싶은 책은 많아서 놓칠세라 메모해두곤 합니다. 올해에 꼭 읽고 싶었던 책 리스트에 죽음의 수용소에서 가 있었는데 읽고나니 생각보다 더 좋아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렇게 적고보니 나도 꽤 책을 좋아하나보네요.
사실, 책을 좋아한다, 고 말하기가 어딘지 모르게 부끄러워서 '나는 책을 좋아해요'라고 말할 만큼 책을 좋아하나? 라고 머뭇거릴 때가 많았는데 최근에 이웃 브런치 작가님이 소개해준 책을 읽다가 앗! 하고 공감해버렸습니다.
장기하님의 상관없는거 아닌가? 라는 책이었는데, 독서에 관해서 작가가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본인의 독서량이나 속도가 대단하지 않다고해서 좋아하는 정도가 어마어마하게 강하지 않다고 해서 좋아하는 것을 그냥 좋아한다고 말하면 안되나? 하는 단순한 결론에 몹시 공감이 되었습니다. 뭔가 아 나도 책을 좋아한다고, 조금은 덜 부끄러워하며 말해도 괜찮은건가, 싶었달까요.
기쁘게도, 나의 두 아이들은 책을 꽤나 좋아하는 편입니다.딱히 책을 읽으라고 이야기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아이들은 곧잘 책을 읽습니다. 책방을 열고서 뿌듯한 순간 중 하나는 어쨋든 나와 아이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책이 많은 환경이 놓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책방에서는 매달 북토크를 진행하는데, 작가님이나 번역가님을 모시고 하는 행사인 만큼, 책방지기로서 미리미리 책을 읽고 준비를 합니다.
이번달 북토크는, 박윤선 만화가님의 '어머나,이럴수가 방소저!'라는 책입니다. 홍보 영상을 찍을 요량으로 출근 전 급히 책방에서 책을 챙겨왔는데, 가방을 싸기 전에 책 두권을 아이들에게 빼앗겨버렸습니다.
나는 아직 읽지도 못했는데 늦었다는 나를 붙잡으며 마지막 장까지 읽고마는 아이를 보니 꽤나 흥미로운 내용인가봅니다. (북토크에 놀러오세요! ㅋㅋㅋ)
나의 출근 가방에는 보통 한두권의 읽을 책과, 두세권의 책방 홍보 영상 찍을 책이 들어있습니다.엄청나게 무겁다는 뜻이에요. 오늘도 책 세권에 컴퓨터를 이고지고 시내에 나왔습니다. 나올 때에는 어깨가 너무 무거워 한권만 두고 올껄 후회가 되었지만, 영상을 찍고 카페에 앉아 자리를 잡고 나면, 이내 뿌듯한 마음이 묵직히 차오릅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순간들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여기 시부야의 스크램블에그 교차로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이렇게 할 일 없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주절거릴 수 있는 기쁨이요.
이보다 더 좋을수 있을까요?
덧. 나는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너무 예쁩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책읽는 모습을 찍어둔 사진이 꽤나 많네요. 글에 넣을 사진을 찾다가 깨달았어요. 아 조심해야겠구나. 아이들이 엄마가 좋아하니까 책을 읽지는 않아야할텐데요. 예쁜 마음 조금 숨기고 몰래 지켜만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