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이유
나는 항공기 승무원입니다. 스물넷,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감사하게도 첫 직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항공기 승무원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내 인생에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달까요. 나의 직장은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어제 저녁 분명히 우리집에서 가족들과 저녁 시간을 보냈는데, 오늘 아침, 여기 바르셀로나 시내의 카페에 홀로 앉아있습니다. 카페를 찾아 나서는 길에 가우디의 카사바요트 앞에서, 어린왕자 책의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어린왕자 책을 찍어서 예쁜 영상을 만들어보고 싶은데, 아직도 나에게는 꽤나 어려운 영역입니다. 그래도 날씨가 좋아 사진이 제법 예쁘게 담긴 것 같아 내심 뿌듯합니다.
이제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를 찾아,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한 기분을 남기고, 영상 편집도 조금 공부해 볼 요량입니다. 나는 이 순간을 너무 사랑합니다. 한국에 있는 책방에서는 만화가 선생님의 북토크가 있었고, 내가 없는 동안 복닥이며 손님들을 맞이하고 행사를 치뤄냈을 언니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러니 나는 멀리 타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지요. 내 일이 또다른 나의 일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외국에 올 때면 거리를 유심히 봅니다. 거리 거리의 사람들, 가게의 디스플레이, 창문 너머 이국적인 인테리어, 특히 이곳 바르셀로나의 거리는 건물이 워낙 독특하고 이색적이라, 조금 더 공을 들여 꾸욱 눈 안에 담습니다. 나는 이 작은 순간 순간들이, 언젠가 내 작은 책방의 인테리어와 공간과 무드에 도움이 될거라 믿어요. 내가 새로운 공기를 힘껏 들이키는 찰나가 차곡차곡 쌓여서 나만의 시선을 만들어 줄거라고, 아주 오래전부터 믿었더랬습니다. 그리고 진짜 책방 리브레리를 만들게 되었을 때, 내가 보았던 유럽 거리의 상점들과 드나들었던 아늑했던 카페들과 숨막히게 멋있었던 야경들과 낯선 공기의 이국적인 느낌들을 떠올렸습니다. 지금 책방에 그 것들이 켜켜이 녹아있을거라고, 생각해도 괜찮겠지요?
아침 일찍 시내를 한바퀴 뛰었습니다. 아침 일찍이라고는 해도, 시차때문에 한국 시간은 점심 즈음이었을겁니다. 최근 러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운동을 싫어하는 나이지만 얼굴의 곡면을 따라 흘러내리는 땀이 조금 건강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안 건강한 것도 많이 먹고 밤도 숱하게 새고, 시차와 계절도 수백번 바뀌는 나이기에,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어 운동을 합니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아 숨쉬면서, 내가 사랑하는 두가지 일 모두 소중하게 끌어안고 싶습니다.